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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험을전하는남자 Oct 30. 2019

이솝 나카메구로는 어떻게 도쿄를 공간에 담았나?

이솝은 언제나 도시를 매장 속에 담는다.

브랜드와 도시 미학을 동시를 표현하는 작업은 확고한 브랜드 공간학이 있어야 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브랜드가 추구하는 공간을 제대로 만들려면 파트너를 잘 골라야 한다. 이솝은 이 부분에서 매우 탁월하다. 자기 자신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솝이 추구하는 철학은 매장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솝 나카메구로 매장은 일상을 채우는 아름다움을 전한다. 하루를 이끄는 햇빛과 그림자는 사시사철 순환하며 유행을 타지 않는다. 순환하는 빛과 시간이 만들어내는 공간이 사람들에게 시대변화와는 무관한 한결함을 전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공간의 맥락은 한결같은 피부를 원하는 니즈. 그 니즈를 충족시키는 제품을 만들고자 하는 이솝의 의지를 사람들에게 무의식적으로 전한다. 이런 면에서 이솝은 브랜드 공간에 대한 확고한 철학을 가졌다. 이솝도 이를 의식해 자신들이 진출하는 도시에  그 도시만이 가진 미감을 넣기 위해 한결같이 노력한다. 이는 화장품을 제품으로만 보지 않고 삶의 연장선이라고 보는 브랜드 철학이 있기에 가능하다.



https://youtu.be/5 u55 h5 kjYMc


도쿄:중심이자 변방


교토는 '일본문화의 수도'라는 말로 설명이 가능하다. 하지만 도쿄는 다르다. 도쿄는 중심이면서도 늘 변방이었다. 에도 시대에는 수도로서 일본 권력의 핵심이었다. 그러나 일본 역사 속 핵심인 일왕과 귀족 문화의 수도는 언제나 교토였다. 에도라는 황폐한 땅에서 시작한 도쿄는 활기찬 신생 도시이자, 새로운 권력의 중심이었다. 동시에 교토를 정점으로 하는 문화적 권력에서는 변방이었다. 권력에서는 대단할지 몰라도 문화에서는 무시받기 일수였다.


도쿄가 에도이던 시절, 에도를 비롯한 간토에서 만든 물건은 질 낮은 물건이라고 여기며 ‘쿠다라 나이 모노’라며 천대받았다. 반면에 오사카와 교토를 중심으로 한 간사이 지방에서 만든 물건은 ‘쿠다리 모노下りもの’라 하며 귀한 물건으로 여겼다. 지금도 ’ 하찮은 것’을 가리켜 ‘쿠다라 나이 모노 くだらないもの’라고 말한다. 이 단어 안에는 일본인들이 도쿄와 교토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도쿄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마루노우치. 흥미로운 건 이곳을 채우는 모든 것은 전부 서양의 것이다. 일본 고유의 것은 없다.

메이지 유신 이후 도쿄는 아시아를 대표하는 도시로 급부상했다. 하지만 도쿄는 언제나 런던, 뉴욕, 파리를 향했다. 도쿄는 언제나 이들 도시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적인 도시가 되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마루노우치 빌딩가에서 맨해튼 일부를 느낄 수 있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1970년대 레이 가와쿠보를 필두로 한 일본 패션은 유럽 문화 중심지인 파리에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80년대 거품 경제를 지나며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급 브랜드를 만드는 도시에 런던, 뉴욕, 파리 그리고 도쿄도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들 도시 중 도쿄는 인구가 가장 많은 큰 도시가 되었고, 도쿄는 그토록 원하던 ‘메트로폴리탄’이라는 지위를 획득했다.  경제와 금융 분야에서도 뉴욕과 런던에 밀리지 않았다. 아시아에서는 홍콩을 제외하고는 적수가 없을 정도였다.

도쿄 풍경은 멋있지만 그 안에는 언제나 속이 비어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외피는 화려하지만 방황하는 사람처럼.

