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레 성수: 아모레퍼시픽이 제안하는 화장의 즐거움
성수동에 새롭게 문을 연 아모레 성수는 깔끔하고 간결하다. 가마에 넣기 전 유약을 바른 도자기와 같은 공간이다. 블루보틀 성수가 생각나기도 한다. 하지만 그곳보다 건축 결은 훨씬 부드럽다. 블루보틀 성수에서는 거친 콘크리트 질감이 돋보이지만 이곳에서는 콘크리트의 부드러운 느낌이 돋보인다.
콘크리트, 빛, 정원을 통해 만든 보드라운 공간.
성수동은 예전부터 금속, 자동차 공장이 즐비한 지역이었다. 금속 자르는 소리, 길가를 지나가는 자동차, 지하철이 지나가는 소리 등등. 따뜻한 정서를 품은 서촌과는 전혀 다르다. 특히 따뜻한 화장품을 취급하는 아모레퍼시픽에게 성수동 분위기는 자칫하면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었다. 아모레 퍼시픽은 이러한 문제를 채광과 정원으로 해결했다. 그 중심인 공간이 아모레 성수 입구에 자리한 아모레 성수 가든이다.
기존에 있던 자동차 정비소 중앙을 정원으로 만든 곳이 아모레 성수 가든이다. 오래된 숲을 묘사하고자 한 정원은 안으로 들어갈수록 드라마틱하게 커진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가파르지는 지형, 나무를 중첩시켜 만든 선에서 나오는 깊이, 채광, 돌, 한국에서 자라는 다양한 식물들은 정갈한 아모레 성수 공간을 풍성하게 만든다.
콘크리트와 정원은 서로를 도우며 아모레 성수에 아름다움을 더한다. 정원은 차가운 아모레 성수에 신선함을 더하며, 아모레퍼시픽이 취급하는 화장품이 가진 속성을 살린다. 경계 없이 이어지는 정원을 바로 보는 몰입감. 차분함과 시원함 속에서 아모레퍼시픽 제품 경험의 밀도는 세밀해진다. 콘크리트로 둘러쌓은 공간에 만들어진 아모레 성수 가든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오브제다. 동시에 아모레 성수 안에 따스한 정서도 넣는다. 자리에 앉아 화장품을 바르며 정원을 걷는 일은 휴식 그 자체다. 성수 가든은 그 자체로 사람들에게는 '쉼'을, 아모레퍼시픽 제품이 미감을 잃지 않게 만든다.
아모레 성수 공간의 가장 큰 과제는 콘크리트다. 철골, 시멘트, 콘크리트는 공간을 차갑게 만들 수밖에 없다. 특히 오설록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전부 콘크리트다. 어떤 곳을 보아도 콘크리트다. 공간은 차가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문제를 채광과 꽃꽂이를 통해 해결한다. 뷰티 라이브러리의 과감한 유리창은 콘크리트의 차가움을 줄이고 부드러움을 돋보이게 한다. 정원과 채광이 제일 약한 곳에는 꽃꽂이를 두어 계절감을 전한다. 콘크리트가 지배하는 차가운 공간에 꽃꽂이를 통해 계절감을 끌어온다. 또한 나무로 만들어진 가구를 비치해 차가움을 환기시킨다.
2층도 마찬가지다. 오설록 매장으로 들어오는 작은 창문, 정원 풍경, 나무 진열장, 의자도 공간에서 차가움을 사뿐히 밀어낸다. 블루보틀 성수에서 사람들이 공간을 주도한다면? 아모레 성수에서는 사람과 공간이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공간을 만든 건축가의 세심함과 고민을 느낄 수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공간은 점으로 나뉜 아모레퍼시픽 브랜드를 경험으로 나누어 하나의 면으로 통합한다.
음악은 언제나 공간 밀도를 높이며 공간이 추구하는 미감을 전한다. 공간이 죽느냐 사느냐를 결정될 정도로 음악이 가진 힘은 크다. 또한 음악은 공간 안에서 사람들의 행동에도 영향을 준다. 스타벅스 같은 경우, 매장에 사용하는 음악을 따로 편집해 매장에 제공하는 걸로 알려져 있을 정도로 음악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내가 아모레 성수를 처음 방문했을 때는 오픈한 지 3주밖에 지나지 않았다. 직원들은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음악 볼륨을 체크했다. 또한 서로 음악 선곡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며 아모레 성수에 어울리는 음악을 찾고 있었다. 내가 아모레 성수에 머무는 동안에는 재즈가 주로 나왔다.
