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왜 이렇게 많이 다녔는지...
핑계 같지만 어린 시절 잦은 이사로 학습부적응뿐만 아니라 깊은 마음의 친구를 사귀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일이다.
나는 한 학년에 전학을 3번이나 한 것으로 기억한다. 두 번은 이사 때문이었고, 한 번은 학교가 분교를 하게 되어서였다. 전학은 2학년 때도, 3학년때도 한번 이사하며 전학을 했다. 이사는 아버지 사역지의 이동이 이유였다. 핑계 같지만 전학을 많이 다니면 학업을 못 쫓아갈 뿐 아니라 친구를 사귀는 등 사회성을 기르기에 참 어렵다.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어린 시절 학교를 옮기고 자주 이사를 다니다 보니 나는 진도를 잘 못 쫓아가서 나머지 공부도 하고 선생님께 혼도 많이 났다.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초등학교 2학년 즈음이었다.
진도를 쫓아가지 못해 나머지 공부를 하게 되었다. 나머지 공부를 하는 다른 아이들은 학업에 장애가 있는 친구들이었고 특수반을 운영하여 따로 공부를 하고 있었다. 특별한 장애가 없으나 학습 부진인 나는 정규 수업을 마치고 특수반으로 이동하여 나머지 공부를 했다. 미안한 말이지만, 조금 창피했었다. 내가 특수반에 간다는 것이 소문날까 봐 무서웠다. 그래도 우선 진도를 쫓아가야 한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구구단이었다.
요즘은 구구단이 몇 학년 때 외워야 되는 것인지 모르지만 난 초등학고 2학년이 되도록 구구단을 외우지 못했다. 놀기를 워낙 좋아했던 것도 있지만, 가정교육이 중요한 초등학교 저학년 시기에 집은 자주 이사를 하고, 아버지는 개척교회 목회로 바쁘시고, 어머니는 생계를 위해 장사하기에 바빴기에 날 돌봐주지 못했다. 여하튼, 난 정말 구구단을 지지리도 못 외웠던 것 같다. 끝내 반아이들 전체 아이들 앞에서 구구단을 못 외우는 몇몇 아이들이 구구단을 시험 보기에 이르렀다. 열등감과 나머지 수업을 받는다는 수치심 만으로도 쥐구멍에 숨고 싶었는데 아이들 앞에서 나의 구구단 실력을 보여야 한다니 정말 심장이 벌렁 거렸다. 한 명 한 명 외워 가는데 정말 충격적인 일이 일어났다. 당시 나의 담임 선생님은 나이가 지긋하신 할머니 선생님이셨는데 순차적으로 발표를 시키던 중 잘 외우지 못한 아이에게 벌로 바지를 내리는 것이 아닌가? 정말 무서웠다. 내 차례가 올수록 난 더 무서웠다. 결국 긴장한 탓에 난 더더욱 구구단을 외우다 버벅거렸고 나 역시도 바지 벗김을 당하고 말았다. 그리고는 수치심에 마구 울었다. 지금 생각해도 심장이 벌렁거리는 기억이다.
집에 와서 난 부모님께 말을 하지 못했다. 이 모든 일이 내가 구구단을 외우지 못해서 생긴 일이라 생각했다. 오히려 나의 학습 부진으로 인해 부모님께 혼 날 것만 같았다. 며칠이 지나 소문을 들은 아빠와 엄마는 선생님을 집으로 모셨다. 그리고는 매우 진지한 대화를 나누신 것으로 기억한다. 워낙 어린 시절 일이기에 내용은 기억이 나질 않지만 아빠와 엄마는 냉정을 유지한 체 매우 심각하게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셨다. 이후에 난 나머지 공부반도 벗어났고, 진도도 따라가게 되었다.
