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대륙 15,000km의 대장정
동아시아와 정 반대에 있는 남아메리카를 어떤 이유에서건 방문한다는 것은 상당한 노력과 시간, 비용이 소요된다. 그러므로 철저한 계획과 준비가 필요한데, 여행에 있어서는 MBTI의 P 성향인 나는 그렇지 못했다. 여행을 갈 때마다 오로지 비행편과 숙소만 예약하고 훌쩍 떠나, 현지에서의 변수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적응한다. 과연 이런 내 여행 스타일이 남미 여행에도 통할 것인가.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비행편'과 '숙소'만 예약하는데도 엄첨난 공수가 들었다. 일단 환승 횟수를 제외하고 비행편은 총 11번, 그리고 10개의 숙소 예약이 필요했다. 어마어마하지 않는가. 거기다가 어디서 어떤 투어 프로그램을 하냐에 따라 숙소도, 일정도 변동이 가능하니 여러 변수를 감안하여 계획할 수밖에 없다. 제한된 시간에 몸 가는대로 흐르듯 여행을 하기란 아무래도 제약이 있기 마련이다.
24박 27일에 5개 국가, 16개 도시. 그 와중에 몇 개의 스팟은 제외했다. 양자택일을 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많이 생기기 마련이다. 위 지도에서 볼 수 있듯이, 페루의 수도 리마로 들어와 대륙의 남쪽으로 크게 돌아 동쪽 상파울루로 나가는 가장 인기있고 전통적이며 전형적인 반시계 방향의 여행 루트였다. 반시계 방향 루트의 장점은 몇 가지가 있다. 첫 번째로는 '초반에 힘들고 후반부에 편해지는 루트'라는 점이다. 여행의 초중반부까지는 고산지대와 사막, 빙하지대 등을 거치며 상당한 체력소모를 불러오는데, 후반부로 갈수록 저지대의 대도시 위주여서 몸이 점점 편해지는 여행이 된다. 두 번째로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선호하는 루트로 '일정이 상대적으로 유연'하다는 점이다. 반시계 방향 루트가 교통편도 더 많고 저렴하며 심지어 정보도 훨씬 많다. 단점은 여행을 하면 할수록 한국에서 멀어져 집으로 돌아가는 비행시간이 점점 늘어난다는 것 정도. 반시계 방향과 반대인 시계방향 루트는 위에서 말한 것들과 당연히 정 반대일 것이다. 그럼에도 시계방향 루트로 여행하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만의 매력이 있겠지 아마도. 앞 글에도 언급했지만 이번 여행은 크게 3개 파트로 나누었다. 첫 번째 파트는 페루부터 칠레 산티아고까지 고산지대 - 사막을 잇는 루트. 두 번째 파트는 칠레와 아르헨티나 국경지대의 '파타고니아' 루트. 마지막 세 번째 파트는 부에노스아이레스 - 이과수 - 리우 데 자네이루로 이어지는 '동쪽 해안 대도시' 루트이다. 하나하나 살펴보자.
서울에서 출발하는 제일 저렴한 항공권을 찾다 보니 두 번이나 환승을 하란다. 김포공항 - 도쿄(하네다) - 미국 LA - 페루 리마. 가까운 김포공항에서 출발한다는 것이 장점이지만, 두 번의 환승이라는 점이 꽤 피곤하다. 항공사는 일본항공(JAL). 거기다가 악명 높은 LA공항(LAX)에서의 환승과, LA부터는 다른 항공사인 라탐 항공(LATAM)으로 환승한다는 것이 꽤나 불안 요소로 작용한다.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이 스토리는 따로 다루려고 한다. 드디어 남미의 페루, 리마로 밤 늦게 입국하고나서는 1박을 하고 리마 시내에서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그날 저녁 쿠스코행 비행기에 몸을 담는다. 쿠스코는 해발고도가 3,500m가 넘기 때문에 고산병 약을 꼭 챙겨먹고 비행기를 타야 한다. 밤에 도착한 쿠스코에서도 하루 묵고 쿠스코에서 출발하는 1박2일 투어를 떠난다. 이 투어는 성스러운 계곡 투어와 그 유명한 마추픽추 투어도 포함된다. 투어 마지막 날 밤, 쿠스코에 도착해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은 하루 온전히 쿠스코에서 보낸다. 다음날은 아침에 바로 볼리비아 수도 라파스로 떠난다. 이곳은 이번 남미여행에 유일하게 관광비자가 필요한 곳으로 행정처리에 유념해야 한다. 라파스에서는 3박을 하고 아침 일찍 우유니사막으로 떠난다. 라파스에서는 아무래도 도시에서만 있기도 뭐해 차칼타야산 투어 등 당일치기 투어도 참여한다. 우유니에서는 칠레 국경으로 넘어갈 때까지 2박3일간의 투어 프로그램에 몸을 담는다. 첫 날엔 우유니 소금사막, 둘, 셋째 날엔 소금사막 남쪽의 광활한 고산지대의 사막 자연 곳곳을 투어한다. 볼리비아 - 칠레 국경에서는 버스를 타고 넘어간다. 유럽을 제외하고 인생에서 처음으로 육로를 통해 국경을 넘어본다. 그렇게 칠레 국경을 넘어 산 페드로 데 아타카마 도시에 도착하면 한 나절 정도 있다가 칼라마라는 버스 한 두 시간 거리 도시로 넘어가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로 날아간다. 원래는 산 페드로 데 아타카마에서 아타카마 사막을 보고 가야 하는데, 일정 관계상 생략해버려 아쉽다. 산티아고는 파트1 루트에서 쌓인 여독을 푸는 쉬어가는 도시이다. 여기서 꼬박 하루를 쉬고 파트2인 파타고니아로 넘어간다.
