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사용법 익히기

by 숟가락

개학 날 아무도 없는 교실 앞에 섰다. 책상을 옮기기 시작했다. 교단을 향해 교사를 바라보는 구조를 학생들이 서로 마주 볼 수 있도록 ‘ㄷ’ 자로 바꾸었다. 아이들이 한 명씩 들어오면서 어디에 앉아야 하냐고 묻는다. 나는 원하는 자리에 자유롭게 앉으라고 말했다. 아이들이 망설이는 모습이 보이면서 진짜 마음대로 앉아도 되냐고 되묻는다. 똑같은 대답을 다시 하면서 1년 동안 아이들의 반응을 반대로 만들어보기로 결심했다. 자리를 정해주면 그곳에 그대로 앉는 말을 잘 듣는 학생이 아닌, 왜 그렇게 앉아야 하느냐고 질문하는 학생으로.


아이들은 어른들의 개입과 통제에 익숙해져 있다. 집에서는 부모님 말을 잘 들어야 하고, 학교에서는 선생님의 지시를 잘 따라야 한다. 보호자와 교사는 자신들의 의도에 따라 아이들이 커야 좋은 사람이 된다고 여긴다. 아이들은 자신만의 됨됨이를 만들 기회를 빼앗긴 채 마음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모르고 자란다. 특히 현재 학교에서는 아이들의 내면의 특성을 이해하기보다는 교칙 준수를 강조하고, 생각할 기회를 주기보다는 지식을 얼마나 습득했는지 측정하기 바쁘다. 어른과 학교에 의해 아이들이 길들여지고 있다.

나는 자유라는 단어를 사랑한다.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의미가 얼마나 아름다운가! 니일은 ‘자유란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고 또 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내가 자유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렸을 때 어른이 무언가를 시킬 때 “제가 알아서 할게요.”라고 말하면 버릇없다며 혼났다. 학창 시절 학교의 규칙과 규율을 어기면 처벌이 뒤따랐기 때문에 스스로 행동을 검열했다. 대학에 가서 비로소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되었고, 나는 내가 자유를 사랑하는 사람임을 깨달았다.


교사가 되니 혼란스러워졌다. 교사는 아이들에게 자유를 주기보다 통제를 해야만 했다. 해야만 하는 일을 주입하고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강요했다. 처음에는 교사가 가진 권력을 이용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담임을 맡은 1년 동안 아무 일 없이 지나가기만을 바랐다. 주변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잘 잡는다고 칭찬했지만 마음속에 있는 불편함이 계속 나를 괴롭혔다. 어느 날, 아이들의 눈을 가만히 살펴보니 불안, 공포, 죄의식이 보였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무언가 잘못되고 있는 건 분명했다.

고민에 대한 해답을 우연히 찾았다. 학교 도서관을 어슬렁거리다 빨갛고 두꺼운 책이 눈에 들어왔다. 루소가 지은 『에밀』이다. 마침 몇 달 후 첫째 아이와 만날 예정이라 육아서를 읽는다는 생각으로 과감히 독파하기로 다짐했다. 매일 1시간 일찍 출근해 루소와 만나면서 가장 마음이 잘 맞는 사람과 대화한다고 느꼈다. 루소는 나에게 “네가 간섭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잘 자라. 크는 법을 자연으로부터 배워서 태어났거든. 본성대로 자랄 것이니 나쁜 것만 배우지 않게 네가 잘 막아주면 돼.”라고 말했다.

책을 읽은 후 무리로 보이던 학생들이 한 명 한 명 살아났다. 아이들은 자기만의 본성을 지닌 존재였다. 우리 반의 급훈은 ‘우다다(우리는 다 다르다)’이다. 부산에 있는 한 작은 대안학교의 사례를 읽은 글에서 급훈을 따왔다. 학급 활동을 통해 아이들이 서로를 알고 다름을 인정하며 우리를 위한 방법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공동체 의식 함양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학교에서 보내는 12년 동안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기 위한 활동을 많이 할 테니 1년은 다르게 보내도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양한 경험을 한 학생이 창의적 인재로 자라날 가능성이 더 크지 않을까.


나와 만나는 아이들도 자유를 알았으면 좋겠다. 자신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고, 원하는 대로 행동하는 것이 나쁘지 않음을 그들도 알아가길 원한다.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이다. 자유는 인간이 배워서 아는 것이 아니다.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것이다. 뇌가 완전히 형성되지 않은 유아도 자신의 의지에 어긋나는 상황에 처해 있을 때 울음을 통해 자유를 표현한다. 어린이가 “싫어!”라고 자주 말하는 것은 자유로운 자아가 생기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청소년은 어른들의 지시에 수동적으로 침묵하거나 적극적으로 반항하면서 누구에게도 구속되고 싶지 않음을 드러낸다.

처음 학생에게 자유를 주었을 때, 멋대로 자라지 않을까 걱정했다. 버릇이 없어지거나,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거나, 말을 듣지 않을 것이 염려됐다. 자유가 주어졌을 때의 장점보다 발생할 문제가 먼저 떠올랐다. 나도 어쩔 수 없는 교사였다. 계속 고민하니 다르게 생각할 수 있었다.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옳은가?’는 사회마다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적용할 수 없지만, 상대적 기준을 제쳐두고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범죄를 기준으로 나쁜 행동을 규정하고 논의해 보자. 대부분의 범죄 행위자들은 어린 시절 폭력을 당했거나, 억압을 받았거나, 사랑을 받지 못했던 기억을 고백한다. 자유를 마음대로 누려서,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어서 그런 행동이 고착되었다고 할 수는 사례는 희박하다. 어린 시절에 잘못된 성장의 결과로 성인이 되어 자유가 주어졌을 때 나쁜 행동을 하는 것이다. 범죄를 행한 사람들은 제대로 자유를 배웠던 경험이 적다. 갑자기 주어진 자유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알려준 사람이 없고, 해본 적도 없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 자유 사용법을 배워야만 한다.

그러나 학교에서 자유를 배우기란 쉽지 않다. 학교는 한정된 공간에서 다수의 사람이 생활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보다 할 수 없는 것이 많다. 자유가 부여될 때도 있지만, 책임이 항상 따라다닌다. 학생 입장에서 자유의 즐거움보다는 책임의 무거움이 더 크게 느껴질 것이다. 왜냐하면 행동에 대한 엄한 평가가 반드시 뒤따를 것이기 때문이다. 경험과 연습만이 실수를 바로잡을 수 있으며, 자유를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습득하려면 오랜 시간 연습을 해야 한다. 아이들은 편안한 분위기에서 스스로 훈련할 수 있을 때에만 자율적인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다.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평가보다는 인정과 지지가 필요하다. 실수에 대한 책임은 어른들이 짊어지면 된다. 그러면 부담을 갖지 않고 자유를 연습할 기회를 충분히 가질 수 있다.

자유는 사람을 생각하게 만든다. 무엇을 하면 나에게 좋은지, 어떻게 행동했을 때 사람들이 좋아하는지를 경험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한다. 이것은 성장 과정에서 이루어지면 좋다. 성인이 된 후에는 사람이 바뀌기 더 힘들다. 학생들은 자유를 사용할 수 있는 연습을 해야 한다. 그래야 성인이 되어 자유가 주어졌을 때 참되게 활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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