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3, 아기다리 고기다리던 사생대회 날이었다. 밖에 나가 그림 그리는 것이 즐거웠다기보다는 그저 학교 밖에서 하루 놀 수 있어서 기다려졌던 것 같다.
난, 그때 알았다.
김밥을 만드는데 돈이 많이 든다는 것을... 재료들을 적은 단위로 팔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속에 알차게 맛있는 햄이 들어있는 김밥을 만드는데 드는 돈! 지금 생각해 보니 당시 우리 집 형편이 김밥을 마땅히 싸기 어려운 처지였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김밥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에 따라 친구들 사이에서 어깨가 으쓱 해지기도 하고, 햄 중에서도 스팸이 들어 있는 김밥을 싸 온 친구의 목은 꼿꼿해서 그거 하나 얻어먹으려고 비굴하게 친한 척했던 기억도 있다. 이러다 보니 여차하면 김과 단무지만 들어있는 김밥이 우려되어 엄마를 한참 조르는 나를 보시고선 엄마는 새벽시장 김밥집에 가서 김밥을 사다 주셨다.
물론 엄마는 가끔 김밥을 싸 주시기도 하셨다. 형과 내가 함께 소풍을 가는 날이 그때다.
가끔이다 보니 우리 형제는 엄마 옆에 서서 김밥 꼬다리 쟁탈 전이 벌어진다. 나이차이가 많이 나서 경쟁이라기보다는 난 형이 남긴 것을 먹는 수준이다. 알겠지만 꽁지의 희소가치는 엄청나다. 형편상 많이 싸지 못하는 김밥의 꽁지는 특히나 그렇다. 장자의 특권을 가진 형은 엄마 옆에서 쏙쏙 잘도 먹었다. 심지어는 몇 개 안 되는 튼실한 몸통도 먹었다. 난 간혹 김밥이 옆구리가 터져주기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몇 줄 만들지 못하다 보니 부모님은 김밥을 먹지 않으셨다. 우리 도시락을 더 채워 주시곤 하셨다. 뭐, 철부지 수준에서 그런 부모님의 모습을 슬프게 느끼기보다 난 꽁지가 너무 먹고 싶었다. 특별히 단무지가 길~게 삐져나와 있는 그 꽁지!
그래서인지 난 지금도 김밥을 먹을 때 꽁지먼저 먹는다.
그나마도 매번 김밥을 만드는 것이 어려웠다. 그런 우리 집 사정을 아셨는지 때마다 성도님들은 성미를 하시거나 쌈짓돈을 엄마에게 건네시곤 하셨다. 가끔 나에게 직접 용돈을 주시기도 했다. 시장에서 어렵게 일하시는 성도님들이 주시는 그런 용돈이었다. 어린 나이에는 그게 얼마나 귀한 돈인지도 모르고 당장 받는 돈이 좋았던 것 같다. 때론 동정받는 것 같아 자존심 상해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엄마는 그렇지 않으셨다. 형편상 도움을 많이 받아야 했던 우리 집이었지만 난 엄마에게 겸손히, 감사하게 도움 받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형편에 관계없이 어떻게 겸손하게 나눠야 하는지 배우게 되었다.
돌아보니 나의 또 다른 부모님들은 성도님들이었을 수도 있다. 갚을 길은 없지만, 거저 받은 은혜와 섬김의 손길에 대해 항상 빚진 마음으로 살아야 함에 대해 배운 것 같다.
