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미감을 빼고 일상을 바라보니 비로소 사람이 보였다.
(지난 글에서는 다소 글이 산만해서 아모레 성수의 세부적인 부분을 다루지 못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아모레 성수의 세부사항을 좀 더 보려고 합니다.)
나는 남고를 나왔다. 중학교는 남녀공학을 다녔다. 조금은 흐릿해진 기억을 더듬어 보자. 그 당시에 여자아이들은 화장을 거의 하지 않았다.(대략 1998년-2000년. 20년 전이다.) 화장을 하는 건 '어른' 혹은 '성숙'을 의미했다. 학교 수련회에서 장기자랑을 할 때만 여자애들이 화장하는 걸 볼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화장을 잘하지 않은 탓에, 여자들의 화장은 다들 무척이나 어색했다.
20대인 시절만 해도 화장품 정보는 잡지 혹은 백화점 매장에서 얻는 게 전부였다. 화장품을 정말로 좋아하는 이들은 폴리 비가운의 책 '나 없이 화장품 없이 사지 마라'책을 보고 성분을 꿰고 있었다. 반면에 지금은 유튜브부터 시작해 각종 [SNS, 어플(화해), 친구들]을 통해 화장법, 제품 정보, 성분 정보를 얻는다. 오히려 10,20대에게 화장품은 표현 수단이자 놀이다.**10대에서부터 20대까지 유튜브를 같이 보면서 신상 화장품을 체크하고 화장도 하는 모습은 카페를 운영하면서 자주 본 풍경증 하나다.
10년 전만 해도 화장품 정보를 찾기 위해서는 구글, 블로그, 포털사이트에 들어가 후기를 '읽어'보거나 잡지 혹은 출간된 책을 보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유튜브를 통해 화장품 리뷰 영상을 보거나, AR기술이 적용된 앱을 통해 발색이 어떤지 가늠해 볼 수 있다. 10년과 다르게 오감을 사용해 화장품을 정보를 얻는다. 뿐만 아니러, 브랜드가 엄청난 스토리를 말해도 소비자는 그걸 '인생템' 한마디로 말한다. "천년의 아름다움을 전합니다"보다는 "꿀피부에 수분 폭탄!'같은 말이 더 와닿는다.
"천상의 아름다움, 아시아의 뷰티!' 이 같은 표현은 진부하다. '인생템'이 더 와닿는다. 오히려 '수분 폭탄', '꿀피부'같이 직관적인 단어가 편하다.'저세상 텐션'이라는 말만 해도 뇌리에 확 와닿는다. 그만큼 지금 시대는 외피보다는 내피를 직설적으로 들어낸 게 최고다. 어차피 제품 리뷰는 구글에서 몇 초면 찾는 시대다. 이제 까면 다 안다. 차리리 품질과 바이럴을 더블로 묻고 가는 게 최선이 아닌가?
아모레 성수가 지향하는 경험은 '바르다'다.'오늘 아침 화장대에 앉아서 화장품을 발랐다.'의 그 '바르다'다. 아모레 성수는 '바르다'를 기준으로 해서 아모레퍼시픽 브랜드가 가진 옷들을 빼고 또 뺀다. '바르다'로 시작하고 '바르다'로 끝난다. 그렇기에 아모레 성수는 '뺄셈'의 공간이다. 그 결과 남은 것은 오로지 '제품'이다. '화장'이라는 행위로 집중했기에, 아모레퍼시픽이 만든 개별 브랜드들의 브랜딩은 사라진다. 하지만 화장품이 가진 본질에 집중했기에 아모레퍼시픽이 제품에 담고자 한 가치는 사라지지 않는다.
아모레 성수의 고민은 간단하다. 어떻게 아모레 피시픽과 브랜드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뺄까?'왜 소비자들에게 경쟁사 제품이 아닌 아모레퍼시픽 제품을 써야 하는지 납득시켜야 할까?''어떻게 소비자들이 화장품을 구매할 때 하는 고민을 줄일까?' 이를 위해 아모레퍼시픽은 그들이 가진 각 브랜드 스토리, 미감을 모조리 빼버린다. 오직 아모레퍼시픽이 추구하는 가치만 뽑아낸다. 아모레퍼시픽의 자부심이라고 할 수 있는 브랜드인 '설화수'와 '아모레퍼시픽'도 마찬가지다. 아모레 성수에서는 아모레 퍼시픽을 대표하는 2개의 프리미엄 브랜드도 과감하게 비치한 것도 이 때문이다. 설화수와 아모레퍼시픽의 제품이 아무리 훌륭해도 사용자들이 사용해보지 않으면 소용없기 때문이다. 강력한 브랜드 스토리마저도 뺀다. 이렇게 의식하고 의도해 아모레퍼시픽만의 충분함을 빼온다. 그 충분함의 결과는 '화장'이라는 일상 속 즐거움이다.
