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고 하나님께 서로를 탓하며 하나 됨이 깨진 것을 확인하기 전, 선악과를 먹은 직후 그들이 보였던 행동, 벗은 것을 알게 되고 벗음으로 두려워한 그 일을 지나친 것 같다.
창세기 3장
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8. 그들이 그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10.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선과 악을 자신의 기준으로 분별할 수 있게 되자 알게 된 것이 자신의 벗음이고 이로 인해 두려워한다고 성경은 묘사한다.
그동안은 벗고 지내는 것이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는데 이제는 신경이 쓰인다.
여기에 더해 그동안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던 벗은 것이 이제는 두려움을 느낄 정도의 문제가 되어 있다.
왜 갑자기 벗은 것이 신경이 쓰이고 두려울 정도로 문제가 됐을까?
이 질문엔 욕망의 본질이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선과 악을 내 기준으로 분별하겠다는 것, 여기서 내 기준은 분명 내 욕심, 또는 욕망이 분명하다.
그리고 이 욕망의 이면엔 나의 결핍이 자리한다.
즉 아담과 하와가 벗음을 자각했다는 것은 스스로에 대해 자신의 시각으로 인식했고 자신이 얼마나 약한 존재이며 부족한 존재인지를 마주해 알게 됐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는 생존에 치명적인 위협이 되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게 되어 두려움에 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때문에 인간은 이런 스스로 생존을 지켜낼 수 없을 정도로 부족함을 극복하고자 생존에 문제가 없는 상태를 욕망하게 되는 것이다.
더 가지려 하고, 더 높아지려 하며, 두려움을 극복하고자 쾌락을 추구한다.
욕망을 추구했기에 부족함을 알게 된 것인지, 부족함을 깨달아 그것을 채우기 위해 욕망이 발현되는 것인지, 그 순서는 의미가 없다. 그냥 그 둘은 하나다.
이 문제에서 중요하게 따져야 할 인과관계는 하나님을 떠나기로 결정한 순간 욕망과 부족함이 동시에 발현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 한 명 한 명을 완벽한 존재로 만들지 않으셨다. 기본적으로는 남자와 여자로 서로 다르게 만드시고 둘이 하나 됨으로 완전한 존재가 되도록 하셨다.
남녀 간뿐 아니다. 사람은 혼자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다. 때문에 공동체를 이루어 각자의 역할로 공동체에 기여하며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을 충족시켜 살도록 하셨다.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자연과도 서로 돌보며 서로의 생존에 보템이 되도록 하셨다.
창세기 1장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조의 마지막 단계에 사람까지 만드신 이후 그들에게 복주시며 하신 이 말씀은 하나님의 창조세계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사람을 중심으로 다스려지며 하나가 되어 서로에게 필요를 채워주며 함께 살아가야 함을 말하고 있음이다.
무엇보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고 하나님과 더불어 함께해야 존재의 가치와 생존의 조건인 하나 됨을 충족시킬 수 있도록 지음 받았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 스스로의 기준으로 살겠다 선언했다.
함께라는 가치는 사라졌고, 모두가 나를 우선시하는 기준으로 살게 되어 충돌은 불가피해졌다.
싸움과 분쟁의 시작이고, 이런 상태가 기본 환경이 되어 이간은 생존에 우위를 점하기 위해 힘과 권력을 욕망하고 추구하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이것의 반대급부로 불평등이, 착취가 만연한 세상이 되어버렸다.
비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