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어쩌다 Digital Surveillance 3: 나를 디지털 감시 분야로 이끈 그 정책
앞선 에피소드에서 언급한, 한국에서 발표한 '그 정책'은 바로 코로나 시기 도입된 전자팔찌 정책이다.
내가 석사를 시작했던 시기는 2019년 9월이다. 우리 모두가 기억하듯이 코로나19 (COVID-19)는 2019년 말 등장하여 2020년 3월 판데믹 선언을 시작으로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을 바꾸었다. 각 국가에서 다양한 방역정책을 내놓았고 정책연구학 석사를 하던 중이었기에 각국의, 그중에서도 특히 한국의 방역정책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즈음이 내가 석사과정 논문 주제를 정해야 하는 시기였다.
영국 내에서도 학교마다 커리큘럼이나 학사일정이 다를 수 있겠지만 내가 다녔던 브리스톨의 정책연구학 석사과정은 1년 동안 6과목을 듣고 각 과목마다 제시되는 질문에 대해 4000 단어 내외의 아카데믹 에세이를 제출해야 했다. 그리고 그렇게 6과목을 들은 후 석사 논문을 작성하기 위한 몇 개월이 주어진다. 물론, 석사 논문 주제를 일찍 정한 동료들의 경우 논문 구상과 논문 작성에 좀 더 여유를 가지기도 한다. 하지만 나의 경우 석사 과정에서 듣는 수업에 온 에너지를 쏟다 보니 논문에 대해 구상할 여유조차 없었다. 논문 주제를 정해서 제출해야 할 시기에 과연 단 몇 개월 만에 논문을 완성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지만, 석사를 마칠 즈음에 조금 듬성듬성해진 듯한 정수리를 거울에 비춰보며 '가능은 한 것이었구나'하고 깨달았다.
처음 석사 논문 주제를 구상할 때는 아무래도 가장 최근 공부한 MBA 과정에서 배운 부분을 접목하는 것이 낫겠다 싶어 행정과 매니지먼트에 기반한 연구계획서를 제출하였다. 하지만 학과장 교수님으로부터 (학과장 교수님이 연구계획서를 받아 검토하신 후 적절한 지도교수님을 배치해 주시는 시스템이었다) 다른 논문주제를 검토해 볼 것을 권유받았다. 좋은 주제이긴 하지만 '정책연구'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 같다는 피드백이었다. 나름 고심하여 제출한 계획서였는데 반려되자 당시에는 매우 심난하였다. 논문주제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뚝딱 생겨나는 것도 아니고, 그렇지만 빠른 시일 내에 새로운 계획서를 제출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찰나 한국 뉴스 기사를 보는데 자극적인 단어가 눈에 띄었다.
"자가격리 시 전자팔찌 의무화"
전자팔찌라는 단어는 자연스럽게 성범죄자에게 채우는 전자발찌를 떠올리게 만들었고, 아무리 감염병 확산 방지를 위해서라지만 가장 심한 수위의 처벌과 비슷해 보이는 전자팔찌 정책이 허용되어도 좋은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실제로 우리나라 인권위원회, 시민단체, 변호사 단체 등에서 전자팔찌 도입에 대한 우려와 비판을 표했고 정부는 모든 자가격리자에게 전자팔찌를 채우겠다고 발표했던 정책을 자가격리 이탈자에게 전자팔찌를 채우는 것으로 수정하였다 (정확하게는 자가격리 이탈자에게 동의를 구하고 전자팔찌를 채우겠다고 발표하였으나 전자팔찌 착용을 거부하는 경우 자가격리를 시설격리로 전환해야 했기 때문에 온전한 동의로 보기는 어렵다). 내가 영국에서 지낸 경험 없이 한국에서만 쭉 지냈다면 전자팔찌 정책에 촉각을 곤두세웠을지는 잘 모르겠다. 꼭 영국이어서가 아니라 우리나라 '밖'이었기에 좀 더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 것인지, 정책을 공부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책의 적절성이나 정당성 측면에 대해 민감하게 생각한 것인지, 왜 더욱 눈길이 간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남편과 뉴스를 보면서 이런 정책을 영국에서 시행한다고 하면 과연 도입이 될 수 있을지, 사람들이 순순히 받아들일지를 얘기하던 중 남편이 이렇게 얘기해 주었다.
"그럼 이 주제로 논문을 써보는 건 어때?"
앗.