많은 사람들이 화장품을 구매하고 나면 쉽사리 다른 제품으로 바꾸지 않는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화장품은 브랜드 파워가 강력해야 한다. 브랜드 파워가 강력해야 하다 보니, 브랜드를 뒷받침하는 스토리, 이미지, 미감도 덩달아 강력해야 한다. 화장품 브랜드가 다른 업종 브랜드보다 브랜딩이 강력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화장품의 치명적인 단점은 제품이 고객 '피부'와 맞지 않을 때다.
내 지인 중 한 명은 코럴색 립스틱을 매우 좋아한다. 하지만 본인의 피부톤이 코랄이 맞지 않아서 코랄을 사용하지 못한다. 지인은 나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주변에서 코럴 계열을 써서 상큼하게 표현한 거 보면 내 피부는 저주받았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죠. 코럴 제품이 유독 많이 나오는 봄이 되면 정말 짜증 나요. 코럴을 무척이나 좋아하는데... 나하고 맞지 않으니까요." 이런 이야기가 전부는 아니다. 하지만 각자의 사정에 따라 원하지 않게 브랜드에서 이탈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탈을 막을까?
아모레 성수의 뷰티 라이브러리에서는 제품은 고객만 바라본다. 마치 아모레퍼시픽이 고객들에게 사열식을 하는 모습이다. 제품들은 가만히 서서 고객들의 취향, 필요에 맞게 움직인다. 아모레퍼시픽은 '질감', '기능, '색깔, '용도'에 따라서 각기 사열을 해 고객들을 맞이한다. 이곳에서 사열을 받는 이는 오로지 고객이다. 최상위 라인에서 하위 라인 까지라는 계급장은 없다. 계급은 고객이 정한다. 이곳에서 제품은 고객만을 위해서 존재한다.
아모레 성수의 뷰티 라이브러리에서는 제품은 고객만 바라본다. 마치 아모레퍼시픽이 고객들에게 사열식을 하는 모습이다. 제품들은 가만히 서서 고객들의 취향, 필요에 맞게 움직인다. 아모레퍼시픽은 '질감', '기능, '색깔, '용도'에 따라서 각기 사열을 해 고객들을 맞이한다. 이곳에서 사열을 받는 이는 오로지 고객이다. 최상위 라인에서 하위 라인 까지라는 계급장은 없다. 계급은 고객이 정한다. 이곳에서 제품은 고객만을 위해서 존재한다.
지금은 과거보다 화장품을 접하는 정보가 매우 다양하다. 블로그, 인스타, 어플, 유튜브, 틱톡까지 화장법, 언박싱, 성분 등등 온갖 정보가 다 있다. 이처럼 다양한 채널이 결코 전하지 못하는 정보가 있다. '직접 경험'이다.'내가 사용해을 때 어떠냐고?", "그러니까. 내 피부톤에 스킨이 맞냐고? '알레르기 있을 수도 있잖아?' '제품이 나에게 맞는가? 아닌가?'에 대한 거다. 무엇보다 경험은 실체가 돼야 한다. 이미지가 되어서는 안 된다.
화장품이 가진 '개인성'은 전자제품 리뷰와는 확연히 다르다. 가령 DJI드론, 아이폰, 갤럭시에 관한 리뷰를 보면 대략 어떤지 안다. '기계'이기 때문에 프레임, 화소, 렌즈 등 비교가 수월하다. 영상 프레임은 객관적인 비교가 가능하지만 화장품은 불가능하다. 피곤하면 파데가 피부 위에 떠버린다. 건조한 날 입술 각질이 일어나서 립 발색이 엉망이 되기도 한다. 아모레 성수에서는 이미지가 아닌 실체를 전한다 그렇기에 아모레 성수는 설득력이 강하다.예를 들어 아모레 성수에서 수시로 열리는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강의은 아모레 성수에 있는 제품을 그대로 사용하기에 소비자에게 더 깊은 신뢰감을 준다.
화장품을 사용하는 3단계는 세안, 기초, 색조다. 아모레 성수는 제품을 체험하는 동선도 이 단계에 맞췄다.
