조명은 켜졌지만 시작은 없었다

《들리지 않는 사람들의 말》 내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by 엘리킴


빛이 가장 먼저 도착하는 곳에서
나는 그림자처럼 움직인다.
이름 없는 위치,
호명되지 않는 시간.


무대는 조용히 만들어진다.
누구도 박수를 보내지 않는 순간에
몸은 천천히 높이를 재고,
손은 조심스럽게 방향을 잡는다.


천장에서 떨어지는 빛의 방향을 따라
나는 무게를 견디고
누군가의 환호 너머로 사라진다.


조명은 늘 나보다 먼저 켜지고
나는 늘 그 아래에서
빛나지 않는 자세로 기다린다.


그림자도 만들 수 없는 존재로,
이 무대에 없었던 사람처럼
소리 없이 접히고,
다시 피어난다.


사람들은 시작을 기다리고
나는 끝을 준비한다.
불이 꺼진 뒤에야
나의 하루가 지나간다.


오늘도
누군가는 그 빛 아래서 울고
누군가는 그 옆에서 웃지만,
나는
조명 너머로 사라진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시작으로.










from. 무대 설치 노동자

ChatGPT Image 2025년 7월 24일 오전 08_06_37.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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