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국어 시간에 떠들다가 걸린 친구들을 학급회의에서 처리하자고 이야기한다. 임○도가 말했다. “국어 시간에 김○리와 김○현이 떠든 것에 대해 회의했으면 좋겠습니다!” 말하는 투가 어떻게든 벌을 주려고 하는 것 같았다. 어제도 회의시간에 서로 싸우더니 회의가 서로의 잘못을 고자질하는 자리가 되었다. 내가 나섰다. “우리가 회의를 하는 이유는 서로 친해지고, 행복하게 학교생활을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서로 싫어하는 자리가 된 것 같습니다. 수업시간에 떠든 것을 지적하는 것은 선생님이 할 일입니다. 여러분이 벌을 줄 필요가 없습니다. 만약 수업시간에 떠든 아이들이 있으면 여러분은 같이 걱정을 하고 해결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왜 친구들이 떠들었는지 물어보고 같이 해결하기 위해 힘을 모아야 합니다. 지난번 두 학생이 역사 시간에 떠들어서 혼났습니다. 한 학생이 해결 방법으로 두 친구의 자리를 바꾸고자 했는데 바꿔주는 친구들이 없다고 했습니다. 선생님에게 혼난 것도 힘든데 아무도 도와주지 않고 비난하면 기분이 어떨까요? 아마 괴롭고, 힘들고, 외로울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서로 도와줘야 합니다. 그래서 친구가 행복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혼내는 것은 나중에 선생인 제가 하겠습니다.”
2016년 4월 20일 교사 일기
이렇듯 회의시간에 아이들은 서로의 잘못을 고자질하고 비난하기 바쁘다. 교사 대신 친구의 행동을 수정하려고 하니 교사의 입장에서 기특하게 보이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학급회의를 하면 주로 규칙을 정하고, 위반자를 색출하고, 처벌 방법을 고민한다. 학교에서 지켜야 할 규칙은 부족하지 않다. 위반자를 골라내는 것은 서로의 관계를 악화시킨다. 처벌은 학생이 할 일이 아니다. 처벌을 받은 아이의 마음 안에는 분노와 화가 쌓인다. 벌을 받는 학생은 자신의 행동을 되돌아보기보다는 그 벌을 누가 부여했는가를 보고 그 사람을 미워한다. 교사가 야단치면 교사가 싫어지고, 다수의 친구가 벌을 주면 그들과 멀어진다. 결코 모두에게 좋지 않다.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자. 만약 회의를 통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다면 그 사람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방법을 스스로 찾는다. 청소를 도망간 경우 혼자 청소를 하고, 다른 사람에게 말이나 행동으로 상처를 주었을 때 사과 편지를 써서 칠판에 게시 놓기도 하고, 지각을 했을 때 늦기 않기 위한 계획과 다짐을 적어 붙이기도 한다. 그 내용은 상황에 따라, 사람에 따라, 잘못한 정도에 따라 다르다. 자신에게 맞는 해결책을 찾으니 지키려고 노력할 수 있다. 즉 자유롭게 살아갈 방법을 만들고, 학교생활이 힘든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도와줄 방법을 찾는 것이다.
학급에서 교사와 학생은 피곤하다. 교사는 칭찬보다 잘못된 것을 먼저 찾고 학생은 걸리지 않으면 괜찮다고 생각한다. 교사는 아이의 잘못을 어떻게 교정해줄까 고민하고, 학생은 자기들이 이해받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교사는 말로 가르치려고만 하고 학생은 배우려 하지 않는다.
처음에 나는 교사의 말이 학생의 행동 변화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 앞에서 ‘네’라고 말하는 학생의 행동이 쉽게 변하지 않았다. 지각하던 학생은 1년 동안 고치지 못했고, 산만한 학생은 내 수업 시간 빼고 다른 시간에서 말썽을 일으켰다. 나는 그들이 말을 듣지 않으면 더 심한 벌을 주기만 할 뿐이었다. 악순환의 반복이다. 서로 감정만 상해 관계는 안 좋아져 나는 학생을 믿지 못하고, 학생에게 나의 말은 잔소리로 들릴 뿐이었다.
스스로 잘못을 고치기 위해서는 미안함이나 부끄러움을 느껴야 한다. 미안함과 부끄러움은 자발적으로 생기는 감정이다. 스스로 느끼게 하려면 많은 사람들이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야 한다. 이것은 교사 혼자서 해결할 수 없다. 학생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문제를 공론화하여 원인을 파악하고, 해결을 위해 같이 노력해야 한다. 예를 들어 보자. 우리 학급에 지각을 습관적으로 하는 학생이 있었다. 회의 시간에 그에게 왜 지각을 하는지 물어봤다. 늦게 자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왜 늦게 자냐고 되물으니, 학원에서 늦게 끝나서라고 말했다. 모두들 학교보다 학원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잘못이라며 그 학생을 타박했다. 그는 자기도 학원 가기 싫은데 엄마가 가라고 해서 그렇다고 역정을 냈다. 난상토론 후 학원이 원인이니 학원 시간을 조정해달라고 담임교사가 그 학생 어머니에게 부탁을 드리고, 같은 아파트에 사는 학생이 등교를 같이 하기로 결론이 났다.
이처럼 회의를 하면 문제의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있다. 동등한 위치에 있는 친구에게 말하니, 교사의 권위에 눌려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만든 거짓된 말이 아니라 진짜 이유가 나온다. 이때 교사가 학생의 말을 무조건 경청하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섣불리 도덕적인 판단을 내려 잘못을 지적하면 학생은 다시 입을 닫는다. 거짓말이 아니라면 어떤 이유도 인정해야 한다.
학생들이 학급 회의를 통해 교실 생활을 이끌어 나간다고 해서 갈등이 사라지거나 문제가 잘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아이들이 맡으니 문제가 더 많고 해결 방법이 서투를 수 있다. 생각해보면 같은 나이의 30~40명의 사람들을 한 곳에 몰아놓고 아무 문제없이 생활하라고 요구하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 또한 15살 아이에게 좋은 해결 방법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중요한 것은 문제가 생겼느냐, 해결책이 좋으냐가 아니라 그것을 누가 해결해야 하는가이다. 문제가 발생하면 학생들은 선생님을 바라보고, 담임교사는 자신이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 문제를 주도적으로 해결한다. 이 경우 문제가 합리적으로 해결될 수 있어도, 학생들은 생각할 기회를 잃는다. 아이들이 배워서 같은 문제가 반복되지 않게 하려면, 문제의 주체끼리 해결하게 만들어야 한다. 한 학생이 수업시간에 산만하여 방해가 되었다면, 문제를 일으킨 학생과 그로 인해 피해를 입은 같은 반 학생이 해결해야 한다. 친구들끼리 그 아이가 왜 그러는지 같이 고민하고, 도와줄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학생들의 진정한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