우리 가족은 또 이사를 갔고, 그 학교에서도 나머지 공부를 하기에 이르렀다. 지금 알게 된 건 그게 통합교육이었을 것인데 일과시간에 장애학생과 비장애 학생이 같이 수업을 듣고 방과 후에 몇 시간 남아서 공부를 더 하고 가는 아이들이 있었다. 그곳에서도 다운신드롬,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는 아이들과 함께 있었다. 그런 생각하면 안 되지만, 난 정말 자존심이 상했었다. 더군다나 새로 전학 간 학교에서 이 아이들과 함께 공부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새로 만난 친구들이 날 장애가 있는 아이로 볼까 봐 무섭기도 했다. 한편으로 그 친구들과 지낸 시간도 재미있었다. 동갑인 나를 계속 형이라 부르던 친구, 가만히 앉아만 있던 친구, 소리를 지르거나 같은 행동을 하는 아이 등... 이름도 잘 기억 안 나지만 얼핏 생각이 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잘 적응해서 나머지 공부는 금방 벗어날 수 있었지만 문득 그 친구들이 어디에 있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이사가 잦으면, 깊은 친구를 사귀기 어렵다. 특히나 사춘기 시절은 더더욱 그렇다. 그나마 초등학교 4학년부터 안착한 나와는 달리 형은 사춘기를 시작할 무렵이어서 그랬는지 집에 친구를 데리고 오는 일을 자주 보지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어린 시절부터 함께한 교회 친구들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재산인지 요즘 들어 새삼 실감하게 된다. 부모님께로부터 독립하여 나간 교회에서 만난 친구들이 나의 그런 소중한 관계들이다.
교회는 특성상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아울러혈연, 지연 등이 긴밀하게 엮여 있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지 가족 같은 분위기가 좋다가도 자칫 배타적이 되기 쉽다. 내가 다니는 교회는 아이들까지 합쳐 전교인이 4~500명 정도 되는 교회이다. 이것이 작게도, 크게도 느껴지지 않았던 건 지루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일들이 일어나면서도 그 속에서 어릴 적부터 홀홀 단신으로 교회에 나온 내가 많은 사랑과 은혜를 입었기 때문이다. 잠시 다녀가는 교역자님들도 하는 말이지만 유독 가족 같은 우리 교회의 분위기가 때론 아픔을 주기도 하지만, 가족 간에 감내할 수 있는 아픔이기에 큰 힘이 되고 내가 신앙을 배우고 지킬 수 있었던 뿌리가 되는 곳이다.
그렇기에 자주 이사를 다닌 나로선 이 교회에 정착할 수 있음이 정말 감사한 일이다. 반면, 나와 마찬가지로 혼자 교회 나오던 청소년기 나의 다른 친구들은 지금은 교회에서 볼 수 없다. 그 친구들은 부모님들이 교회에 다니지 않는 친구들이 많았다. 완전히 이해하기 어렵지만 부모님이 신앙이 없는 상황에서 자신의 신앙을 키워 간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임을 실감하는 대목이다. 종종 개척을 하거나, 사역지를 옮기는 것을 이유로 전학을 가고 교회를 옮겨야 하는 목사 자녀들을 보게 된다. 이런 친구들이 겪게 되는 어려움과 아픔이 얼마나 큰 것인지 잘 고려되지는 않는다. 친구를 잘 사귀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어느 정도의 안전장치 없이 친구를 잘 사귈 수 있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사회성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전혀 생소한 공간에서 그것도 목사자녀로 친구를 만들어 가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아니 어쩌면 오히려 사회성이 좋을수록 노는 친구들을 만나기도 쉽다. 그렇다고, 여건이 되지 않는데 자녀를 멀리 학교를 보낸다거나 따로 생활하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일 것이다. 그럼에도 철저하게 자녀 입장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적어도 중고등학교 시절에 교회공동체를 옮기는 것은 최소화해 주면 좋겠다.
가깝게는 우리 교회 중고등부를 보더라도 사역자 자녀가 몇 있는데 사역지를 옮김으로 인해서 부적응하는 아이, 지방으로 이사를 갔지만 또래 아이들과 정들어서 몇 시간씩 버스, 기차를 타고 오는 아이, 계속 한 교회에 다니는 아이가 있다. 재밌게도 멀리서 오는 아이들의 신앙이나 만족도가 다른 두 아이들보다 높은 것을 보게 된다. 감사함을 아는 것이다. 환경적으로 여러 가지 것들이 고려되어야 하긴 하겠지만 그만큼 청소년기에 함께 믿음 생활을 공유하는 공동체가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깨닫게 된다.