여하튼, 본격적인 이야기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소풍이나 교외활동을 할 때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은 당연 패션이었다. 평소 학교에서 시도해 보지 못했던 머리 스타일부터 옷과 신발 등으로 맘껏 멋을 부려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난, 형의 멋있는 옷들을 사전에 치밀하게 빨랫감 중에서 챙겨놓고 이날을 위해 몰래 준비해 놓는다. 그날은 티셔츠와 신발은 형에게 빌리고(?), 바지는 야심 차게 준비한 찢어진 칠부 청바지를 입을 계획을 세웠다. 지금은 지저분해서 입으라 해도 안 입겠지만 왜 그렇게 그때는 그렇게 입고 싶었는지... 당시만 해도 뭔가를 찢어서 너덜너덜하게 입고 다니는 건 동네 쫌 노는 형들, 잘 나가는 누님들이나 하는 패션이었다. 그 외에는 본의 아니게 찢어진 옷을 입어야 하는 노숙 아저씨들이 하는 패션이었다. 자유방임주의자인 원목사님과 사모님도 잘 용납이 안 되는 그런 패션이었다. 집에서 나서는 날 보며 '영등포역으로 가냐?'라고 할 정도였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계획대로 진행했다. 대신 최대한 깨끗하게 하고 나가라는 당부를 엄마에게 들었던 것 같다. 친구들을 만나 버스를 타고 경복궁으로 향했다. 역시나 지극히 평범한 패션의 일색이었다. 날 걱정해 주는 녀석들도 있었지만, 눈빛은 부러워하는 것 같았다. (가끔 병적으로 오는 나의 높은 자존감은 하나님 주신 가장 큰 선물 중에 하나다.)
뭐, 당시만 해도 날씬하고 외모도 봐줄 만했다고 나 스스로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집결장소에 도착해서가 문제였다. 선생님의 눈에 띄어선 안 됐다.
덩치 큰 친구뒤에 숨어서 출석 확인을 받고, 재빨리 자리를 잡았다. 그림에는 소질이 없었다. 뭐, 집중력이 부족해서인지 만화 끄적이는 정도는 즐겼지만, 구도를 잡고 생각하며 채색하는 실력이 부족했다. 역시나 그날도 30분 만에 후다닥 그림을 그리고 주변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맛나게 도시락을 먹고 말뚝박기를 하고 놀았다. 선생님들도 식사를 마치시고 아이들을 감시(?)하러 순찰을 다니셨다.
그때 한 선생님이 지나시다 날 부르셨다.
"너희 아버지가 목사님이라며?"
평소 교회 열심히 다니시기로 소문나신 선생님이었다. 우리 담임선생님과도 친하신 분이었다. 그러시고는 바로 가셨다. 뭐, 그러려니 하고 열심히 말뚝을 박았다. 한참을 놀았을까... 작품(?)을 제출하기 위해 다시 집결했다. 스스로는 매우 만족스러웠지만 선생님의 반응은 냉랭했다.
'작품을 모르시는군...'이라 생각하고 집에 가려던 찰나였다.
믿지 않겠지만 목사자식이 되면 주변의 작은 소리도 잘 들린다. 특히나 내 얘기를 하는 것 같은 사람을 알아채는 눈치는 엄청나다. 심지어는 육감으로 독심술까지 펼칠 수 있게 된다. 뒤통수가 따끔거리고 귀가 간질거려 선생님들끼리 모여 있는 곳을 보았다. 마침 좀 전 나의 호구조사를 하고 가신 그 선생님과 담임 선생님이 대화중이셨다.
'날 보며...'
거기서 끝났으면 내 피해의식으로 인한 과민 반응 정도가 되겠지만... 눈이 마주치고 난 담임 선생님께 불려 갔다. 대형교회에 열심히 다니시는 우리 담임선생님...
"너 오늘 복장이 그게 뭐니?"
뭐, 담임 선생님으로서 적절한 지적이셨다. 그런데... 그 후
"목사 아들이 그러고 다니면 어떡하니? 그러면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니?"
"죄송합니다..."
다 좋다.
