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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비아 Mar 07. 2024

너와 내가 만날 확률

세 번째 편지. 세상이 이렇게까지 좁을 일이야?

엄마 밍글라바!


오늘은 세상에 너무나도 놀랄 만한 일이 있었어. 주재원이 많지 않은 이 나라에서, 그것도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대학 동기를 만난 거 있지. 졸업하고 소식도 몰랐던 동기를 다른 나라에서 만날 줄 상상도 못 했는데 말이야. 역시 세상은 참 좁고도 좁아. 그럼 또 재밌는 소식 전할게!



엇! 저 얼굴 낯이 너무 익은데! 누구 닮았더라..

하며 별생각 없이 스쳐지나갔던 얼굴. 알고 보니 우리와 같은 층에 살고 있었고 남편과는 인사를 하는 사이였다. "저분 이름이 뭐야?" 내가 굳이 이름을 알 필요도 없지만 괜히 물어보고 싶었다. 그리고 이름을 듣는 순간 머리가 땡 울리며 머리 위로 빛이 딱 켜지는 게 느껴졌다. 대학교 동기였다. 동기도 그냥 동기가 아니었다.


거의 20여 년은 된 듯한 대학교 신입생 시절, 입학 후 가지는 첫 행사이자 동기, 선배들과의 첫 만남을 가지는 오티. 그 오티에서 같은 조였으니 나에겐 대학에서 처음 사귄 동기나 다름없었다. 물론 그 이후 졸업할 때까지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하는 친하지는 않은 사이였지만 말이다. 어찌 됐건 그런 동기를 서울 한복판도 아닌 양곤 한복판에서 만나게 됐다. 풋풋했던 스무 살 그 시절을 뒤로하고 어느덧 세월이 흘러 어엿한 사회인이자 가정을 이룬 부모로 다시 만나게 되다니. 너무 반가워서 당장이라도 아는 척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반가움도 잠시, 내가 아는 척하기 전에 남편이 슬쩍 "ㅇㅇ대학교 나오셨죠?" 하며 운을 띄웠으나 그는 내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단다. 아니 아무리 안 친했고 세월이 흘렀기로서니 얼굴과 이름을 듣고도 기억이 안 난다고? 오티조를 기억 못 하는 건 배신 아니냐며 괜히 혼자 서운해하다가 반가운 척 한 번 못하고 마주치면 "안녕하세요" 하고 지나가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이 놀라운 만남이 어디 이뿐인가. 미얀마에 오기 전, 동창회 참석 여부로 연락이 온 선배에게 미얀마에 가게 되어 참석을 못하게 될 것 같다고 했더니 반가운 소식을 들은 것 마냥 선배의 친구가 미얀마에 있다고 했다. 아무리 한인이 많이 없는 나라라지만 선배의 친구까지 내가 만날 일이나 있겠어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리고 미얀마 도착 후 며칠 지나지 않아, 같은 아파트에 우리 아가와 나이가 같아 인사를 하게 된 아가의 아빠가 그 선배의 친구임을 알게 됐다.


어느 날은 피렌체에서 민박집을 운영하고 있는 친한 언니에게서 연락이 왔다. "오늘 오신 손님이 지금 미얀마에 살고 계신대. 친한 동생이 미얀마에 가게 돼서 걱정한다고 했더니 오면 연락하라고 연락처를 주셨어" 라며. 언니가 피렌체에서 민박집을 운영하는 8년간 미얀마에 온 손님은 처음이었는데 마침 내가 미얀마에 가는 시점에 그런 손님이라니. 게다가 내가 미얀마에 간단 소식을 전해 들은 지인은 자신의 회사 후배도 미얀마 주재원에 나가 있다며 가면 연락해 보라며 중간에 다리를 놔줬다. 정말 대단한 우연이 아닌가.


며칠 전엔 나와 같은 처지의 [주재원 와이프] 중 동갑인 친구를 알게 되었고 친해져서 SNS 아이디를 서로 공유했다. 그리고 그녀의 피드에서 내 친구의 친구 이름을 발견하게 되었다. 학교 동기 사이라 했다. 이곳에 오기 전 누가 미얀마에 산다는 말은커녕 여행 다녀왔다는 말도 들어본 적이 거의 없는데 그런 나라에서 자꾸 꼬리에 꼬리를 물고 아는 사람이 나타나는 게 무슨 일인지. 교민 수가 적은 나라에서도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이인데 한인 커뮤니티가 큰 나라에 가면 서로가 다 아는 사이일 수도 있겠거니 싶었다. 그리하여 나는 아는 사람 하나 없이 남편 하나만을 보고 따라온 이곳에서 벌써 여러 사람을 알게 되었다.


