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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노트 Sep 28. 2022

늘 찬란하진 않은 길

Dear 개그맨 니시노 아키히로

늘 찬란하진 않은 길

“이론적으로 실패란 불가능하다.”


‘혁명의 팡파르'의 저자이자 코미디언, 만화 작가, 사업가인 니시노 아키히로가 자신의 모교 긴키대학의 졸업 축사 연설에서 졸업생들에게 말한 이 문구는 내 인생을 대변하는 최고의 한 문장으로 남았다. 니시노 아키히로는 미래는 바꿀 수 없지만 과거는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비호감 코미디언이자 사기꾼이라 손가락질받던 과거가 지금은 성공 스토리의 일부인 것처럼 그는 실패라는 단어 자체를 부정한다. 작은 시장인 그림책으로, 그림책 분업화라는 특이한 방식과 대중화되지 않았던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엔화 4억 5천만 엔을 벌어들이며 성공을 이루어낸 니시노 아키히로는 ‘늘 찬란하진 않은 길’을 걸어왔다.



그가 출시한 그림책 ‘굴뚝 마을의 푸펠'은 새까만 연기로 뒤덮인 굴뚝 마을에서 ‘루비치’라는 소년과 쓰레기에서 태어난 ‘푸펠'이 꿈과 진실을 쫓아가는 이야기를 그린다. 이 굴뚝 마을에선 하늘을 올려다보거나, 꿈을 믿거나, 진실을 알려하는 걸 금지하는데 이 둘은 별의 존재를 믿고 진실을 찾아가는 모험을 시작한다. 니시노 아키히로는 ‘쓰레기 인간' 푸펠에 대해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이 이야기는 꿈을 좇는 사람은 왜 공격을 당할까라는 의문에서 출발했다. 사람들은 커 가면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꿈을 현실과의 절충이라는 이유로 버리고 만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서도 그 꿈을 이루려고 하는 사람이 나타나 꿈을 좇아가는 걸 보게 된다. 자신이 버린 꿈이 현실이 되는 걸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꿈을 좇는 사람을 손가락질하고 공격한다. 결국 꿈을 좇는 사람은 그들이 과거에 버린 걸 주워 담은 ‘쓰레기 인간'이 되고 만다.”


19세부터 코미디언으로 활동하다 29세에 그림책 작가가 된 니시노 아키히로는 대중화되지 않았던 시절의 크라우드 펀딩으로 자금을 모은 탓에 사기꾼 소리를 들은 비호감 연예인이었다. 이런 이력을 보면 ‘굴뚝 마을의 푸펠'에는 니시노 아키히로의 경험이 반영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책과 연설, 인터뷰로도 사람들의 편견에 대한 그의 고충을 알 수 있지만, 선입견을 깨버리는 그의 행보만큼 빛나는 건 10년 넘게 두각을 내지 못한 코미디언 커리어에도 굴하지 않고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갔다는 점이다. 그 기간을 실패라고 규정짓지 않는 담대함은 니시노 아키히로라는 사람의 그릇의 크기를 보여준다.


영문과에서 개발자로 취업을 했을 때, 나는 담대한 목표를 이루어낸 도전자였다. 프로그래밍을 공부한 지 1년 6개월 만에 남들이 가고 싶어 하는 기업에 입사해 유수한 개발자들과 함께 일한다니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정말 많이 노력했고 그만큼의 결실을 이루어냈다는 점이 뿌듯하고 좋았지만, 무엇보다 앞으로 그려질 찬란한 미래를 기대하며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회사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신입사원으로서 회사 생활은 구부정한 산길을 오르듯 어지러운 어리바리함의 연속이었다. 준비를 열심히 했어도 1년 6개월이라는 시간은 개발자로서의 깊이를 심어주기엔 충분하지 않은 기간이었다. 대화의 흐름을 못 쫓아가는 경우가 많았고 수박 겉핥기식으로 업무를 쳐내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동기들만큼 평가를 받거나 그들보다 앞서 나가는 그림을 그리며 더 많이 노력했지만 결과가 좋지 못했다. 같은 파트에서 6개월 먼저 입사한 선임은 나보다 선배이면서도 동기였다. 좋은 자극을 많이 받았는데 실시간으로 실력적인 격차가 벌어지는 걸 체감시켜준 분이었다. 호기심이 생기면 질문하고 깊게 고민하고 실행하는 컴퓨터공학적 사고를 하는 게 나와는 다른 부분이었다. 깊이 파고들지 못하게 막는 사고력의 부재가 발목을 잡고 깊은 늪으로 나를 빠트렸다. 그렇게 알을 깨지 못한 채 4년을 보냈다.