너무나 솔깃한 제안이었다. 뇌과학 분야를 공부하는 남편은, 사실 나보다 더 디지털 감시기술에 대한 지식이 많은 사람이다. 디지털 감시기술뿐만 아니라 과거로부터 현재로 이어지는, 그리고 미래로 뻗어나갈 기술에 대한 다각도의 시각 및 지식을 지닌 만물박사(?)다. 남편의 말을 듣고서 책상에 앉아 새로운 연구 계획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코로나 대응을 위한 전자팔찌 도입을 윤리, 법, 정책을 기반으로 분석해 보는 연구였다. 새로운 연구 계획서를 받은 학과장 교수님께서는 주제가 너무 좋고 시의성까지도 좋다며 열심히 연구를 진행해 보라고 독려해 주셨다. 그리고 디지털 감시 분야를 주로 연구하지는 않으셨지만 비슷한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해 오신 지도교수님을 배정받아 5~6개월간 석사논문을 작성하였다.
학위 논문의 구성 요소를 크게 도입, 선행연구 분석, 연구 디자인 및 방법론, 데이터 수집 및 분석, 결론 등으로 나눠볼 수 있을 텐데 선행 연구 및 관련 연구를 찾아보며 놀라움과 실망을 금치 못했다. 여러 서구 국가의 연구자들, 연구기관, 혹은 국가기관 등에서 보건 위기 대응에 대한 혹은 새로운 기술을 도입에 대비한 윤리적 가이드라인을 활발히 제정해 온데 비해 우리나라는 그러한 노력이 미미했기 때문이다. 앞선 에피소드에서도 설명하였듯 디지털 감시기술에 대한 연구나 학문적 인프라도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다. 코로나 때 도입된 전자팔찌에 관한 논문을 몇 개 찾았으나 대부분 법을 기반으로 타당성을 논의한 연구물들이었고 윤리나 정책 측면에서의 분석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아니, 이렇게 중요해 보이는 분야를, 왜 연구하는 사람이 없지?'
'우리나라는 왜 디지털 감시 학문이 성장하지 못했지?'
'우리나라는 왜 윤리적 요소에 대한 깊은 논의가 이루어지지 못하지?'
석사 논문에서 제시한 연구 질문 외에도 개인적인 궁금증과 다양한 질문이 머리와 마음을 맴돌았다. 그리고 그 수많은 질문을 통해 이러한 결론적 질문에 다다르게 되었다.
"중요해 보이는데 누군가 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 같다고 발견한 게 나라면, 내가 해야 하는 거 아닐까?"
이러한 질문에 답을 내리기도 전에, 석사 학위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감시에 대한 책, 논문, 학자들의 글을 읽으며 디지털 감시 분야에 매료돼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결심하게 되었다.
"디지털 감시 분야를 공부하자! 디지털 감시를 연구하는 학자가 되자. 그리고 박사 연구를 통해서 디지털 감시 분야를 더 알아가자!"
최근, 영국 버밍엄에서 박사과정을 하는 친구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그런데 디지털 감시 분야가 왜 좋아?"
"어, 그건..."
순간 말문이 막혔다. 왜 좋은지 설명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잠시 골똘히 생각하다 이렇게 대답했다.
"잘 모르겠어. 근데 좋아. 사실 우리가 사람을 좋아할 때도 좋아하는 이유를 말 못 하겠는데도 좋으면 진짜 좋아하는 거라고 하잖아. 그런 거랑 혹시 비슷한 걸까? 이유는 뭐라고 설명을 못하겠는데 내가 이걸 공부하고 있을 때 좋고, 관련된 자료를 볼 때도 재밌고, 내가 이 분야를 공부하고 있다는 그 사실 자체가 그냥 너무 좋아!"
그리고 덧붙였다.
"디지털 감시에 분명 양면이 있는데 안보나 안전, 공중보건 등에 위협을 느끼게 되면 디지털 감시에 대한 수용을 넘어 감시를 더 적극적으로 요구하게 되기도 하잖아. 내 연구 결과를 통해서 사람들이 균형 잡힌 시각을 형성해 나가는데 도움을 얻는다면 너무 보람이 있을 것 같아."
박사 연구 주제와 분야를 많이 좋아할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큰 축복일지 모른다. 박사 학위 과정은 절대 녹록지 않고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노라면 가끔씩은 '나는 누구 여긴 어디'와 같은 말이 절로 나오기도 한다. 그렇게 지칠 때에도 내가 디지털 감시 분야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내가 이 연구를 통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면 다시 힘이 난다. 그래서 나는 박사 과정을 잘 마치고 디지털 감시 분야의 학자로 나 자신을 자신 있게 소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