내 꼴이 불량했다는 것도 인정한다. 그로 인해 다른 선생님으로부터 담임 선생님께서 창피를 당하셨다면 더더욱 죄송스러운 일이다. 다만, 목사아들 운운하면서 지적한 것은 좀 불쾌했다. 유치하지만 내가 의사 자식이었으면, 혹, 판사 자식이었으면 그리 말했을까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같은 기독교인으로서 자신들이 보기에 목사아들은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이 반영되었다 생각한다. 자식이기는 장사 없다던데 유독 목사들은 천하장사보다 더 힘이 세야 하는 것인가. 게다가 이미 그 말속에 실은 우리 아빠목사님을 판단해 버린 것은 아닐는지...?
'에효... 목사가 자식을 저렇게 키우면 어떻게 해...'
아니면,
'쯧쯧... 저런 자식을 둔 목사님은 얼마나 속상하실까...?'
...
많은 교회 잘 다닌다 하시는 분들이 잘하시는 안 좋은 놀이(?)가 이런 험담 아니던가? 하지만, 성경에서도 하지 말라하는 이런 무시무시한 놀이에 중독된 어른들이 사춘기 청소년들의 호기심에서 저지른 실수에는 왜 그리도 인색하신 건지... 여하튼, 개인적으로 기왕 뒷말을 들을 거라면 내가 '저런 자식'이 되는 후자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찌 됐든 목사자식들은 적어도 교회라는 공간에서는 어려서부터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관심을 많이 받는 공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된다. 뭐, 공인이 연예인이나 운동선수도 아니고 아닌 '성직자'로서의 요청이다.
'넌, 목사 자식이 왜 그러냐?'
이미 그 말의 저변에 깔려 있는... 너무 무시무시해서 저항할 수도 없는... 그런 목사 같은 삶에 대한 요청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한창 민감한 시기에 이런 요구들은 꽤나 부담스럽다. 그리고 자칫 우울하거나 반항적으로 변해 버리기 쉽다. 나처럼...
한편으로, 우리는 교회에서 의도하지 않게 강자가 된다. 적어도 크게 망나니가 아닌 이상 목사님 자녀인 우리들은 필요 이상의 대우를 받게 된다. 아마 목사님 섬기듯이 그 자녀도 섬기고 격려해 주시는 것이라 생각된다. 반면에 교회에서 만큼은 목사자식의 친구들은 피해를 입거나 열등감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하다못해 교회식당에 가보면 목사님 상에는 반찬도 한두 가지 더 있고, 뭇국인 줄 알았던 국이 목사님 그릇에선 역사하여 물 반 소고기반이 되어 있지 않던가? 물론 리틀 담임목사인 우리에게도 많은 사랑과 혜택이 주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성도님들의 사랑과 섬김일진대 좋든 싫든 자연히 친구들 사이에선 난 특별대우를 받는 강자가 된다. 대부분 이런 대우를 좋아하진 않는 듯하다. 특히나 식당에서 배부른데 밥 많이 주는 것... 쪼금 달라고 하면 뭐라 한 말씀하신다. 식당가기 싫어진다. 그냥 내버려 뒀으면 좋겠다.
목사자식으로서의 고민 중 큰 부분은 '내가 부모에게 실망을 안겨주면 어떡하나'이다. 그리고, 나의 행동으로 인해 목사, 사모인 부모님이 판단받거나 좋지 않은 말들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까 염려된다는 것이다. 부모에게는 이런 말을 하지 못한다. 내 고민에 대한 해결책이 너무도 쉽게 부메랑이 되어 나의 행동에 대한 지적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네가 똑바로 해라!'