4년이란 시간은 긴 시간이었다. 은연중에 다른 사람들이 걷는 길을 평가하는 마음이 있던 어린 시절, 코웃음 쳤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간간이 들려오곤 했다. A는 정말로 가수가 돼서 내가 자주 듣는 노래의 가수가 되어있었다. B는 연예인으로 주말 연속극에도 등장했다. C는 사업적인 성공을 이루어내서 부자가 되었다. D는 인스타그램/블로그 인플루언서로 수입 파이프라인을 만들었다. E는 유튜브에 올린 콘텐츠가 대박이 나서 현재 80만 구독자를 가지게 됐다. F는 이직을 두 번 하고서 억대 연봉에 진입했다. G는 어떻고, XYZ는 어떻고의 이야기가 들려오고 그중엔 정말로 내가 미래를 걱정했던 사람의 얘기도 있었다. 지나고 나서 이야기하니 부끄러운데, 이런 경험을 하고나서부터는 그 누구의 선택도 우습게 보지 않게 됐다. 지금의 상황이 섬뜩하기까지 했다. 20살, 30살에 목표를 이루어 얻어낸 성취와 내가 가는 길의 찬란한 빛이 절대 영원하지 않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늘 찬란하진 않은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은 나에게 풀기 어려운 숙제를 안겨주었다.


풀기 어려운 숙제,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는 문제다. 개발자로 취업하며 목표를 이루어낸 나는 당분간 다른 갈림길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선택의 순간은 매일 같이 찾아온다. 무엇도 선택하지 않고 현상유지를 하는 행동마저도 선택 중 하나라는 걸 알게 됐다. 성공과 성공하지 못할 확률의 비율을 1:9 정도로 추정한다. 대부분의 선택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게 나의 관점이다. 10퍼센트의 법칙이라고 개인적으로 부르는데, 내가 가는 길은 90퍼센트의 확률로 뜻대로 되지 않는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고 했나. 이때의 확률도 10퍼센트이니 옛 말은 틀린 게 없다. 개발자로 취직한다는 10퍼센트 확률의 선택을 현실로 이루어내고, 회사와 선배들에게 배우며 개발자로서의 소양을 쌓기로 결정한다. 이때 온전히 소양을 쌓을 수 있을 확률이 10퍼센트다. 뜻대로 안 돼서 다른 방식으로 시도했을 때 성공할 확률이 다시 10퍼센트. 인생 정말 뜻대로 안 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의 확률이고 작은 목표도 이루기 힘든 게 현실이라고 확신한다.


여기서 갈림길이 있다. 목표를 그대로 두고 성공할 확률을 높이기 위한 ‘행동'을 하거나, 목표를 낮추며 성공할 확률을 높이는 ‘합리화'를 한다. 대부분의 선택에서 우리는 합리화를 한다. 행동보다 생각이 빠르고 편하기 때문이다. 인생이 선택의 연속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모든 사람은 합리화를 한다. 다만, 타협할 수 없는 지점과 영역을 세우고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예를 들면, 하늘을 보지 말라는 금기에도 별을 쫓아 모험을 떠나는 ‘쓰레기 인간' 푸펠이나, 사기꾼이라는 소리에도 꿈을 잃지 않은 니시노 아키히로 같은 사람들이 그런 부류다. 그들은 꿈을 좇아 행동하는 사람들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작은 목표를 세우고 결과를 내는 습관을 가졌다. 일정한 계획대로 일상을 보내는 걸 좋아했고 그 부분에선 일종의 강박까지 있어서 갑자기 저녁 약속이 잡히면 스트레스를 받을 정도였다. 작은 목표였지만 결과를 만들어내는 성취가 주는 결실이 얼마나 달콤한지 알게 됐다. 이 결실이 달콤한 이유는 작은 목표에서 점점 큰 목표를 세울 수 있게 되고 결과를 만들어내는 요령이 생긴다는 점이다.


내가 깨달은 요령의 핵심을 딱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인생은 성공하지 못할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이다. 목표를 이룬 결실의 끝이 성공하지 못할 가능성이 더 크다는 확신이라는 게 다소 아이러니하지만, 우리가 걷는 길은 매번 찬란하지만은 않다. 이를 실패라 규정짓지 말고 앞으로 나아갈 힘이 필요하다. 이때 필요한 게 회복력이다. 다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동력을 부여하는 힘. 합리화가 아닌 행동을 할 수 있도록 스스로 일어서는 능력. 늘 찬란하진 않은 길을 걷는 우리에게 필요한 요소이다. 그렇게 걷다 보면 꿈에 도달하는 순간이 오고 다시, 새로운 꿈을 꾸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그런 꿈을 꾸며, 꿈을 좇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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