어렵게 서울에서 개척교회 사역을 해가시던 부모님은 보증금을 다 까먹을 지경까지 내 고등학교 졸업을 기다려 주셨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겠지만, 고3 겨울 방학, 미처 졸업식을 하기도 전에 부모님은 아버지 고향으로 내려가셨고, 나는 서울에 남기로 했다. (다음 이야기는 좀 더 뒤에서)
청소년기가 인생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시기라는 것에 모두들 공감한다. 물론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하여 부모에게서 벗어나려 하고, 서로에게 상처를 가장 많이 주는 시기 이기도 하다.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뉴스를 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이런 청소년들의 사회문제가 나날이 심각해지고 있음을 보인다. 교회와 멀어지는 만큼 죄와도 가까워지고 있다. 애석하게도 그 원인에 대한 말들은 분분하다. 미디어, 또래집단, 학교교육, 성적스트레스, 경기침체, 가정해체 등을 이야기한다. 이런 이야기 너무 많이 듣고 뻔한 얘기라 굳이 여기서 언급하는 것이 그렇지만, 굳이 이야기하는 이유가 있다.
불편하고 또 부담되는 말이지만 이것은 부모의 문제이다. 그리고 교회의 문제이다.
개인적으로 여러 아이들을 보며 느낀것은 한 아이가 결속되어 있는 대상이 얼마나 있느냐에 따라서 안정감을 갖고, 그렇지 못하고를 결정한다고 생각한다. 일차적으로는 부모와의 결속이 당연하겠으나 때로는 이것이 충족되지 못했을 때 다른 결속으로 대리 만족을 하려 한다. 중요한 건 이 대상을 찾을 때 주변에 어떤 대상들이 있는지가 중요하다. 나의 경우 교회 선생님, 사역자, 교회 친구들이 학교 친구들의 비중만큼이나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깊이의 정도는 다르지만 다양한 결속들이 때론 지지해 주기도 하고 방황하게도 하였다. 이런 결속은 청소년 시기에 상당히 많아지기 마련인데 이때 그 주변에 어떤 사람이 얼마나 있느냐가 중요하다. 이것은 질적인 부분이기도 하지만 양적인 부분이기도 하다. 말 그대로 질풍노도의 시기는 자꾸만 생각이 바뀌고 호불호가 분명해지기 때문이다. 자칫 성숙하지 못하거나 일탈의 대상으로 대체된다면 그 견고한 결속은 쉬이 풀어지기가 어렵다. 혹은 다른 결속을 찾지 않고 안으로 갖고 들어가면 은둔형 외톨이와 같은 상황으로 들어가게 된다.
안타까운 것은 정말 그런 대상이 필요한 청소년 시기 아이들이 부담스럽고 상처받을 것이 두려워서 교사를 하는 사람들이 점점 적어지고, 교회 안에서 아이들 피차 간에도 결속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른들은 생활해 내기 바쁘고, 청년들은 스펙 쌓기 바쁘고 아이들은 공부하기 바쁘다. 잠깐 생각해 보자. 부모가 주일 점심 또는 저녁에 교회 같은 반 아이들과 선생님을 집으로 초대해 저녁식사를 하는데 드는 돈과 시간이 얼마일까? 단언컨대 난 그 비용이 백만 원이 든다 하더라도 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하고 싶다. 아니해야만 한다고 말하고 싶다. 감히 말하는데 부모님이 이 정도의 관심만 표현해 주어도 아이는 큰 기쁨을 누릴 것이다. 그리고 초대받은 아이들 또한 자신들을 인정해 주는 친구의 부모로 인해 깊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주일학교 반 아이들을 집으로 초대하여 라면을 끓여 주는데 얼마의 돈과 시간이 들까? 백만 원이 든다고 해도 할만한 일이다. 왜냐면 나의 머릿속에 이러한 기억이 20년이 지나도록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도 그때 라면을 끓여준 선생님과 연락을 하고 있고, 같이 영화를 보러 갔던 선생님과 페이스북 친구를 하고 있으며, 함께 놀러 갔던 친구와 살고 있다.
청소년 문제에 대한 사회비용을 이야기했던 적이 있다. 청소년기에 필요한 10만 원을 들이지 않고 아끼게 되면 먼 미래에 사회적으로 몇천, 몇억의 돈이 들어갈지 모른다는 이야기였다.
단순히 돈에 대한 부분뿐만이 아니다. 천하보다 귀한 그 영혼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은 지금, 필요한 그때에 우리의 손을 통해 표현되기 원하신다는 것이다. 부디 나눌 수 있는 시간과 물질이 지금 당신에게 이미 있기를 기도한다.
대화거리
1) 아빠의 유년시절은 어떠했는가? 이사를 몇 번이나 했었는가? 그때의 기억을 나눠달라.
2) 아브라함은 이사를 몇 번이나 했을까? 왜 이사를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