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의 진수 '라스 토레스(Las Torres)'
20250225 (14일차)
남아메리카 - 칠레 - 푸에르토 나탈레스 -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
본격적으로 트래킹을 시작한다. 작은 배낭 하나만 들고 온 나는 여기서 꽤나 이질적인 존재다. 큰 배낭 맨 많은 사람들은 위에 이미 언급했고, 하다못해 커뮤니티를 보면 무릎 보호대와 등산 스틱은 무조건 필수라고 하는데, 난 그런 것들도 없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등산을 나름 많이 다닌 편이라 좀 오만한 것도 있었지만 귀찮은 것도 사실 맞았다. 뭐, 암벽등반도 아닌데 그정도까지일까 싶어서. 오, 나만 진심이 아닌 것일까. 라스 토레스로 향하는 긴 행렬에 나는 가벼운 몸으로 거의 뛰다 싶이 했지만 번번히 길막에 막힌다. 다들 단체거나 일행이 있고, 그들은 또 모두를 위해 천천히 가기 때문이다. 그중에 유독 눈에 띄는 친구가 있다. 서양에서 온 남자인데, 나와 등산 속도가 비슷하다. 심지어 혼자다. 저 친구의 페이스를 따라가야겠다 싶어 뒤에서 졸졸 쫓아다녔다. 그러다 한 4km쯤 걸었을까, 뒤를 돌아보니 엄청난 장관이 보였다.
어느 산이나 그렇듯, 생각보다 많이 올라오지 않았는데도 꽤 괜찮은 조망을 보여줄 때가 있다. 그런데 심지어 여긴 파타고니아 아닌가. 멀리 보이는 산 등성이와 넓게 퍼진 평야, 거기에 아름답게 빛나는 에메랄드빛 호수까지. 갑자기 감상에 젖는다. 그 와중에 갑자기 한 남자가 나에게 말을 건다. 아까 나와 같은 페이스로 걷던 친구다. 새삼 반갑다. 보통 한국에서 산행을 할 때 혼자 가면 가끔 말을 걸고 동행하게 되는 사람이 있는데 막상 페이스가 안 맞으면 꽤나 골치거리다. 얼른 목적지에 가야하는 것도 있고, 느리게 걷는게 꽤나 답답하게 느껴지고 운동도 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저 친구가 워낙 반가웠다. 오, 저 친구라면 이곳에서 등산 메이트로 아주 적절하겠구만. 우리는 서로의 신상을 캐고 같이 등산을 시작했다.
프랑스에서 온 그의 이름은 마르코. 파리에서 나고 자랐고 지금은 스위스에 있다고 한다. 부모님은 세르비아 출신이고 본인이 태어나기 전에 프랑스로 오셨다고 한다. 20년 동안 복싱을 하다가 지금은 그만둔 그는 96년생이고 나보다 훨씬 나이 들어 보이지만 원래 서양 친구들이 다 그렇지 않나. 지금은 스위스의 한 냉동창고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휴가를 받아 어떤 어플리케이션으로 해외 각지에서 일을 해주면 숙식을 제공해주는 그런 것을 신청해 여기에 있다고 한다. 꽤나 비용을 아낄 수 있는 여행 방법이니 나보고 참고해보라고 한다. 이 방식으로 중앙아시아, 캐나다 등 유럽 외 다른 대륙 여러 군데를 갔다고 한다. 꽤나 외향적이고 멋진 친구다. 스페인어를 어느 정도 할 줄 아는 그는 칠레에 여자친구가 있다고 한다. 여자친구인지 잠깐 만나는 사이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네트워크가 안 되는 상황에 연락이 없는 그에게 그녀가 엄청 기다리며 화가 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쿨한 척 말하지만 계속 네트워크가 되는지 확인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또 귀여운 모습 한 구석을 알게 된다. 가면서 많은 얘기를 헀다. 그는 가족이 프랑스 태생은 아니지만 꽤나 애착이 있었고, 그 관점에서 프랑스, 특히 파리에 아프리카계 이민자가 많은 것에 대해 불만이 많다. 북아프리카에서 온 무슬림들과 서아프리카에서 온 이민자들이 프랑스 내 큰 유권자가 됐고 점점 프랑스 특유의 색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솔직히 내 입장에선 그들과 피부색만 다를 뿐 이민자 가정인건 마르코도 같은 상황인지라 그의 불만이 다소 이기적이다고 생각했지만 또 어느 포인트에선 이해가 된다. 프랑스에선 토착민들과 이민자들 특히 무슬림과의 갈등이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던 터라. 운동선수 출신이라 몸 관리를 빡세게 해서 그런지 탄산음료도, 심지어 주스, 커피도 안 마시고 SNS는 바보같다며 계정도 없다는 그는 꽤나 자기 주관이 뚜렷하다. 이것 저것 얘기하면서 시간이 꽤나 많이 흘렀다.
마지막 꽤 힘든 돌산 코스가 있는 9~10km 구간에 도달하니 거의 도착한 듯하다. 그 3개의 봉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갑자기 확 트이는 시야와 호수, 그리고 라스 토레스가 한 눈에 보이니 환상이 따로 없다. 아니 어떻게 물의 색이 저렇고 조합이 이렇게 되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다들 비슷한 생각인지 그 자리에 멈춰 이동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마르코와 사진을 찍으면서 이곳 저곳 다른 각도에서 봉을 바라보다 보니 아까 우리가 먼저 지나쳐 왔던 등산객들이 속속 도착하기 시작한다. 파타고니아의 첫 일정에 이 정도면 다른 곳은 어떠할까 벌써 기대되기 시작한다. 아마도 고된 산행의 과정이 가져다 주는 감동도 한 몫 했겠지. 등산 코스 자체는 한국과 모습도 과정도 거의 비슷했으나, 이 마지막 목표지의 광경은 절대 한국과 그 근처에서 볼 수 없는 이곳만의 풍경이다. 한 여름 남반구 그 중 남쪽 끝에 가까운 곳에서 볼 수 있는 이 광경은 아마 몇 년이 지나도 눈에 선하지 않을까. 사진은 이 모습과 느낌을 다 담지 못한다.
