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스물아홉이었다. 서른의 시작도 그리 순탄하지는 않았다.
무려 19년을 함께 한 우리 가족의 영원한 막내, 슈가 무지개다리를 건넜고, 켜켜이 내려앉은 그리움과 흘려보낸 몇 리터의 눈물로 겨우 슈를 마음에 묻었다고 생각했을 때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몇 달 간격으로 이별과 죽음을 겪으니 일상이 그렇게 잔인할 수가 없었다.
회사에서 제공하는 심리상담 프로그램을 신청해 보기도, 친한 친구들을 붙잡고 엉엉 울기도 했는데, 일상으로의 빠른 회복은 왠지 모르게 죄스러웠고 마음 둘 곳은 허락되지 않았다. 일을 하면서도, 책을 읽으면서도, 영화를 보면서도, 누군가를 만나고 있을 때도, 어딘가 나사 하나 빠진 것처럼 훅 눈물이 솟았다.
떠난 개의 밥그릇을 씻으며 생각했다. 나는 앞으로 얼마나 더 주인 잃은 밥그릇을 씻게 될까.
내 마음은 텅 비었는데 내 육신은 매일과 같이 내일 마실 커피에 담을 얼음을 얼리고, 청소기를 돌리고,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는 게 우습고 죄스러웠다. 어떤 삶은 끝나는데 또 어떤 삶은 계속된다는 게, 이렇게 슬픈 일이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근한 나는 단정하고 반듯한 사람이어야 했고, 충분한 애도를 할 틈은 주어지지 않았다. 지켜오던 일상이 갑자기 낯설어지고 한동안은 사람 대하는 법을 잊었다. 그런 나 자신이 왠지 모르게 꼴 사나워서 눈 맞춰 대화하는 게 어려운 시기이기도 했다.
슬픔에 셋방살이를 하는 기분이었다. 문 밖은 바로 슬픔.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에 대한 적당한 답을 고민할 여유 없이 내일은 너무나 당연한 듯 찾아온다. 알람 소리와 함께 시작된 하루는 어제와 같다. 출근 준비를 하고, 만원 전철에 몸을 싣고,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회사 보안카드를 찍고, 할당된 업무를 처리하고, 쓰린 공복에 커피를 몇 잔 연거푸 들이켠다. 반복되는 하루들 속 오늘과 내일의 교집합은 곧 전체와 같은 느낌이다.
퇴근 후 반쯤 감긴 눈으로 멍하니 차창에 눌어붙은 빗물 땟자국을 세다 내려야 할 곳을 놓친 적이 있다. 무릎 위에 올려놓은 지갑이며, 핸드폰이며, 읽다 만 책을 가방에 대충 허겁지겁 쑤셔 넣고 버스 카드를 찍으려는데, 카드가 보이지 않는다. 펼쳐 둔 것들을 제대로 갈무리할 여유 없이 허둥지둥하다 내릴 곳을 지나친 찝찝함. 올해로 꼭 서른을 맞이한 나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직 겪지 않은 앞자리 3의 챕터는 논외로 하더라도, 고작 서른이라는 숫자가 주는 중압감은 남다르다. 건실한 가정의 가장이자 한 아이의 아버지인 서른아홉의 회사 선배도, 그 언젠가 마흔아홉을 보내셨던 부모님도, 왠지 순조롭게 저마다의 아홉수를 보낸 것 같은데, 내 스물아홉은 어설프고 어중간하면서도 살짝 아팠고, 준비되지 않은 채로 서른 앞에 내던져졌다. 앞으로 얼마나 더 반복해야 할지도 모를 폭력적으로 긴 시간이 속수무책으로 놓여 있는 듯 아득하다.
아직 축축한 아스팔트에 누군가 실수든 고의든 지분거려 놓은 발자국채로 굳어 버린 것들이 내 안에 지층처럼 쌓여 있다. 내가 나인 것이 못내 부끄러웠던 날들과 자랑스러웠던 날들이 알알이 엉긴 채로. 지나치게 어른스러운 아이는 귀엽지 않다는 소리를 듣는 것처럼, 억세지는 껍데기 속 여전히 어린아이 칭얼거리는 듯한 유치함은 서른이라는 나이에는 영 걸맞지 않은 듯하다. 하지만 나는 때로는 폐로 크게 호흡하는 법을 잊고 갓난아이의 덜 마른 머리통 끝 작은 숨구멍으로 밭은 숨을 쉰다.
희로애락에 대한 타인의 에세이는 상투적이고 감상적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삶의 어느 한 꼭지에서는 불현듯 그런 지리한 표현이 모든 것을 설명해주는 한 줄기 빛이 되곤 한다. 상투적이라고 느껴지는 것은 그것이 곧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특수성의 일반화가 큰 위로가 되곤 한다. 어쩌면 이 세상은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묘한 공감으로 줄어드는 거리감들이 모여 이루어진 것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