공간에 맞는 음악을 찾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고려하면? 음악은 앞으로 더 좋아지리라 생각한다. 음악뿐만 아니라 아모레 성수에 상주하는 직원들은 아직 자신들이 담당하는 업무에 적응하는 중이었다. 이 역시도 1,2개월 정도 지나면 해결되리라 생각한다. [이 글을 쓰고 몇 번 아모레 성수에 방문했었다. 아모레 성수의 음악은 확실하게 자리 잡았고, 직원들 접객도 매우 능숙해졌다.]
아모레 성수는 제품을 판매하지 않는다. 그 대신 아모레 퍼시픽은 아모레 성수 안에 아모레퍼시픽 제품을 모두 가져다가 놓고 사람들이 경험해보기를 권한다. 방문객들이 제품을 보다 편하게 경험할 수 있도록 락커룸까지 설치했다. 그렇지만 화장품은 굉장히 민감한 제품이다. 사람 손이 많이 닿기 때문에 위생관리는 필수다. 이를 위해 아모레 성수에서는 위생을 강조하는 안내판도 매장 곳곳에 설치했다. 또한 클렌징 룸에서는 개인용 수건을 구비했고, 다 쓴 수건이 담기는 통도 금속 재질을 사용해서 공간과 잘 어울리게 했다.
이전까지 아모레퍼시픽 브랜드 제품을 체험해보려면 백화점, 아리따움, 로드샵(이니스프리, 에스프아 등등)등 각기 다른 매장을 찾아야 했다. 아모레 성수는 제품을 찾아 이곳저곳 돌아다녔던 소비자들의 불편을 아모레 뷰티 라이브러리를 통해 해결한다. 아모레 뷰티 라이브러리는 흩어진 아모레퍼시픽 브랜드를 모두 모았다. 아모레퍼시픽이 취급하는 브랜드들을 모두 가져와서 기능별, 질감 , 감촉 별로 배치했다. 가격대가 높은 설화수와 아모레퍼시픽 라인도 있다. 아모레퍼시픽 CC쿠션까지 있다. 설화수 라인을 과감하게 놓은 아모레퍼시픽의 대담함에 놀랐다.
제품 진열 순서는 수면팩, 피부 정돈, 선크림 등 화장품을 사용하는 순서별로 제품을 비치했다. 핸드크림은 향을 기준으로 배치했다. 스킨 타입에 맞는 크림, 크림 종류, 느낌도 브랜드별로 비교할 수 있게 했다. 개인 취향에 맞는 아모레 제품을 사용해볼 수 있다. 설화수, 프리메라, 헤라, 라네즈, 마몽드같이 아모레퍼시픽 브랜드를 동시에 사용해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설화수 제품을 테스트를 해보고 싶었는데, 아모레 성수에서 테스트를 해보면서 아주 좋았다.
화장품은 경험이 시작이자 끝이다. 화장품은 경험할 때 비로소 의미가 있다. 아무리 좋은 화장품도 피부톤과 맞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아모레 성수는 화장품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서비스로 담았다. 이 같은 고민은 아모레 퍼시픽 제품 진열 방식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일단 아모레퍼시픽은 자신들이 취급하는 전 제품을 보여주기 위해서 각 브랜드 미감을 아모레 성수에서 과감하게 포기했다. 제품을 회색 디스플레이(프리캐스트 콘크리트 선반)에 진열하기 때문에 일부 제품들은 색이 죽어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아모레 퍼시픽은 개의치 않는다. 물론 브랜드 미감도 중요하다. 하지만 아모레 성수에서는 소비자가 제품을 보고 경험하는 게 더 중요하다.
이 같은 부분은 시세이도 S/PARK와 확연히 달랐다. 시세이도는 시세이도 S/PARK에서 자신들이 취급제품을 랩과 뮤지엄에서 모두 소개하며, 제품 미감도 포기하지 않는다.(하지만 두 곳은 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우열을 내릴 수는 없다. 게다가 S/PARK는 연구소의 연장선이기 때문이다.)
아모레퍼시픽(AP), 설화수, 라네즈, 헤라, 프리메라, 이니스프리 등 아모레퍼시픽 각 브랜드는 미감이 매우 강하다. 그러나 아모레퍼시픽은 자사 브랜드 미감이 강해도 결국 고객보다 강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아모레 성수에서 무척이나 강조한다. 수십 년간 지켜온 1위 자리를 LG생활과학에게 빼앗긴 상처가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그렇기에 이곳에서 선보이는 모든 제품은 철저하게 '고객중심', '고객가치'다. 큐레이션과 라이프스타일 제안? 그런 거 없다. 고객이 직접 보고 선택해라! 그게 가장 중요하다 고객을 뛰어넘는 건 없다. 그중에서 특히 이를 가장 잘 표현한 곳은 단연코 메이크업, 메이크업 룩, 파우더룸 코너다.
