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보다 집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았던 아빠 목사

by 텐웰즈 원쓰


기억을 더듬어 보면 장사를 했던 엄마보다 목회를 했던 아빠가 내 밥을 차려준 것도, 사고를 수습해 준 것도 많았던 것 같다. 아마도, 말씀을 준비하고 심방을 다니시고 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엄마는 늦게 가게 문을 닫고 들어와서였던 것 같다. 직장에 다니는 아버지들에 비해서 목사아빠는 우선 근거리(집, 교회)에 있었다.


유치원 소풍 때였다. 장소는 부모님이랑 몇 차례 가본 적이 있는 곳이었다. 차로는 30분 정도 떨어진 곳이었고, 버스로도 꽤 많이 가야 있는 곳이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단체로 소풍을 갔다가 대열에서 이탈한 나를 선생님이 확인하지 못하시고 유치원으로 복귀했다. 유치원에 도착해 보니 내가 없어 부랴부랴 아빠에게 연락을 했었던 것 같다. 엄마도 놀라 집으로 왔고 아빠는 슬리퍼를 신고 나왔다가 맨발로 나를 찾아 집으로 오는 길을 역으로 뛰어왔다. 나는 의외로 침착했었다. 선생님과 친구들이 사라진 것을 알고 버스를 타고 일산시장으로 향했다. 거기서는 우리 집을 찾아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없어 기사아저씨의 안내로 다른 버스로 차를 갈아타려는 순간 맨발로 뛰어오는 아빠를 봤다. 어린 날의 나의 기억은 거기까지이다.


맨발로 뛰어온 아빠…



초등학교 3학년 때쯤인가? 오전/오후반이 있었을 시절이었다. 오후반이었던 나는 그날따라 학교 가는 것이 너무 싫었다. 그래서 등굣길에 만난 오전반 친구와 놀기로 결심을 했다. 공사장에는 놀이 도구들이 엄청 많다. 위험하지만 놀이터보다 훨씬 재미난 것들이 많다. 특히나 뛰어내리기 놀이는 어린 시절 나의 용기와 기상을 과시하기에 매우 좋은 놀이였다. 점점 높은 곳에서 뛰어내렸고, 거의 내가 1등을 할 수 있는 위치에서 내가 뛰어내렸을 때 난 발밑에 있던 못 박힌 각목을 밟았다. 놀란 친구들은 도망갔고, 나는 아픈 다리를 절룩거리며 집을 향했다. 그런데 다친 것보다 무서운 건 오늘 내가 학교를 가지 않고 친구와 공사장에서 놀았다는 사실을 아빠한테 들키게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아빠는 무서웠다. 때문에 난 피범벅이 되어 퉁퉁 부은 다리를 한 체 한참을 집에 들어가지 못하였다. 친구 부모님께 말을 전해 들은 아빠는 부랴부랴 나를 찾아냈고, 난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았다. 다행히도 큰 문제는 없었고 다친 다리 덕에(?) 학교 결석 한 것은 혼나지 않을 수 있었다. 다만, 초등학교 졸업식날 난 6년 개근이라는 명예로운 상을 단 하루로 인해 받지 못하게 되었다.


초등학교 5학년때였다. 좋아라 하지 않는 반 여자아이에게 돌을 던졌다. 공교롭게도 유리집 유리에 돌이 맞았다. 나는 걸음아 날 살려라 도망했지만, 투철한 신고 정신의 그 여자 아이 덕분에 유리집주인은 우리 집에 손쉽게 찾아올 수 있었다. 아빠는 죄송하다 말씀드리고 값을 지불해 주셨다. 아직 초등학교 때라 매를 맞던 때였고 당연히 그날은 매타작이 있을 줄 알았는데 넘어가셨다. 다음부터 그러지 말라는 당부 외에 다른 말씀도 없으셨다. 아빠가 꽤나 아빠 같았다.


