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왜 하필 목사 자식으로 태어났을까?
왜 목사 자식이었을까?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딱히 부정해 본 적은 없지만 이런 불만을 가져본 적은 있다.
공식적으로 치자면 타 종교의 성직자들은 자녀가 없다. 신부님이 자녀가 있으면 이상하고, 스님도 자녀가 있기엔 좀 이상하지 않은가? 물론 간혹 입적하시기 전이나 사연이 있으신 분들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느낌적으로 성직자의 자녀는 목사 자녀들이 유일하다. 그러다 보니 성직자의 자녀로 살아가는 어려움이 왜 없겠는가?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인데 불교 종파 중에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기도 한다고...^^;;)
가장 큰 고민거리는 다름 아닌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교회를 다니던 그렇지 않던 으레 “아버지가 목사입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눈초리가 달라지고 무언가 머릿속에 있던 안 좋은 이야기들을 마음껏 생각한 뒤 대화를 하는 것이 느껴졌다. 종종 목사님은 존경받을지 모르지만 목사 자식은 대부분 부모의 명성에 누를 끼치지 않으면 잘하는 것처럼 보인다. 또 한 가지는 큰 교회 목사님 아들, 부자교회 목사님 아들이었다. 어려서 외국에서 신학공부를 하고 오신 아버지를 따라 외국 유학을 다녀와 영어도 잘하고, 머리도 좋고, 공부도 잘하고, 노래도 잘하고 등등... 종족은 같으나 유전자는 전혀 다른듯한 그런 녀석들 덕분에 난 쉽게 열등감을 느끼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종종 친구들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회자되곤 한다.
“야, 누구도 목사님 아들이래… 근데 너네 집은, 너는 왜 그러냐?”
...
고등학교 즈음인가? 마음으로 결심했다.
‘난 꼭 커서 책을 써야지! 그 제목은 -목사 자식도 사람이다-로…’ (이 책의 첫 제목은 그랬다. 어감이 좀 별로라 개정하면서 제목을 바꿨다) 피해의식이었는지 행동의 제약으로 학습된 것인지 난 사람답게 생활하지 못하고 있다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반항심이 절정에 다다랐던 때였다. 항상 결론적으로 생각하는 어른들의 사고와 당장의 갈증을 해소 못하는 청소년과의 갈등의 정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람답게’ 살고 싶었던 목사 아들의 몸부림은 어마어마한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냥 딱! 목사 아들 아닌 애들처럼 살아 보는 것이었다. 평범한 수위의 도덕성과 윤리적 기준, 경제력 등이 그런 것이었다. 청소년기의 방황이라 치부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본 많은 목사 자녀들은 성격과 환경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지금도 이런 고민을 하고 자라고 있다. 그리고 주변은 유독 목사 자녀들을 세심하게 지켜보고 있다. 그런 청소년기를 보내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나의 그때를 더듬어 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해답’이 아닌 ‘공감’이라는 것을…
혹, 답을 얻기 위해서 이 글을 읽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럴만한 경험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딱히 줄 답이 없다. 그저 어린 나이에 목사 자녀로 권위와 보수적인 기준에 눌려 많이 상처받은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을 이해하고, 그들을 위로해 줄 수 있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 비단 목사 자녀뿐만 아니라 종교적, 도덕적, 사회적 권위와 그로 인한 부담 속에서도 꿋꿋하게 마음을 지켜가는 친구들과 그저 경험을 나누어 보고 싶었다. 또한 그런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 관심과 배려를 구하고 미처 그때에 하지 못했던 사과를 하고 싶었다.
글을 쓰며 한두 사람에게라도 그렇게 사용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한 편의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부모들과 이야기해 보고 싶었던 대화 거리들을 적어보았다.
역할로는 다른 사람들의 말을 많이 들어줘야 하는 목사이지만, 정작 나의 이야기와 자신의 이야기를 편히 이야기하지 못하는 외로운 아빠, 신앙의 부모를 오랫동안 봐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모 자식의 관점으로 성경에 나온 인물들을 바라보고 싶어 졌다. 정답 같은 이야기 말고 지극히 현실적인 관점의 이야기들을 편하게 나누어 보고 싶었다. 입장에 따라 마음에 와닿는 것이 다를 수 있고, 그것이 나누어지면 서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물론, 실제로 대화가 얼마나 이루어 질지 모르겠지만, 더 이상 아빠 목사님들이 외로워지지 않았으면 좋겠고, 목사 자녀들이 피해의식으로 움츠려 들거나 재미없게 살아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린 대화와 이해 공감이 필요하다.
최근 들어 더 나이 먹고 이해심이 생기기 전에 이 글을 정리해서 마무리 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청소년들보다 어른들의 입장이 더 많이 이해되어 청소년들과의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것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꼰대 같은 잔소리를 하는 내 모습이 인정하기 싫지만 많아지고 있다.
목사 자식이란 굴레는 결혼을 하고 나서야 조금 무게가 덜어진 듯하다. 하지만 나 역시 나의 아이에게 정도는 다르지만 또 다른 굴레를 지게 할지 염려가 된다. 십여 년이 흐른 뒤에 이 책을 나의 아이들과 함께 읽으며 이야기해보고 싶다.
2025년 7월 드디어 작가 신청이 되었다!!!! ㅎ
이제부터 원작가!!! ㅎㅎ 연재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