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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노트 Sep 21. 2022

편견에 맞서는 용기

Dear 생활코딩 이고잉님

편견에 맞서는 용기

편견 없는 세상은 존재할까? 그런 세상이 있다면 나의 장점은 사라질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던지 욱하지 않는 이유가 있다. 늘 선입견을 깨야만 하는 위치에 있었고 그 운명을 받아들여 사람들의 말에 상처받지 않는 법을 터득하려 했다. 예를 들면 인사팀 상무님이 갓 들어온 신입인 나에게 “너 실력은 없는데 입 털어서 들어왔지?”하고 웃으며 장난치는 상황이다. 이런 말에 상처받기보다 “아 네 맞습니다. 이제는 일하면서 제대로 입증해 보여야죠”하고 응수하는 게 더 낫다는 걸 터득해갔다. PT 대회에 나가서 수상 받던 실력으로 면접에서 다른 지원자들보다 화려한 말솜씨를 뽐낸 건 맞다. 개발자가 되겠다고 준비한 지 1년 6개월밖에 되지 않았으니 다른 지원자들보다 실력이나 경력은 부족할 텐데 어필할 수 있는 부분이 뭐가 있을까 고민한 결과다. 나름의 퍼스널 브랜딩과 마인드 컨트롤이 통했다는 반증이니 상무님의 말이 기분 나쁘지만은 않았다. 편견을 역이용하기. 선입견을 깨부수는 나만의 방법이었다.


회사의 면접은 인턴 합격까지 총 3번, 최종 면접까지 합치면 4번이었다. 전체 면접 과정에서 “왜 영문학과를 나왔는데 개발자로 진로를 결정했어요?”라는 질문을 안 들은 적이 한 번도 없다. 개발자가 되겠다고 취업시장에 뛰어든 이상, 필수적으로 생길 수밖에 없는 궁금증과 질문이었다. 처음엔 명확하게 대답할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특별한 꿈이 있어서라기보다 그저 앞날을 향해 뚜벅뚜벅 걷다 보니 여기까지 와버린 걸 어쩌란 건지. 부랑자의 운명이라고 해야 하나. 늘 시험대에 든다. 그래서 질문에 스스로 대답할 수 있게 준비를 열심히 했다. 기업은 왜 융합형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뛰어들었는지, 내가 가지고 있던 문제점을 새로운 진로를 통해 어떻게 풀어냈는지 등을 조사하고 되뇌며 면접장에 들어섰다. 내가 찾은 대답은 이러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걸 구현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인문학도가 복수전공을 하게 되는 이유는 취업 시장에서 활용할 실용적 기술이 없기 때문이다. 조금 더 사고의 깊이가 있을지라도 그걸 활용할 시장이 아니라면 스스로 변화를 해야 하는 게 수요자의 몫이다. 나에게도 그런 어려움이 있었다. 생산성 있는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구현해줄 누군가가 반드시 필요했다. 그렇게 놓쳐버린 아이디어가 타인을 통해 세상에 공개되면 “아 역시 누구나 똑같이 생각하는구나"하고 넘기기 일쑤였다. 그래서 스스로 생각하고 구현까지 해내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마음먹었다.


첫 시작은 우연한 기회에 찾아왔다. 고등학교 선배들이 구상했던 상가점포 거래 플랫폼을 개발하는데 참여하게 된 게 시작이었다. 개발을 리딩 하던 선배가 모교 대학원의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보니 접촉도 쉬웠고, 무엇보다 아등바등하는 부랑자의 분투기를 기특하게 본 선배들이 경력 한 줄 쌓으며 개발을 배우라고 배려해준 덕분이었다. 그 덕에 3학년으로 재학 중이던 나는 개발자로 일하는 경험을 남들보다 빠르게 했다. 학교를 다니며 때로는 출근도 해야 하니 주말이 없고 집에 도착하는 시간이 매번 12시가 넘는 하루하루였다. 생활비가 필요해 과외도 2개를 했다. 힘들기는 했는데 그걸 뛰어넘을 만큼 열정적으로 참여했다. 태어나서 처음 무언가를 구현해내고 있다는 쾌감이 있었다. 결국 서비스 론칭은 이루지 못했으나 취업 면접에 들어가기 전, 영문학과 출신에 대한 선입견을 깨기 위한 대답을 찾을 때 이 경험이 머릿속에 제일 많이 떠올랐다. 내가 가장 열정적이던 순간, 그 순간의 만족감은 편견으로도 누를 수 없다고 믿었다.


비전공자의 개발자 취업기 스토리를 적을 때 비영리 프로그래밍 교육의 효시로 평가받는 ‘생활코딩'의 창시자 ‘이고잉'님을 빼놓을 수 없다. 처음 개발에 뛰어든 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쉽고 효율적으로 교육을 하는 사이트였다. 효율적이라는 말은 내 경험 때문인데, 당시 취업을 위한 PT 면접에서 ‘웹 서비스가 이루어지는 프로세스’에 대한 질문이 나왔고 몇 번을 돌려본 생활코딩의 WEB 강의를 그대로 설명하며 발표했던 기억이 있다. 여럿 비전공자를 먹여 살린 이고잉님은 2013년에 블로터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개발자란 삶에 몰입해보니"라는 제목의 기사인데 인터뷰의 내용이 개발자로 이어진 부랑자의 길에 빛을 밝혀준 등불이 되었다. 이고잉님도 전공자가 아닌 국문학과 출신이다. 우연한 기회에 개발을 경험하다가 주변 친구들에게 천재 해커 소리를 듣고 웹 개발에 점점 빠져들었다. 그렇게 프로그래밍 세계에 빠져들어 관련 직종으로 취업까지 하게 됐는데 개발자의 세계는 생각했던 것보다 냉혹했다. 자기 실력에 비해 동료들의 실력이 월등하게 좋아서 첫 1년은 기가 죽은 채로 타박도 당하며 생활을 했기 때문이다. 이고잉님은 이 상황을 타산지석으로 삼았다고 한다. 자만하지 않으면서 실력을 키울 수 있는 시기였다면서 말이다.


"보통 사람들은 선을 긋잖아요. 특히 개발에 대해서는 유독 더 선을 긋는 것 같아요. 이 선을 조금만 더 유연하게 생각하거나 선을 지워보면 할 수 있는 게 굉장히 많은 데 말이지요. 생각만큼 개발은 어렵지 않습니다."


https://www.bloter.net/newsView/blt201304250001


나보다 몇 년을 앞서간 선구자. 더 많은 편견과 싸운 사람. 생각만큼 개발은 어렵지 않다는 그의 말은 당시 편견에 맞서기 위한 준비를 하는 나에게 더할 나위 없는 용기를 주었다.


꿈길을 걷는 부랑자들에겐 편견에 맞서는 용기가 필요한 순간들이 있다. 남들과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할 때 타인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하며 걱정과 위로, 격려를 동시에 받게 된다. 그 모든 게 내가 가는 길에 대한 의구심처럼 들리며 스스로를 외롭게 두는 시발점이 되기도 한다. 흔들리며 가는 길에 맞바람처럼 불어오는 편견은 번번이 걸음을 멈추게 만든다. 그런 상황을 이겨내면 더 단단한 마음으로 추진력을 얻지만, 그러지 못할 경우 다시 돌아가고 싶어 진다. 나에게도 많은 시련이 있었다.


용기는 경험에서 비롯된다. 이겨내고 이루어낸 경험.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기 위한 노력과 열정을 통해 만들어낸 작은 성취. 편견에 맞서는 용기는 그 작은 경험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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