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인이 아벨을 죽인 사건은 인류사에 발생한 최초의 살인이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다.
최초의 살인, 최초의 살인자, ‘최초’, ‘처음’이라는 타이틀에 가려진 이 사건이 갖는 본질적인 의미가 무엇인지 살펴야 그 최초라는 타이틀이 현재에 어떤 메시지를 주고 있는지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창세기 4장
3.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4.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5.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6.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8.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 죽이니라
사건의 개요는 잘 아는 대로다.
카인은 땅의 소산, 즉 곡식과 과일 등으로 재물을 삼아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고,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벨의 제사는 받으셨고 카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다.
그리고 이를 분하게 여긴 카인은 동생 아벨을 쳐 죽인다.
이 사건에서 두 가지 문제가 보인다.
첫 번째 문제는 하나님은 왜 아벨의 제물은 받으시고 카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는지이다.
이를 두고 하나님이 선호하시는 제물과 제사가 있다고 말하는 자들도 있다.
여기에 더해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께서 친히 양을 잡아 양의 가죽으로 옷을 해 입히신 것과 연관 지어 하나님이 친히 인간의 죄를 가리기 위해 사용한 양을 귀히 여겨 양을 치고 그 양을 바친 아벨을 더 옳게 보셨다고 하는 주장도 본다.
하지만 본문을 자세히 보면 제사를 드림에 있어 제물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 생각된다.
성경은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카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다고 표현한다.
즉 제물만을 받으신 것이 아니라 아벨 자체, 즉 그의 삶까지 받으셨다는 점이다.
마찬가지로 카인의 제물만 받지 않으신 것이 아니라 카인 자체, 즉 카인의 삶도 받지 않으신 것이다.
하나님이 동생의 제사는 받으시고 자신의 제사는 받지 않으신 것에 분해하며 안색까지 변한 카인에게 그 이유를 반문하시며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하신다.
그리고 "선을 행하지 않으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신다.
즉 제사를 받으시고 받지 않으심이 제물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지 따르지 않음에 있다는 것을 알게 하신다.
다시 말해 아벨은 선한 삶으로 이미 받으실만한 삶을 드렸고 하나님은 그 제사와 더불어 그 삶을 받으셨으며, 카인은 악한 삶을 살며 형식적인 제사를 드렸기에 받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의미의 크기가 작지 않다.
이후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해 이스라엘의 죄를 지적하실 때마다 제사로 대변되는 종교적 의식, 형식에만 치중한 행위는 지속적으로 지적이 되어 왔다. 더 나아가 형식에만 치중하고 하나님의 삶으로 뜻을 따르지 않는 것을 외식한다며 정죄하셨다.
즉 제사의 의미가 형식에 있지 않고 삶을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내는 것임을 분명하게 밝히셨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두 번째 문제는 카인이 아벨을 죽인 부분이다.
이 부분은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은 그 내면의 동기와 완벽하게 일치한다.
선악과를 먹음으로 선과 악에 대해 하나님의 기준으로 분별하는 것이 아니라 내 기준으로 구분하려는 의도 말이다.
즉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삶이 아니라 자신의 욕심을 따라 살겠다는 그 욕망의 발현을 말한다.
하나님이 옳다 인정한 삶, 받을만한 제사를 드린 동생 아벨이다.
카인은 그 아벨을 죽임으로 하나님이 옳다 하신 것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부정했다.
하나님의 기준을 부수고 내 기준을 들이대며 내가 옳음을 주장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선한 삶과는 정 반대의 악한 삶을 살면서 그것이 옳다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다.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추구한 것이 무엇인지를 그 실체를 정확하게 목격하는 순간이다.
또한 하나님의 뜻이 아닌 내 욕심을 따라 사는 삶이 얼마나 파괴적인 것인지를 알게 된다.
그 욕심의 발현으로 형제의 관계가 사라졌다. 그의 부모인 아담과 하와에게서도 떠나 관계가 중단 됐다.
하나남과의 관계는 말할 것 도 없다.
하나님의 기준이 아닌 내 기준, 내 욕심과 욕망을 추구하는 것은 모든 관계를 파괴한다.
결국 카인은 모든 관계에서 단절되고 혼자 유리하는 삶을 예고받는다.
혼자 유리하게 된 카인은 아담과 하와가 벗은 자신을 마주할 때처럼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당연하다.
나를 만든 존재를 떠나고 나를 만든 이유를 반박하는 것은 삶의 목적과 이유를 버리는 것이다.
인간이 존재의 이유와 목적을 잃어버린 후 남은 것은 그저 생존 자체가 이유이고 목적이 되어 버린다.
쫓아야 할 이상이 없는 존재는 두려움을 감당할 의지가 없다. 그저 두려움을 느낄 뿐이다.
카인은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얻은 것인가.
어리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