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어게인-무명가수전. 장르가 30호 이승윤의 치리치리뱅뱅
학년을 마치고 어느덧 고등학교로 진학하는 시기의 중3 교실은 여느 때보다 좀 더 왁자지껄했다. 어느 계열, 어느 학교로 지원할지 고민하는 급우 사이에서도 나는 참 평온했다. 적당한 성적의 나는 일찌감치 일반고 진학을 결정지었고, 어차피 나라에서 배정해주는 대로 아래층 선배가 다니는 학교로 배정될 것이 뻔하여 아무 기대도 없었다. 문득 건너 책상에 암묵적으로 우리 반 마지막 등수라 소문난 아이가 같이 다니는 아이에게 어느 학교를 지원할지 고민을 말하는 게 귀에 꽂혔다.
반장은 특목고에 지원했다. 나는 일반고로 진학을 하기로 했고, 반의 끝 등수인 저 아이는 처음 들어보는 학교들 중에 고르고 있다. 경주마처럼 '좋은 대학' 진학이란 목표를 향해 달리는 시작하는 중학 시절의 성적 평가로 각자 진학할 수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될 것이다. 특목고로 가는 반장은 그 안에서 어느 정도 등수만 유지하면 소위 명문대로 불리는 곳에 진학을 할 수 있을 것이고, 일반고로 가는 나는 반에서 10등 안에만 들면 집에서 통학할 수 있는 대학에 진학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학교를 고르고 있는 저 아이는 어떻게 될지 전혀 그려지지 않았다. 나는 사회가 정해놓은 대학이라는 목표 아래 한우 등급처럼 매겨진 등수를 따라 내가 갈 수 있을 대학에만 몰두하는 고작 그것밖에 안 되는 16살 인생이었다.
쟤는 나중에 어떻게 살게 될까?
무의식적으로 떠오르는 의문이었다. 문득 교실을 둘러보았다. 시선의 끝은 같은 반 학우들에게 닿아있었다.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는 우리들이지만, 서류에는 등수가 매겨져 1등부터 모두가 숫자로 표기되어 있었다. 나는 항상 한 자릿수 등수를 차지하고자 발버둥을 쳤었고, 이전 등수보다 더 밀려나지 않기 위해 애를 썼다. 처음으로 나보다 더 큰 숫자가 매겨지는 이들에게 시선이 갔던 그 날의 의문을 이기적 이게도 나의 삶에만 집중하기 위해 바로 외면했다.
아무 생각 없이 재생한 오디션 프로그램 동영상에서 한 남자가 포효를 하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원곡이 전혀 생각나지 않는 국악인지 락인지 힙합인지 모를 편곡으로 노래를 부르고 나서 그에게는 여러 종류의 평가가 나오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들은 나는 전율이 일었는데, 심사위원은 기타가 없어 아쉽다고 했다. 그리고 갑자기 서태지가 언급되었고, 누군가는 새 거라고 했다. 노련한 심사위원장은 혼란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심사평을 맺었다.
"몇십 년간 음악을 해온 이 자리에 계신 선배님들과 지금 현역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우리 주니어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방금 전까지 포효하듯 노래 부르던 가수는 희미한 미소로 지적과 극찬이 오가는 혼란스러움을 그저 보고 듣고 있었다. 한 번만 들을 수가 없어 노래를 다시 재생해서 들었다. 여전히 전율이 일었고, 다들 나와 같은지 궁금하여 아래에 달린 댓글들을 줄줄이 찾아 읽어 내려갔다. 달린 댓글은 10,000개가 넘어 있었고, 청소년부터 20~40대, 심지어 50~70대 이상의 분들의 극찬과 정성이 담긴 긴 댓글이 수두룩 했다. 수도 없이 같은 동영상을 재생하면서 노래 부르기 전 그가 했던 말들을 듣고 또 들었다.
"우리 둘을 분명히 붙일 것이다. 그것은 너무 속상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누가 이기든 지든 패배자를 심사위원분들로 만들자. 잘 했더라구요. 저도 잘하려고요." -싱어게인 中 30호 가수 왈
그가 주는 전율에 이끌려 올라와 있는 그의 동영상을 샅샅이 뒤져 보기 시작했다. 조각조각 편집된 몇십 개의 동영상과 그 밑에 달린 몇 만개의 댓글을 본 후에야 처음의 말이 어떤 심정으로 나오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상금 1억이 걸린 무명 가수들의 오디션에서 팀을 이루어 경연을 하는 직전 라운드에서 상대 팀원들과도 정이 들어 그들이 떨어지자 눈물을 보이며 다 같이 잘했어야 했는데 라고 말하는 그의 모습은 참 이질적이었다. 같이 노래 부른 다른 가수는 자신이 합격했다는 기쁨이 더 커 보였고, 나도 저 기쁨이 당연하다 생각했다. 인간은 피 흘리는 타인의 고통보다 바늘에 따끔한 내 고통을 더 강렬하게 느끼는 존재이니까.
모두가 1등이 되고 싶었기에 최선을 대해 스스로에게 몰두하여 최고의 무대로 선정되고자 했다. 경쟁을 통해 최고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현대 사회의 시스템은 멈추어 고여 썩어버리는 사회가 되지 않기 위해 발전을 위한 경쟁에 대해 당연히 여겨왔다. 우리는 이 경쟁 시스템에서 자라오면서 오로지 나의 통과와 탈락에만 목매어 살아오면서 어느 순간 탈락을 마주하게 되면 세상이 끝나버린 듯 주저앉아 절망하다 자괴감에 빠져들었다. 끊임없는 자책과 사회가 원하는 기준에 맞춰 살아가지 못하는 자신을 원망하는 마음은 스스로를 사랑할 수 없게 만들어 나를 병들게 했어도 내면을 들여다보며 슬퍼하기만 했다. 30호라 불리는 이 무명가수가 보여준 무대는 경쟁을 통해 타인을 누르고 이겨 승리자가 되는 목표가 아닌 그저 내가 만든 음악을 들어달라는 자세로 프로그램을 보는 시청자의 마음에 닿고자 했으며, 역으로 그동안 사회가 짜 놓은 시스템 밖에서 작은 짱돌을 하나 던져 16살의 내가 외면했던 경쟁을 다시 생각해보게 하였다.
그저 존재함으로써 가치를 지니는 생물에게 인간의 기준으로 가치를 부여하고 순위를 매기고 우열을 가리려는 것.
이 무명 가수는 나중에 방송에서 '이승윤'이란 자신의 이름을 공개하며 날개 모양의 노래를 부르는 음악인으로 대중 앞에 서게 되었으며, 지난한 코로나와의 싸움으로 푸른 신록과 더위가 성큼 다가올 때쯤 대중 앞에서 콘서트를 하게 되었다. 첫 콘서트 무대가 세종문화회관이 되어버린 음악인 이승윤을 만날 생각에 매우 기대되는 청자(聽者)는 그가 앞으로의 삶에서 들려줄 날개 모양 노래에 참으로 흥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