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자식의 소비생활

청바지와 건담

by 텐웰즈 원쓰

붙인 글은 인터넷에서 본 글이다.
보던 중 재미있기도 했지만, 뒷맛은 씁쓸하다.




제 친구는 목사 아들입니다.
제 친구의 설득과 노력과 정성적인 전도로 감동받아서, 교회를 1년째 다니는 고등학교 2학년입니다. 공부하랴 학원 가랴 너무너무 바쁘지만, 그래도 교회에 가끔 가서 친구들과 만나면 즐거웠는데 어느 날부터 점점 교회 가기가 싫어졌습니다.

절 설득한 친구는 목사님 아들입니다.
어느 날 이런 말을 하더군요.
건담초기모델(RX78 반다이)을 사려고 하는데 15만 원이라고 합니다. 관절 하나하나 섬세하고 손가락이 움직일 정도로 정교한 일본 반다이사의 프라모델이죠. 목사님이신 아버지한테 사달라면 잘 사주었는데 요즘에는 신도가 줄어들었다고 잘 안 사준다고 합니다. 목사님 이신 아버지가 친구 10명만 대려 오면 사주신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저보고 도와 달래요. 저보고 5명만 신도로 대려 오고 자신이 5명 대려 오면 10명 이랍니다.
제가 좀 아니다 싶어서
"건담 사려고 전도하냐, 구원해 주기 위해서 전도하냐"
친구가 하는 말
"물론 전도도 하고 건담도 사면 서로 좋지 않니"
제가 다시
"너의 아버지는 목사님일 외에는 아무것도 안 하시잖니, 너희가 하루 3끼 먹는 쌀과 옷과 집은 다 신도님들이 해주신 것 아니니. 네가 받는 용돈과 집에 있는 프라모델 오락기도 다 신도님들의 정성 어린 돈이잖니."
친구가 하는 말
"이건 하나님 돈이지 내 돈이 아니야, 많은 사람한테 하나님 말씀 전도했으니 이 정도는 받아도 되는 것 아니야. 아니면 굶어 죽으란 소리니. 넌 교회 나온 지 1년 넘었으면서 성금 한 돈이 10만 원도 안되잖아"
제가 이 말 듣고 발끈했습니다.
옆에 교회선생님도 계셨지만 아무 소리 없이 신문만 읽더군요.

종교비리에 대해서는 많은 뉴스와 신문에서 보았지만
제 친구한테서 무언가 알 수 없는 게 느껴지더 군요.

요 몇 주 안 나갔는데 선생님이 전화 왔습니다.
좀 바빠서 다음에 간다고 했죠. 친구는 지금도 매일 학교에서 점심 먹을 때면 다른 친구들한테 예수님 믿으라고 말합니다. 솔직히 카리스마도 있고 똑똑하고 공부도 잘하고 인기도 있어서 그 친구를 거역하기 힘든 것도 많습니다. 같이 어울리기는 하지만 예전보다 좀 서먹하고, 저보고 교회 오란 소리도 안 하고, 좀 그렇네요.



생각을 거슬러 올라가 보니 나 역시도 돈 한 푼 쓰기가 힘들었던 것 같다.
중학시절 우리 학교는 교복을 입지 않는 학교였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무슨 옷을 입고 다니는지가 서로 민감한 시기였다. '리바*스', '게*', '켈*클레인*' 등 메이커 의류들이 한창 유행을 시작할 때였다.
아침이 되면 서로 몇 반에 누구가 무슨 옷을 입고 왔는데 정품이니 아니니 따지던 때였다. (심지어는 바지 속 도장까지 까서 확인하던 그런 시절....)

찌질하게 가난한 목사 자식이었던 나 역시도 감히 메이커 바지가 입고 싶었다.


고가 브랜드는 어렵더라도 고가였던 '웨스트*드'를 갖기 위해 1년 치 의복비를 다 투자하였다. 명절에 받은 세뱃돈부터 모든 돈을 모아 청잠바와 청바지를 샀었다. '웨스트*드'로...
정말 춥고, 더운 시기 빼고는 거의 교복처럼 그 옷을 입고 다녔던 것 같다. 바지 밑단이 터지고 닳아 없어지면, 꿰매고, 메우고, 기워 입었다. 그럼에도 난 그 옷이 꽤나 자랑스러웠다. 반면, 메이커 옷을 마음껏 입는 친구들을 보면서 부러워하고, 우리 집은 그렇게 마음껏 옷을 사주지 못하는 게 원망스러웠다.