'넌 누구 닮아 그러냐? 너 때문에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다...'라는 식의 부메랑 말이다. 물론, 아닌 분들이 더 많기 바란다. 아빠를 보며 가정에서도 긴장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는 목사만큼이나 괴로운 사람도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오랜 기간 자신을 봐온 가족에게 꾸준히 자신을 바꿔 나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인정받는 것은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란 걸 알게 되었다. 누구보다도 나의 과거를 집요하게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가족 아니던가...? 하지만, 이런 부담은 비단 목사만의 고민은 아니어야 한다. 믿음생활 잘하시는 집사, 장로님들도 똑같이 고민해야 한다. 매주일 1부 예배 찬양인도를 하고 중고등부 교사를 하는 평신도 사역자인 나조차도 한 주를 잘 살아내지 못했다고 생각되는 주일에는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나의 한주를 다 아는 아내 앞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하심을 선포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오히려 하나님과의 관계는 어떻게 해보겠는데 아내와 눈이라도 마주치면
'난 당신이 얼마나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실패했는지 알고 있어요!
그러니 그렇게 은혜받은 척 하지 마쇼!'
라고 말할 것만 같아 위축된다. (물론 사랑하는 아내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교사를 하던, 그저 예배만 드리던 우리가 크리스천 부모라면 교회에서만 잘 감춰진 모습을 보이면 되는 수준이 아니다. 나의 삶의 예배가 여과 없이 드러나는 공간... 그런 곳이 바로 가정이다. 우리 신앙의 레알 전쟁터는 가정인 것이다. 여하튼, 그런 부담을 갖는 일짱은 당연 목사님들 일 것이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목사의 인간적인 면을 가까이에서 보아야 하는 자식의 마음은 알랑가 모르겠다. '항상 기뻐하라'는 설교를 하는 아빠의 시름을 알고 있고, '구하라 주실 것이다'라고 설교하는 아빠의 불평, 불만을 알고 있을뿐더러 성도의 숫자와 씨름하는 목회자의 고민을 옆에서 보는 그런 마음 말이다. 특히나 온유와 인내를 말하는 아빠의 다혈질 성격... 뭐, 말이나 하지 않으면 괜찮은데 자신의 취약한 부분을 설교하는 아빠는 오죽할까 싶다. 특히나 가족끼리만 예배드릴 때 아빠가 그런 말씀을 전하면 손발이 오그라들어 은혜로 받기가 쉽지 않다. 뭐 그럼에도 예수님의 성품을 가르치다 보니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다만, 목사들도 예수님을 닮아가는 과정일진대... 이미 그 성품이 예수님이어야 한다는 성도들과 나의 높은 기대 수준이 문제라 생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은 그렇게 관대하지 않기 때문에 목사는 철저하게 자기 관리를 해야 한다는 게 내린 결론이다. 내가 신학공부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쉽게 말하지만, 목사가 되는 시험 필수 과목에 '가정생활', '자기 관리'에 대한 과목이 꼭 들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직장생활을 하는 것도 아니고 세상이라 말하는 곳에 상대적으로 노출 정도가 낮은 목사님들이 성도들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주요한 공간은 바로 가정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목사가정의 사생활이 보호받아야 하겠지만 예배의 시작인 가정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서로 위로받고 격려하게 된다. 경험으로 느끼는 것이지만 가족한테까지 자기 관리하기란 정말 어렵다. 그럼에도 가정이 바로 서지 못한 목회자는 목자로서 신뢰를 주지 못한다. 결국 어느 가정이든지 서로 용납하고 세워주는 훈련을 계속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성숙의 과정을 지켜보며 기대하고, 중보해야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부모에게 부끄러운 자식이 되기 싫은 자녀의 마음과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기 싫은 부모의 마음이 만나야 한다. 결혼을 하고 나서 느끼는 것이지만 그런 과정은 매우 어색하다. 그나마 공동체 생활로 훈련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우리 부부도 그런데... 하물며 나이 많으신 분들은 오죽할까? 하지만 그것을 포기하는 순간 나의 자녀도 후일에 그렇게 말할 것이다.
"책에는 잘도 써놨던데... 아빤 왜 그래?"