아모레 성수는 이 같은 고객 불편을 해결하기 위해 과감한 시도를 했다. 모든 립 제품을 4계절과 3가지 질감을 기준으로 나누어 84개의 색상을 비교 체험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코스매틱 덕후들이여! 열광하라! 이곳은 립스틱 덕후들이 반드시 찾아야 할 곳이다. 뿐만 아니라, 아모레 퍼시픽 메이크업 프로 아티스트의 감각으로 완성한 화장법을 따라 해 보거나 혹은 직접 배울 수 있다.(예약 필수. 스케줄은 아모레 성수 홈페이지와 인스타그램에 소서 공지하고 있다.)
아모레 성수는 이 같은 고객 불편을 해결하기 위해 과감한 시도를 했다. 모든 립 제품을 4계절과 3가지 질감을 기준으로 나누어 84개의 색상을 비교 체험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코스매틱 덕후들이여! 열광하라! 이곳은 립스틱 덕후들이 반드시 찾아야 할 곳이다. 뿐만 아니라, 아모레 퍼시픽 메이크업 프로 아티스트의 감각으로 완성한 화장법을 따라 해 보거나 혹은 직접 배울 수 있다.(예약 필수. 스케줄은 아모레 성수 홈페이지와 인스타그램에 소서 공지하고 있다.)
나는 립스틱을 좋아한다. 무엇보다 각 제품들을 보면서 발색을 비교할 수 있어서 좋았다. 게다가 내 생각보다 아모레퍼시픽에서 다양한 제품을 출시한다는 사실에 또 놀랐다. 앞으로 어머니 선물을 산다면 아모레 성수는 꼭 한번 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곳에서 아모레퍼시픽은 그들이 그동안 만든 브랜드를 모두 해체한다. 아모레 성수에는 헤라도, 설화수도, 이니스프리도 없다. 브랜드 중심이 아니다. 오로지 아모레퍼시픽만 있다. 오직 사용자들이 화장품을 쓰는 '시간'에 맞추려고 노력한다.
아모레퍼시픽 제품을 하나의 점이라고 한다면? 아모레 성수에서는 그 점과 점이 이어지면서 선을 만든다. 그 선들이 고객들과 만나며 고객과 아모레퍼시픽 간 하나뿐인 경험을 만든다. 멋진 문구, 아리따운 모델도 없다. 누군가 아름다움을 제시하지도 않는다. 오로지 고객만이 자신의 타임라인 속에서 아모레퍼시픽 제품을 경험한다. 클렌징에서 메이크업까지 이곳에서 주인공은 자기 자신이다. 아모레퍼시픽은 이를 위해서 클렌징실, 파우더룸을 만들고 기초화장품도 화장 순서에 맞추어서 배치했다. 보통 기초화장품이 끝나면 본격적인 메이크업을 한다. 메이크업에 관한 조언은 가장 마지막에 제안할 만큼 서비스 동선에서 고객을 방해하는 요소는 최소화했다. 제품이 아닌 고객만 바라보고 있다. 그렇기에 아모레 성수는 화장품을 파는 공간이 아니다. 아름다움을 알아가는 공간이다.
코스매틱은 아주 작은 '초'를 연결해 '분'으로 만들어 이것이 '24'시간으로 이어지게 만드는 분야다.'순간'에 집중하는 분야이자, 시간을 다루는 분야다. 아모레 성수는 시세이도보다도 세밀했다. 시세이도는 시세이도 더 테이블, 스토어, 팔러에서 아름다움과 음식을 논한다. 하지만 화장품은 '제품'이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그 충실함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게 우선이다. 이 같은 면에서 아모레 성수는 모양새만 다를 뿐, 스타벅스 리저브 로스터리 도쿄, 츠타야 서점, 넷플릭스와 별반 차이가 없다. 스타벅스가 카페 속 모든 기능을 통합해 고객에게 '카페 경험'이라는 시간을 제시하듯, 아모레 성수는 아모레퍼시픽이 취급하는 '화장품'에 대한 모든 기능을 통합해 고객에게 '화장 경험'으로 제시한다. 단지 공간 크기, 기술만 다를 뿐이다.