언젠가 지금은 어른이 된 친한 친구 녀석이 메신저로 말을 걸어온 적이 있다.
"어? 너 원성은 맞지? 웨스트*드 원성은"
이어서 그 친구는... 본인은 '뱅*'만 입었는데... 나의 웨스트*드가 꽤나 부러웠다고 한다. 물론, 내 속사정은 몰랐겠지만... 그럼에도 이 친구 역시 나에게 위의 글과 같은 생각을 가지지 않았을까 싶다.
'목사 자식은 잘 사나 봐... 메이커 옷도 입고...'
'목사가 뭘 해서 돈을 벌지?'
'가난한 성도들 돈 받아서 지들은 배불리 사는구나...'

부모가 큰 교회 목사이던, 그렇지 않던, 그 집이 살만 하던, 그렇지 않던 기본적으로 목사/사모뿐만 아니라 목사자식들의 소비생활은 입방아 찧기에 좋은 소스인 듯하다. 우리 아빠 목사님께서 롤스*이스를 자동차를 끌고 다닌다거나 엄마 사모님이 '샤*'가방을 메고 다닌다거나, 내가 60만 원짜리 노스*이스 800 점퍼를 입고 다닌 다면... 뭐라고 한마디 하지 않겠나...? 반면, 간혹 명품을 사탄처럼 여기는 사람들을 보면 그렇게까지 정죄해야 할까 싶기도 하다. 굳이 명품 가방과 아프리카 어린이들 밥 한 끼를 비교해 가면서 정죄감을 주는 것은 너무하다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그 이상의 고가 명품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그건 쫌 심하지 않나 싶을 때도 있다.


비교하긴 그렇지만, 예수님 발에 자신의 전재산으로 샀을 법한 명품 향유를 부어드린 과부를 칭찬하는 예수님의 모습이 지금 있었다면 다들 예수님을 몹쓸 목자로 명품 좋아하는 된장남으로 조롱했을지도 모르겠다. 명품이어서가 아니라 그 중심을 보신다는 예수님의 말씀이시지만 어찌 명품이 사람눈에 안 들어올 수 있을까…

여하튼 그러다 보니 가끔 성도님들이 주시는 선물들이나 나처럼 간신히 모아 모아 산 그 무언가가 입방아 찧어질 때는 참 곤란하다. 성도들이 사줬다. 선물이다. 등의 굳이 변명하는 것이 더 궁색해 보이기도 하다. 심할 때는 실제 연관이 있을는지는 모르겠으나 이것을 신앙과 연계시키는 것도 그렇다.

계속되는 기윤실의 설문연구 발표처럼 이 사회의 그리스도인에 대한 기대감과 신뢰도가 떨어지긴 했지만, 그럼에도 목사, 사모, 목사 자식인 우리에 대한 도덕적 기준은 아직 구설수가 될 만큼 꽤 높다는 것이다. 서론에서도 말했지만, 신부님도, 스님도 부인이나 자식은 없기 때문에 구설수에 오를 일이 적다. 하지만 목사, 사모, 그 자식들의 문제는 심심치 않게 듣지 않는가?


비판하는 사람에게 뭐라 변명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나 역시도 멋지고 좋은 것 가진 사람들을 보면 부럽고 한편으론 질투가 나기도 한다. 그렇다고 그렇게 살고 있는 목사님이나 사모님께 뭐라 하고 싶은 마음도 아니다. 뭐라 판단하라는 기준을 두고 싶지는 않다. 어려울뿐더러 자격도 안되기 때문이다.