산티아고에서 푹 쉬고(?) 파트2 파타고니아로 넘어간다. 파타고니아의 일정은 정말 말 그대로 '자연'을 보고 느끼기 위한 일정인데, 두 번의 트래킹과 한 번의 빙하 관람이 있다. 먼저 도착하는 곳은 칠레의 푸에르토 나탈레스. 이곳에서는 2박을 하는데, 첫 날은 다음날 트래킹을 위한 준비 및 빨래 등의 정비를 한다. 둘째 날은 대망의 토레스 델 파이네(Torres del Paine) 국립공원으로 가 라스 토레스(Las Torres) 산봉우리를 보러 간다. 올라가는 게 아니고 보러 가는 것이니 하루만에 가능하다. 그럼에도 왕복 약 20km의 트래킹 코스로 막 수월하지는 않다. 돌아와서 밤에 푹 쉬고, 다음날 아침엔 칠레를 떠나 아르헨티나로 향한다. 그 도시의 이름은 엘 칼라파테. 이곳도 버스를 타고 육로로 국경을 넘는데, 파타고니아에서는 In/Out을 제외하고는 모두 버스로 이동을 한다. 엘 칼라파테에서는 이튿날 아침 일찍 버스로 엘 찰텐으로 떠나 피츠로이를 당일치기로 보러 간다. 조망이 예쁘게 나오는 라구나 카프리(Laguna Capri)까지만 가는데 이는 왕복 약 12km의 트래킹 코스이다. 다음날인 마지막 날은 산맥에서 내려온 빙하를 볼 수 있는 페리토 모레노 빙하(Perito Moreno Glacier) 관람이다. 하루 넉넉하고 여유롭게 빙하를 관람하면 파타고니아에서의 파트2 일정이 종료된다.
(파트3 지도)
이번 여행의 마지막 파트3 루트는 3개의 대도시와 이과수 폭포로 이루어져 있다. 파트3에서 가장 긴 시간을 보내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4일을 보낸다. 여기서는 파타고니아에서 사용한 체력을 회복하고 시티 라이프를 즐기며 두 개의 축구경기를 관람한다. 하루 시간이 남으면 우루과이의 수도 몬테비데오를 가볼까 했는데 굳이 그러지 않았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여유롭고 긴 여행을 보내고 이과수폭포로 떠난다. 이과수폭포는 아르헨티나, 브라질, 파라과이 3국이 국경을 마주하고 있다. 그 도시들은 각각 아르헨티나는 푸에르토 이과수, 브라질은 포즈두이과수, 파라과이는 시우다드 델 에스테인데, 이 중 아르헨티나와 브라질만 방문한다. 이 두 도시에 걸쳐 이과수폭포가 있기 때문이다. 이과수폭포 공원은 아르헨티나, 브라질 각각 사이드에 거대한 국립공원으로 설치돼있고 두 방면 모두 관람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시간이 되면 파라과이 시우다드 델 에스테에도 잠시 들러볼까 했는데 그러지 않았다. 우루과이. 몬테비데오처럼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한 찍어먹기 수준의 일정에 그칠 것이기 때문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비행편으로 푸에르토 이과수에 도착하면, 아르헨티나 사이드에서 이과수폭포를 관람하고 브라질 포즈두이과수로 버스를 이용해 국경을 넘는다. 남미에서 타는 마지막 버스이다. 여기서 다음날 브라질 사이드의 이과수폭포를 관람하고 다음날 리우 데 자네이루로 떠난다. 일정을 조금 잘못 짜서 리우에서는 한나절만 있는다. 그 한나절 동안 세계 3대 미항 중 하나인 리우의 해변가를 거닌다. 이파네마와 코파카바나 해변에서 즐거운 오후 시간을 보내고 다음날 아침 일찍 상파울루로 움직인다. 브라질에서 가장 큰 도시 상파울루에서는 별도 숙박 없이 하루를 꼬박 시내에서 시간을 보내고 밤 늦게 서울로 향하는 비행기를 탄다. 당연히 직항은 없어 에티오피아항공을 타고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 에서 경유 후 인천공항으로 귀국한다. 이 소식에 브라질과 에티오피아의 커피 원두를 부탁한 사람들도 좀 있었다.
남미 In/Out 거리를 제외하고 대륙 내에서의 직선 이동거리만 합쳐도 15,000km가 넘는 대장정이다. 해외에서 짧은 거주 경험을 제외하고 이렇게 긴 여행은 처음이라 의미도 느낌도 남다르다. 특히나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남미라니. 좀처럼 닿기 힘든 곳. 내 인생에 다시 이곳을 와볼 수 있을까. 기억에 각인시키기 위해 이제 남은 이야기도 이어서 글을 남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