나는 실제로 클렌징 룸에서 세안을 하고 수건을 씻은 후에 아이오페 비타민씨 앰플을 바르고, 설화수 로션을 바르고, 선크림을 바른 후에 핸드크림을 발라보았다. 근데 이게 정말로 재밌었다. 물론 화장품이라는 속성상 클렌징 룸에서 화장을 다 지우고 처음부터 다시 해보는 일은 상당한 도전이 필요할 수 도 있다고 생각은 했다.
과거와 현재에 공간이 가진 맥락을 살리는 일. 지금 시대 공간을 만드는 일은 지역마다 갖고 있는 관계를 공간에 담고자 한다. 당연히 기존 공간을 고스란히 살리고 내부를 다듬어 새로운 공간으로 사용하는 일은 당연한 흐름이 되었다. 이는 공간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변화에 있다. 지금까지 건축을 돌아보면 건축은 사람들이 살아간 환경을 건물로 '분리'시키는 게 핵심이었다. 르 코르뷔지에가 지은 빌라 샤보이가 역사에 족적을 담길 건축인 건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빌라 사보아처럼 ‘필로티’를 활용한 건물은 건물과 환경과의 관계를 단절시킨다. 좋은 말로 하면 독립적이지만 사실은 건축 그 자체만 주목받는다.
뿐만 아니라 필로티는 어느 곳에 가도 동일한 건물을 만든다. 국제주의 양식이 대표적인 사례다. 엠파이어스테이트, 크라이슬러 빌딩 등 뉴욕 빌딩에서 본 미감을 도쿄 마루노우치 지구에서도, 서울에서도 일부 동일하게 느낄 수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양식이 거의 동일하기 때문이다. 이걸 마냥 좋다고만 볼 수는 없다. 독립적인 건축양식은 어느 곳에서나 응용 가능하지만 건물괴 환경을 크게 고려하지 않는다. 오직 건물 그 자체와 그 안에서 '기능'만 강조할 뿐이다.
그렇지만 각자의 취향을 중시하기 시작한 지금 시대의 공간은 더 이상 관계가 단절되는 걸 원하지 않는다. ‘취향’을 제시하는 라이프스타일 기획이라고 하지만 사실 그 속에는 ‘일방적인’ 관계에 대한 거부가 있다. 아무리 물건을 책을 통과시켜서 맥락을 넣고 멋지게 포장해도 우리는 그게 ‘소비’가 목적인지, 진심을 담은 ‘목적’인지 금세 구별한다. 인스타그래머블과 그렇지 않음을 쉽게 구분하듯 말이다.
이제 젊은 세대들은 ‘공장’에서 만들어진 제품들이 얼마나 단절된 '관계'에서 만들어졌는지를 알고 있다. 로컬과 가치소비가 성장하는 이유는 '단절'로 '연결'로 만들기 위함이다. 대량생산으로 만들어진 음식이 품질은 일정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 과정에 감정은 없다. '품질'만 있을 뿐이다. 물론 햇반은 맛있다. 그렇지만 햇반이 정성이 들어간 밥이라는 말에는 쉽게 동의하지 못할 거다.
사람들이 공간에서 관계를 찾기 시작한다는 점은 고무적인 일이다. 더 이상 강한 건축. 누군가가 제시하는 게 메시지를 과감하게 거부한다는 말이다. 강한 건축과 제안을 거부할수록 공간과 제안은 더 부드럽게 나아갈 수 있다. 오래된 콘크리트에서 매력을 느끼고, 낡은 서랍장에서 매력을 느낀다는 건 '아름다움'을 보는 '눈'을 뜨고 있는 과정이다. 아름다움을 보는 눈이 뜨이면 공간을 받아들이는 방식도 자연스럽게 변한다. 자연스럽게 연출한 이미지와 심미성으로만 승부를 던지는 화장품은 설 공간이 없다.
아모레 성수는 이에 대한 아모레퍼시픽만의 답이다. 아모레 성수에서 아모레퍼시픽은 허례허식, 심미적인 요소는 모두 버렸다. 이는 화장품이 사람들 삶에서 어떤 ‘관계’를 가져야 할지 고민한 결과물이다.
아모레퍼시픽은 자신들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아모레퍼시픽만의 아시안 뷰티(Asian Beauty)를 통해 아름다움을 창조하며 세계와 소통합니다. 아모레퍼시픽은 더 아름다운 세상을 향한 원대한 여정을 오늘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그 여정이 앞으로 어떻게 계속할지 그건 나도 모른다. 오직 지켜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