다만, 이렇게 사는 건 비단 목사자식들만이 아니란 것을 알아두자. 눈치 보며 소비해야 하고, 가졌어도 겸손을 유지하고 보이기까지 겸손하게 살아야 하는 것 말이다.
어떤 행동을 할 때 눈치를 봐야 하는 사람들이 역할에 따라 꽤나 많다. 아마 이 사회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눈치를 보며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심지어는 자기들이 열심히 벌어서 쓰는 돈에 대한 소비까지도 눈치를 보면서 살아가고 있다. 한쪽으론 내 돈 내가 쓰는데 누가 뭐 라그래라는 식의 논리가 강력해지지만, 한쪽에선 잘 용납이 안 되는 그런 사회이다.

친구들을 보니 국회의원 아들인 내 친구는 말할 것도 없고 농민들의 소중한 돈을 관리하는 농협 다니는 친구는 수입 농산물과 소고기를 먹을 때 눈치를 느낀다고 한다. 공무원이 외제차 타고 다니는 것도 눈치 보이지 않을까? 비약이라 할지 모르지만 **전자에 다니는 사람은 혼수로 @@전자 제품을 사는 것이 눈치 보일 것이다. 어쩌면... 국제구호 단체에서 근무하는 나의 자녀로 태어난 우리 아이가 훗날 학교 급식에서 밥을 남길 때면 주변에서 비아냥 거리며 한마디 할 것이다. 한편으로 배불리 먹으면 또 어떤 미안함이 들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왜 유독 목사자식들만 이렇게 눈치 보며 살아야 하냐고 말하지 말자. 이미 이 사회는 눈치 보며 사는 사회인 것이다.

종종 눈치 보며 살지 말라고 한다. 사실 이렇게 눈치를 보는 습관, 피해의식이 심해지면 심각한 우울증이나 정서장애 같은 것들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조건 자기 편한 대로 사는 것은 사회적으로 장애가 생길 수 있다. 누구도 자기 멋대로만 사는 이기적인 사람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눈치라는 것이 심해지면 피해의식이 된다.

처음에는 종교인으로, 그 가족으로 살아오면서 가족 내에서 조금 나아가 교회 안에서 받는 눈치들이 쌓여 불편한 감정이 코딱지처럼 딱딱해서 제대로 숨 쉬며 생활하기 불편하게 만든다. 편하게 숨을 쉬기 위해선 내 코를 막고 있는 코딱지를 제거해야 하는데 피해의식이 생기면 종종 더 좋은 공기를 찾아간다. 그래서 내가 아닌 다른 것들에게로 화살을 돌리곤 한다. 그렇게 밖으로 탓하기 시작하는 것이 피해의식이다.

피해의식을 줄이기 위한 방법 중 하나는 ‘공감’ 해 주는 것이다. 특별히 가족 간에 ‘대화’를 통해 충분히 동화되어 주는 것이 필요하다. 단순한 이해의 차원을 넘어서 우리 가족이 경험하고 느끼는 것이 사실은 같다는 비밀을 공유하는 것이다. 사람이 친해지는 가장 빠른 방법 중 하나는 ‘비밀’을 공유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것은 서로를 매우 특별한 관계로 만들어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은 명품 가방이 하나쯤은 갖고 싶은 목사사모님의 마음과 친구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비싼 운동화가 갖고 싶은 아들의 마음이 만나는 것이 공감이며 동화이다. 스포츠카를 한 번쯤은 몰아보고 싶은 목사님의 마음과 살짝 쌍꺼풀 수술을 하고 싶은 딸의 마음이 만나는 것 말이다. 비밀은 최대한 솔직한 속마음이어야 하는 것이고, 자칫 옳고 그름의 판단으로 접근할 수도 있겠지만 도덕적, 성경적 문제의 소지가 있을 때에라도 우선 나누어지는 것이 중요하다. 때론 문제는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해결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해결책은 충분히 동화된 다음에 혼자만의 문제가 아닌 비밀을 공유한 구성원 간의 공동의 목표로 삼으면 된다. 제한된 재화를 가지고 순서를 정해 저마다의 필요를 채우는 방법이 될 수도 있고, 양보와 타협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겠다. 제비 뽑기나 게임등도 방법이 될 수 있겠다. 각자의 문제의 해결이 더 이상 개인만의 힘으로 해결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노력하는 것임을 기억할 수 있게 된다면 피해의식으로 인한 고립감은 줄어들게 될 것이다.