기막힌 우연의 연속 스토리가 재밌어 SNS에 올렸더니 그 글에 이런 댓글들이 달렸다.


"언니, 우린 캄보디아에서도 우연히 만났잖아요"

"실비아야, 우리 오사카 한복판에서도 만났잖아" 


그렇다. 사실 이런 일은 내게 엄청 놀라운 일도 아니다. 전 세계 곳곳에서 늘 우연히 누군가를 만났던 것이다. 대학교 1학년 마치고 갔던 호주 어학연수 시절부터 거슬러 올라가자면 그 넓고 넓은 도시인 시드니에서도 이런 일이 있었다. 그것도 무려 두 번이나. 한 번은 길을 걷다 정말 우연히 과 선배를 마주쳤다. 서로가 이곳에 있는 줄 몰랐으니 스쳐 지나가면서도 내가 아는 사람일 거라 상상이나 했겠는가. 또 한 번은 에이전시에 상담을 하러 갔는데 상담해 주는 직원과 대화를 나눠보니 이상할 정도로 말이 잘 통하는 거다. 알고 보니 학교에선 본 적 없지만 몇 학번 높은 과 선배였다.


그다음 해에는 캄보디아에 해외 봉사 활동을 갔다가 마침 관광을 왔던 후배를 우연히 마주치는 일도 있었다. 또 언젠가는 친구와 놀러 간 오사카에서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는 와중에 길에서 내 이름이 들려 뒤돌아보니 역시나 학교 선배였다. 이쯤 되면 도대체 이 학교 인원이 얼마나 되길래 이렇게까지 세계 곳곳에서 만나나 싶지만 학부생 200명 중 나와 안면을 트고 지내는 선후배는 고작 50명도 채 안 되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친구들은  "네가 워낙 발이 넓잖아"라고 한다. 하지만 친구들이 알고 있는 것과 달리 난 인간관계가 넓은 편이 아니다. 다들 이 모임, 저 모임 약속이 많은 바쁜 연말에도 내가 나가는 모임은 단 하나뿐일 정도다. 모임에 있는 인원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친한 건 이 모임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친구를 만날 때도 여러 명을 한꺼번에 만나기보다는 두어 명씩 소수로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럼에도 내가 발이 넓다고 친구들이 오해할 만한 이유는 있다. 중고등학교 시절 한 때, "덕질"을 한답시고 팬클럽에 가입해 전국의 나와 같은 덕후들을 사귀었고, 대학 시절엔 대학생 기자, 각종 브랜드 홍보대사, 해외 봉사활동 등 다양한 대외활동을 닥치는 대로 했다. 자연스럽게 내가 속해 있는 그룹 외 전혀 다른 분야의 사람들을 많이 알게 되었고 각각의 그룹에서 친해지게 된 한두 사람과 우정을 여전히 유지하다 보니 발이 넓어 "보이는" 사람이 됐다. 하지만 실제로는 비공개로 운영하는 내 인스타그램의 팔로우 수는 고작 170여 명 정도다. 많은 사람들과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는 관계보다는 깊고 좁은 관계를 선호하다 보니 주기적으로 연락하고 안부를 묻는 친구가 많지는 않다. 하지만 이 적은 인원의 친구들이 내겐 일당백을 하는 워낙 알짜배기들인지라 내가 뭘 하든 어디 있든 늘 힘을 주고 도움을 준다. 어떤 인연이 나에게 귀하고 소중한 인연이 될 지는 아무도 모르기에 스치는 인연도 늘 조심스럽게 여기는 이유다.


늘, 그리고 새삼 느끼지만 세상이 참 넓으면서도 참 좁다. 새로운 누군가와 인사를 하고 조금씩 가까워질 때마다 또 어느 접점이 있을까 기대가 되면서도 걱정이 된다. 오늘도 착하게 살아야지 다짐하며 하루를 시작해 본다.


미얀마의 대표 작가 조윈페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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