사고뭉치 아들로 엄마와의 추억도 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생이 되어서야 들은 이야기다. 초등학교 때 난 반에서 꽤나 영향력이 있는 아이였단다. 친구들과 관계도 좋고, 공부도 제법 하고, 싸움도 잘하는 아이였나 보다. 사춘기에 들어설 때라 그런지 여자아이들을 괴롭히고 놀려먹는 재미도 꽤 즐겼었다. 중학생이 된 나에게 어느 날 엄마가 말했다.


6학년 때 OO이 엄마가 엄마에게 찾아왔었다고 한다. 자신의 딸이 나 때문에 학교에 가기 싫어한다는 말을 엄마에게 했다고 한다. 내용은 내가 아이들 뒤에서 OO 이를 괴롭히라고 시킨다고 했다는 것이다. 몇 차례 와서 부디 나를 전학시켜 달라고 말을 하셨었다고 한다. 엄마는 많이 고민하셨던 것 같다. 실망도 하시고, 걱정과 두려움이 생겼었다고 한다. 그런데, 엄마는 당시에 나에게 그 말을 하지 않으셨다. 아마 아들이 받을 충격이 클 것이라 생각하셨던 것 같다. 아니면, 내가 OO 이를 해코지할까 봐 걱정되셨을 수도 있다. 여하튼 엄마는 많이도 사과하신 것 같다. 죄 많은 자식의 부모로서 속 썩고 엇나간 자식 안 돌아올까 노심초사했었던 마음이 어렴풋이 느껴졌다.


아마도 내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나에 관한 스토리가 부모님에겐 있을 것이다.

변명을 해보자면,,, 내 기억에는 내가 짖꿎었다는 기억은 있지만 누구를 시켜서 괴롭히라고 할 정도로 나쁜 아이는 아니었다고 생각하는데... 그 아이와 그 아이 어머니의 오해라 생각하고 싶지만,,, 피해를 입은 입장에서는 매우 속상했을 이야기라 생각이 든다. 다시 한번 정말 사죄하고 죄송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약속하건대, 적어도 내가 기억하고 있는 중학생 시절부터의 나는 절대 그런 일을 하지 않았고, 어른이 된 지금도, 앞으로도 그런 일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다짐해 본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이런 상처를 받았기에 쉽게 용서를 구하는 게 어렵다는 것을 안다. 그렇기에 더더욱 겸손하게 빚진 자의 마음으로 살아가길 다짐해 본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끝까지 용서하고 묵묵히 지켜보고 있는 것이 부모라는 것을 배워가는 요즘이다.


미국 유명한 목사님이 열아홉 남매 중에 열다섯 번째라고 한다. 언론사에서 목사님의 어머니에게 찾아가 어떤 자녀를 가장 아끼고 생각하는지 물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대답했다.


‘아픈 데가 있는 아이가 있으면, 그 아이를 가장 생각합니다. 집을 나간 자녀가 있으면 그 아이를 가장 많이 생각하죠. 어려움 중에 있는 아이가 있다면 그 아이를 가장 사랑합니다.’



다혈질에 무책임해 보이고, 세상이 보기에 크게 성공하지 못한 목사인 아빠, 세월로 인해 어느덧 억척스럽게 변한 불평 많은 엄마... 그리고, 제멋대로 살아가며 부모의 걱정과 사랑을 듬뿍 받은 아들. 인간적인 눈으로 보기에 나도 우리 부모님도 다 어딘가 마음이 쓰이는 자녀들일 것 같다. 그래서 그런가... 난 이 두 분을 통해 크신 하나님을 경험한다. 하나님의 성품이 부모의 마음과 매우 닮아 있다는 것을 삶을 통해 배우게 되었고 이제는 그것을 추억할 수 있는 나이와 처지가 되니 참 감사한 일이다.




대화거리


1) 아빠가 기억하는 자녀의 유년기를 이야기해 달라.


2)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믿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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