내려가는 길은 아주 고달팠다. 등산과 체력에 자신있었던 나와 마르코는 좀 지친 상황. 그도 그런게 몸이 힘든 것보다 왔던 길을 그대로 돌아오는 것이 좀 지루한 터였다. 이대로 11km를 걸어서 돌아가야 한다니. 라스 토레스 후기 중 대부분이 내려오는 길이 힘들었다고 하는데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한국에서 등산을 할 때도 다른 루트로 내려오는 것을 선호하는데, 이곳은 깊고 긴 협곡을 통과하는 것이라 길이 유일해 어쩔 수 없는 선택지이긴 하다. 더군다나 배가 고프다. 아침에 일찍 나온 탓에 간단하게만 먹고 나왔는데 벌써 시간이 오후가 되었기 때문이다. 엄청난 칼로리 소모가 되었고 우리는 우여곡절 끝에 터덜터덜 웰컴센터에 도착했다. 말 많던 마르코도 돌아오는 길엔 말수가 적어진 것을 보니 나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웰컴센터에 도착한 우리는 얼른 먹을 것을 먼저 찾는다. 산이든 어디든 교통이 불편한 곳은 이런 안식처를 제공하는 곳이 독점이고 꽤나 비싼 경우가 많다. 제대로 된 음식은 없었고 푸드트럭에서 파는 고기가 들어 있는 한국 돈 12,000원짜리 샌드위치뿐이었으나 배고프니 선택권도 없고 어쩔 수 없다. 둘은 허겁지겁 먹으며 배를 채운다.
다 먹고나니 16시 반이다. 그런데 푸에르토 나탈레스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는 라구나 아마르가로 가는 셔틀버스는 19시라고 한다. 거기서 타는 버스는 20시다. 2시간 반동안 할 수 있는게 있나? 배가 부르니 현실이 보이기 시작한다. 마르코와 지금은 더 할 얘기도, 체력도 없고 와이파이도 없다. 딱히 대안이 없으니 기다리려고 하는데 마르코가 잠깐 어딜 가자고 한다. 같이 간 곳은 웰컴센터 옆에 있는 커다란 주차장. 가서 푸에르토 나탈레스까지 태워달라고 하자고 한다. 오잉? 위험하지 않나. 그래 또 별거 없겠지 한 번 해보자. 이번 트래킹을 오가면서 느낀 것이 해외에서 프랜치 커넥션. 즉, 프랑스인들끼리의 유대는 꽤나 단단한걸 느꼈다. 해외에서 한국인을 마주치면 반갑기는 하지만 딱히 말을 걸고 친해지는 경우는 조금 제한적인데 프랑스인들은 그런게 없는 것 같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문화권의 사람들`로 보인다. 등산하면서 지나치는 프랑스인들과 인사하는 것은 물론 캐나다 퀘백에서 온 사람들과도 꽤나 친근했던 것을 봤을 때 말이다. 우리가 일본인 중국인 구분하는 것처럼 그들도 보이나보다. 본론으로 와서 마르코는 뜬금없이 짐정리를 하고 있는 프랑스 게이커플에게 푸에르토 나탈레스까지 차를 태워달라고 했고 그들은 아주 흔쾌히 동의했다. 너무 쉽게 이루어져서 참 신기하다. 마르코와 이들 덕분에 3시간에 가까운 시간과 셔틀버스, 편도 버스비를 모두 세이브했다.
12개월째 전 세계 여행 중이라는 게이 커플은 꽤나 즐겁게 살아가고 있다. 인도 여행을 시작하여 동남아 - 중국 - 한국 - 일본 - 북아메리카를 거쳐 현재 남미에 있는 것이라고 한다. 한국에서는 서울에만 있었으며 바베큐가 꽤나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외국에서 만난 한국 방문자들 중 남자들은 꼭 바베큐 얘기만 한다. 이들은 마치 프랑스 영화 몽상가들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들 같다. 한 눈에 봐도 이민자 출신이 아닌 프랑스 태생으로 보이며 프랑스식 개인주의가 곁들인 친구들 같이 여유가 느껴진다. 무심한듯 아주 친절하다. 이외의 대화들은 그들이 프랑스어를 사용하며 프랑스 내 여러 도시와 그 동안의 여행 얘기를 하는 듯 했다. 중간 중간에 나에게 프랑스어를 사용해서 미안하다고 했지만 피곤하고 잠이 계속 오는 탓에 나는 오히려 고마웠다고 하면 좀 이기적인가. 너무나 편안하게 복귀했고 고마운 마음에 5천 페소를 손에 쥐어준다. 딱히 거절도 안 하고 쿨하게 받아드는 그들의 모습이 인상적이고 가식이 없어서 좋다. 인연이 되면 또 보겠지. 얼른 씻고 잠을 자야겠다. 내일은 국경을 넘어 파타고니아의 두 번째 여정 아르헨티나로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