이렇게 자기를 포함한 가까운 가족 간에 서로를 점검한 뒤에 고민해야 할 것이 우리에게 높은 기준을 두고 감시하는 주변인들이다. 게다가 나의 행동이 나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교회, 기독교와 직결된다는 대표성에 적잖은 부담을 느끼는 것이라 생각한다. 예수님 십자가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꽤나 부담스러운 일이다.


나로서는 1년에 한 번 산 바지인데... 몇 날 며칠 돈을 모아 구입한 핸드폰인데... 내 사정을 그들이 알아 줄리 없다. 그러다 보니 자랑해야 맛인데... 자랑도 못한다니... 슬픈 일이다.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자랑해서 되겠냐는 우리 엄마 같은 말을 나에게 할꺼라면 당장 책을 덮어주시기 바란다)

중요한 건 대응하는 태도의 문제가 아닐까?
아마 인터넷에 글을 쓴 친구도 목사아들인 친구의 대응이 못마땅했던 것 같다.
오해하고 곡해하고자 한다면 한도 끝도 없고, 우리가 생각 없이 성도들의 돈을 써대는 망나니 자식이 되는 건 소문 속에서 그리 어렵지 않다. 소문과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장사는 없다. 단순히 소문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보다 겸손한 자세로, 설득보다는 이해의 자세로 다가가는 게 어떨까 한다. 그들이 우리를 향해 갖는 불편한 마음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충분히 이해가 될 수 있다. 사실 그것은 우리가 그 누군가에 대해 갖고 있는 부러움과 질투, 섭섭함의 감정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상대에게는 어떤 당위적이고 객관적인 이야기를 한들 이성적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한다. 감정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친구야, 너는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난 메이커 청바지가 너무 갖고 싶었어.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으로 그 청바지를 얻기 위해 노력했어. 너도 알겠지만 우리 아빠는 목사님이야. 그래서 선뜻 비싼 청바지를 사줄 수 없으셔. 해서 용돈도 모으고 집안일도 해서 산 것이야’

당시 내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해 봤더라면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민감한 청소년 시기에 자칫 자존심이 상하는 일일수도 있다. 모든 친구들에게 다 말하고 다니면 궁색한 변명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모두를 이해시키기는 어렵지만 친한 친구 몇에게는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주변에 한 두 명만 이런 나의 상황을 알아주고 내편이 되어 준다면, 충분히 승산은 있다. 그 친구들이 내 대변자가 되어 친구의 친구들을 이해시켜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이런 나의 상황을 아는 친구가 옷을 빌려주기도 하고, 때론 친구들끼리 돈을 모아 선물로 주기도 했다. 나는 옷이었지만, 한 친구는 악기고, 한 친구는 음악 CD 등이었다. 그 덕에 난 친구도 선물도 얻을 수 있었다.

(그 친구들이 커서 결혼할 때 돈을 모아 TV를 사주고 아기를 낳고 서로 물건을 공유하기도 하고 있다)

아울러, 갖고 싶은 것 쓰고 싶은 것이 있다면 한번 더 고민해 보고 정말 필요한 것이 맞는지 그럼에도 사야 한다면, 스스로 어떤 기준을 둘 것인지 생각해 보자. 사실 서른 살이 넘으면 이런 고민 안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어떤 집에 살아야 할지, 어떤 차를 타야 할지, 심지어는 자녀에게 어떤 옷을 입혀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고민하게 된다.

돈이 있고 없고의 문제를 떠나서 여전히 난 고민하고 있다. 서른 살이 되어 깨닫더라도 늦은 것인 아닐 것이다.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조금씩 노력해 보자.

누군가는 자기 합리화라 하겠지만 어찌 되었든 어려서부터 눈치를 보며 살고 있는 나의 사는 법은 이렇다.


* 대화거리

1) 아빠가 지금 가장 갖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신앙적인 거 말고, 비쌀수록 좋다)

2) 하와가 선악과를 먹은 일에 대한 자녀의 생각? (정답 말고, 생각)

3) 전도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아빠는 어떻게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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