가족과의 소통의 부분에 있어서 만큼은 목사님들이 설교법 못지않게 잘 훈련되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그 책임이 목사인 아빠에게만 있어선 안된다. 목사의 외로움을 기댈 수 있는 곳 또한 가정이다. (설마 여기서 목사가 하나님만 의지해야지 왜 사람을 의지하느냐고 말할꺼라면 당장 책을 덮어 주시길… 아니 이미 그전에 덮었어야 하는데...;;;) 그리고 그들을 위로해야 하는 것이 목사 자식으로의 사명이다.
미안하게도 이 부분은 '나는 하지 못했지만 너희는 잘해다오'하는 나의 개인적인 부탁이다. 오랜 기간에 걸쳐 나의 아버지는 외로웠고, 어머니는 힘들어했으며, 자식들은 반항했기 때문에 우리 가족은 서로 격려받지 못했다. 이 오래된 이미지는 형편이 나아진 지금도 굳은살처럼 딱딱하게 남아있다. 더 이상 아프지는 않지만 굳이 벗겨내고 새살을 만들려는 시도를 하지 않고 있다. 굳은살을 뚫지 않고는 서로를 축복하고, 위로하기란 불가능한데도 '적당히... 이대로 지내자.' 하며 서로를 인정한다는 허울로 덮고 있다. 괜스레 건드려 쓴 뿌리를 끌어내는 것보다 어쩌면 이것이 더 우리 가정의 영적 생활에 도움이 될는지도 모른다 생각하는 것 같다. 굳은살을 따듯한 물에 불려 연하게 하는 작업은 아마도 더 오래 걸릴 것 같다.
방법은 더 고민해 봐야 하겠지만, 그럼에도 서로를 위해 계속 노력해야 한다. 무조건 직면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오래도록 벌어 저온 감정의 골이 쉽게 좁혀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두려우면 서서히 조금씩 한번 만이라도 경험을 쌓아가며 굳은살을 불리는 작업을 해야 한다. 무리해서 간 가족여행에서 대판 싸우고 기분 상해 돌아왔다 할지라도 이러한 시도는 계속되어야 한다. 한번 시도했다고 만족할 부분이 아니다. 구원 후의 성화의 과정이 있듯이 이 또한 길고 긴 섬김이 되어야 한다.
언제부턴가 섬김 하면 왠지 재미없고 나를 희생해야 하는 것으로 인지 되어 있다. 하지만, 난 가족들을 섬기며 즐거운 섬김, 헌신이 가능하다는 것을 조금씩 배워 나간다. 가장 좋은 건 굳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고 굳기 전에 잘 벗겨가는 것이다. 혹, 이미 늦었다 생각되더라도 필요한 건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노라는 우리의 의지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난 위로를 받는다.
나 역시도 그 과정에 있으며 우리 가족에도 아직 기회가 있음에 감사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마음을 안다는 것은 표현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군에 갔을 때 종종 집에 편지를 쓰곤 했다. 누구나 그렇듯이 지키지도 못할 수많은 마음의 다짐과 얼굴 보고는 낯 뜨거워하지 못할 말들을 적어 보냈었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 엄마가 내게 말했다.
“왜 요즘은 편지를 쓰지 않니?”
엄마는 나한테 편지를 받고 싶은가 보다 생각했다. 그리고 그때 받은 편지가 엄마에게 어떤 의미로든 위로가 되었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정말 가끔이지만 무슨 일이 있을 때 엄마에게 편지를 쓰려고 한다. 생각난 김에 지금 써야겠다.
P.S : 엄마에게 쓰는 편지에 아빠 편을 들면 아빠에게 직접 편지를 쓰는 것보다 효과적이다. 보통 아빠는 엄마에게 온 편지를 건네 보기 때문이다. 딸이 없는 아빠가 좀… 짠하다.
대화거리
1) 학교친구들이나 선생님이 내가 목사님 자식이라는 것을 아는가? 그에 대한 반응이 어떠한가?
2) 아빠의 오래전 친구들이 아빠가 목사가 된 것을 아는가? 반응이 어떠한가?
3) 엘리와 두 아들들의 이야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