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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jung KIM Nov 11. 2022

양파라 불러도 괜찮습니다

책에 관한 기분들 3

 “하느님, 그 사람을 당신에게서 빼앗아 볼까요?”

 이 생각이 미쓰코를 지루한 수업에서 구해 주었다._엔도 슈사쿠, <깊은 강>


 도피성 행동이었다. 친구를 따라(지금의 폭풍점장) 어느 수녀님이 돌보는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치기 시작한 건. 내가 맡은 아이는 얼굴이 하얗고 조용한 열 살 된 여자아이였다. 어린 시절의 나와 닮은 아이에게 마음이 많이 쓰였다. 문제는 3 살배기 H였다. 3살이면 부모의 집중적인 애정이 필요한 시기다. 이 아이는 내가 갈 때마다 안아달라고 했고 내게서 떨어지지 않았다.(봉사자 모두에게 그랬으리라.) 나는 어릴 때부터 떼를 쓰거나 요구할 줄 모르는 성격이었으므로 아이의 그런 행동을 받아주는 게 힘들었다. 그저 도피하기 위해 봉사를 하던 나에게 사랑을 달라고 하니, 아이가 내게 안기려고 달려올 때면 속으로 기겁을 했다. 그곳을 방문하는 일이 점점 부담스러워졌다. 물론 대학원 공부도 만만치 않았다. 나는 수녀님께 공부를 핑계로 이제 더는 봉사를 오지 못할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무엇보다 사랑이 필요한 그곳에서 나의 사랑 없음을 발견하고 말았다.

 

 저녁 안개가 마을을 감싸고, 그녀는 갑자기 자기 인생의 모든 것이 다 무의미하고 헛된 것처럼 느꼈다. 이 인도 여행뿐만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모든 것이. 대학 생활도, 짧았던 결혼 생활도, 위선적인 자원 봉사 흉내 짓도. 처음 방문한 이 마을에서 오쓰를 찾아 돌아다닌 것도. 하지만 이러한 어리석은 행동 깊숙이 그녀는 자신도 X를 원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막연히 느꼈다. 자신을 채워 줄 게 틀림없는 X를. 그러나 그녀는 그 X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_본문에서

 

 엔도 슈사쿠의 마지막 소설 <깊은 강>은 대표작 <침묵>과 더불어, 고인이 된 작가가 자기 관에 함께 넣어달라고 했던 작품이다. 이 소설에는 각기 다른 이유로 인도 바라나시에 도착한 네 사람이 나온다. 아내를 병으로 잃고 환생이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놓지 못하는 이소베, 죽음의 고비에서 구관조에게 위로를 받은 누마다, 태평양 전쟁에서 참혹한 고통을 겪고 귀환한 이구치, 위선적인 세상을 조롱하듯 가톨릭 신자인 오쓰를 유혹했던 미쓰코. 그중에서도 생에 대한 실망을 거듭하며 공허한 마음을 달래지 못하던 미쓰코가 오쓰와 나누던 대화들을 잊을 수 없다. 바보처럼 신을 찾아다니는 남자 오쓰에게 그녀는 쏘아붙인다.

 

 “근데 그 신이라는 말 좀 그만 할래요. 짜증이 나고 실감도 안 나요.(...)”

 “미안합니다. 그 단어가 싫다면 다른 이름으로 바꾸어도 상관없습니다. 토마토이건 양파건  다 좋습니다.” _본문에서

 

 “양파는 한 장소에서 버림받은 나를 어느 틈엔가 다른 장소에서 되살려 주었습니다”라는 오쓰의 고백은 나의 고백이다. 나는 틈만 나면 양파를 떠났다. 겉으로는 사람 좋은 얼굴을 하고 있었으나 내 안에는 사랑이 없었다. 세상에 초연한 듯 굴면서도 나는 실은 누구보다 사람들의 인정을 갈구했다. 다른 사람들처럼 살고 싶어 나는 양파를 모질게 떠났다.

 아버지 사업이 부도나서 모든 것이 멈춰버렸을 때, 친구들과도 연락을 끊고 빛이 들어오지 않는 고시원에 들어갔을 때, 주중엔 회사, 주말엔 아르바이트를 하러 다니던 그때, 그런데 양파는 내 곁에 있었다. 내가 나 자신을 믿지 못할 때도 양파는 좋은 사람들을 내게 보내주었다. 나는 점점 양파에게 어리광을 부리게 되었다. 어머니가 패혈증으로 위독해 마지막을 준비하라는 의사의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양파에게 성을 냈다. 어머니를 살려달라는 기도를 하는 대신, 마구 성을 냈다. 나는, 나는 행복하면 안 됩니까?

 

 하지만 양파에겐 내가 모르는 계획이 많았다. 연고도 없는 서울 연희동에서 밤의서점을 열게 된 것도, 나와 달리 강인한 기질의 폭풍점장이 파트너가 된 것도 그의 계획이다. 지금은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교회에 데려간다. 서점 한 켠에는 양파에 관한 서가가 있다. 얼마 전, 그 책들 앞에서 어떤 손님들이 코웃음을 치는 걸 들었을 때 나는 내가 점장이라는 것도 잊고 가서 뭐라고 할 뻔했다.

 

 그래서 결국 모든 것이 순조롭다는 말이 아니다. 양파와 함께한지 오래되었으나, 나는 눈에 불을 켜고 내 욕망을 지필만한 일을 찾는 걸 멈추지 못한다. 개를 기를 수 있는 큰 집에 살고 싶다는 내게, 양파는 자꾸 먼저 사랑을 배우라고 말한다. 그는 고양이의 얼굴을 할 때도 있고, 배움에 대한 갈망을 품은 손님의 얼굴로 찾아올 때도 있다.

 그러니, 신이라는 단어가 싫다면 양파라 불러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제 곁에 언제나 양파가 계시듯이, 양파는 나루세 씨 안에, 나루세 씨 곁에 있습니다. 나루세 씨의 괴로움도 고독도 이해할 수 있는 이는 양파뿐입니다. 그분은 언젠가 당신을 또 하나의 세계로 데려가시겠지요. 그것이 언제일지, 어떤 방법일지, 어떤 형태로일지, 저희는 알 수 없습니다만. 양파는 무엇이건 활용합니다. 당신의 ‘사랑 놀음 흉내’도 ‘입에 담지 못할 밤’의 행동도(저는 통 짐작이 가지 않습니다만.) 마술사처럼 변용하십니다.

 

"무엇 때문에 그런 일을 하시는 건가요?"

그러자 수녀의 눈에 놀라움이 번지더니, 천천히 대답했다.

"그것밖에…… 이 세계에서 믿을 수 있는 게 없는걸요. 저희들은.“

그것밖에라고 한 건지, 그 사람밖에라고 말한 건지, 미쓰코는 잘 알아듣지 못했다. 그 사람이라고 말한 거라면 그건 바로 오쓰의 ‘양파’다. _본문에서


(밤의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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