세안'용 제품을 사용할 수 있게 설계한 클렌징 룸은 세면장 그 자체다. 세안 제품은 크림, 오일 타입이 모두 있다. 각질 제거 제품도 있다. 세안 후 얼굴을 닦기 위한 수건도 있다. 아모레 성수에서 세안을 하는 경우 화장이 모두 지워진다. 만약 아모레 성수를 이용한다면? 화장을 새로 할 각오를 해야 한다. 그렇다면? 세수도 하지 말고 아모레 성수에 가기를 권한다. 친구들과 온다면 전부 쌩얼로 와도 괜찮다. 세안부터 메이크업까지 모두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클렌징 룸을 지나면 뷰티 라이브러리다. 무수히 많은 제품이 펼쳐진 제품들을 보며 평소 자신의 타입에 맞는 제품을 골라서 사용해 볼 수 있다. 눈치 그런 거 없다. 평소에 개인적으로 궁금하던 모든 제품들을 이곳에서 모두 사용해볼 수 있다. 온라인이 주지 못하는 경험. 검색으로 찾아야 하는 불편함이 이곳에는 없다. 또한 아모레 성수에서는 평소에 자기가 생각해본 조합들을 테스트해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설화수 윤조에센스+아모레퍼시픽 CC쿠션+헤라 립스틱]등. 혹은 평소에 자신이 하고 싶었던 화장법을 이곳에서 해볼 수도 있다. 제품은 가만히 있지만 공간 디테일은 개개인이 채운다. 만약 화장까지 했다면? 오설록에서 가서 사진을 찍으면 된다.
이미 검증된 요식업 브랜드인 오설록은 아모레 성수 공간 안에서 독자적인 힘을 선보인다. 아모레 성수 2층과 루프탑을 모두 사용하는 오설록은 루프탑 철재 의자까지 말차 색을 맞출 만큼 디테일을 선보인다.
사실 루프탑이라고 해도 화려하지 않다. 그저 옥상에 책상, 의자, 화분을 가져다 놓은 게 전부다. 밋밋해 보일지 모르지만, 성수동이기에 허락되는 느긋함이다. 멋짐보다는 정감이 있다고 해야 할까? 오설록 제품을 사면 딤섬 통 같은 캐리어에 음료를 담아준다. 이게 포인트다. 이 캐리어를 통해 인스타 그래머 블한 연출이 가능하다. 2층 오설록 매장은 블루보틀 매장과도 느낌이 비슷해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면서 놀기 너무나도 좋다. 개인적으로 블루보틀은 오설록 성수처럼 만들었어야 한다
아모레 성수 안에서는 설화수를 좋아하는 나, 헤라 립을 쓰는 나, 이니스프리 노 세범을 애용하는 나. 아모레 성수에서는 내 안에 흩어져있던 아모레퍼시픽 취향이 자연스럽게 하나가 된다. 그 안에서는 나 자신의 멀티 페르소나. 멀티 테이스트(취향)를 제안하는 아모레퍼시픽을 만난다. 아모레 성수 안에서는 ‘헤라’를 좋아하는 1명이 아니라 적어도 3000만큼 다양한 취향의 우주가 탄생한다. 아모레 성수는 30개 브랜드, 3000여 가지 제품을 비치했다고 한다. 아모레 성수 안에서 사용해 보고 싶은 제품이 있다면? 주저 없이 바구니에 담은 후 소파에 앉아 테스트하면 된다. 어느 누구의 간섭 없이 화장하는 즐거움을 누리는 곳. 이곳이 아모레 성수다.
이제 사람들은 취향, 스타일에 맞게 화장품을 바른다. 한 가지 브랜드만 선택하지 않는다. “베네핏 틴트는 꼭 있었으면 좋겠어. 그렇지만 베네핏만큼의 성능을 가진 제품도 좋아!” 사람들은 이렇게 산다.'베네핏 저렴이'로 한번 검색해보라.
건담을 좋아하는 나, 조던 1과 11, YEEZY를 좋아하는 나, 립스틱만 좋아하는 나, 운동을 좋아하는 나(모두 나 자신의 이야기다.)같이 화장품도 취향과 생활방식에 따라서 수많은 나로 나뉜다. 지금까지 많은 화장품 회사들은 이걸 나눠서 포지셔닝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포지셔닝은 무의미하다. 아디다스 트레이닝에 하이패션 브랜드 스니커즈는 신는 일은 이제 기본이다. 스트리트 패션과 하이패션 경계가 무너진 것처럼 이제 사람들도 취향에 맞게 화장품 제품을 선택한다. 이제 사람들은 스스로 취향을 스스로 묶고 엮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