언제나 서양의 도시를 바라보는 도쿄. 하지만 도쿄는 아시아를 뛰어넘지 못했다. 그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결코 유럽이 될 수 없었다. 그들은 그들 스스로가 '새로움'을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더욱 서구를 모방했지만 그들처럼 될 수 없었다. 과거를 사과하지 않았고 감추기에 바빴다. 겉으로는 부유했다. 하나 정신은 성숙하지 못했기에 언제나 변방일 수밖에 없었다. 1990년대 IT기술혁명을 따라가지 못한 도쿄는 점차 중심 궤도에서 어긋나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 상하이, 베이징, 홍콩, 서울, 싱가포르 등 다른 아시아 국가들이 치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특히 IMF로 경제위기까지 몰렸던 한국의 부활은 고무적이었다.


점차 도쿄는 그들이 수십 년간 차지했던 아시아 최고 도시 자리를 조금씩 내주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쿄는 예전 지위로 돌아가기 부단히 노력했다. 그러나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도쿄는 이마저도 포기하게 쉽지 않음을 깨닫고 있는 모양새다. 변방에서 중심으로 들어가기 위해 노력했던 도쿄는 정작 중심이 되고 나서 맞이한 새로운 문제의 해답을 지금도 스스로 찾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과거 향수를 잊지 못하고 있다. 90년대보다 더 빨라진 기술발전에 도쿄는 버거워한다. KDDI가 삼성의 5G 장비를 구입한 결정은 지금 도쿄가 처한 현실을 적나라게 보여준다. 도쿄올림픽을 중심으로 다시 도약하고자 하지만 생각처럼 그 소망은 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초조함과 불안함을 애써 웃어 보이는 모양새다.


왜 나카메구로인가?

이솝 나카메구로 매장 디자인을 담당한 디자이너 오가타 신이치로는 이러한 도쿄의 모습을 이솝 매장에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 오히려 도쿄 안에서 부단히 살아갔던 도쿄 사람들의 삶을 매장 안에 표현하고자 했다. 평범하지만 묵묵히 도쿄를 지탱한 사람들. 그들이 있었기에 도쿄가 성장했음을 전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선택한 매장 위치가 메구로 강이 잔잔히 흐르는 나카메구로다. 


예부터 사람들은 바다와 강에 모여서 살았다. 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사람이 모여들기에,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오고 가는 소통의 장이 된다. 그렇게 우물가를 중심으로 마을이 생긴다. 과거 나카메구로에는 풍부한 지하수와 우물이 있었다. 사람들은 메구로 강을 중심으로 삼삼오오 모였다. 이 지역은 풍부한 지하수 덕분에 농업으로 번성했다. 나가야. 나가야는 약 10~40m² 규모의 판자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붙어 있는 에도 시대의 전통 주택 양식이다. 그 당시 나카메구로는 큰 길가를 기준으로 좌우에 나가야 양식의 집이 늘어서 있었다. 길 한복판에 우물이 있었다. 사람들은 우물가에서 빨래와 설거지를 했으며 우물가 주변에서는 아이들이 놀기도 했다. 오랜 시간이 지난 나카메구로에 더 이상 우물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나카메구로는 인구 80만 명이 넘는 세타가야구와 도쿄 도심을 연결하는 교통 요지가 되었다. 또한 나카메구로역에서 도보로 5분이면 다이칸야마, 에비스로도 갈 수 있다. 우물이 없는 나카메구로는 여전히 사람들이 모여든다.

이솝 나카메구로점에서 다이칸야마까지는 5분 거리 내외.

마을에는 각자마다의 부엌, 가구를 비롯한 삶이 있다. 자연스럽게 문화도 탄생한다. 오가타 신이치로는 이를 이솝 나카메구로를 구성하는 요소로 사용했다. 그래서 이솝 나카메구로점은 이 같은 우물 같은 사람이 모이는 중심점 같은 존재하는 가게가 되기를 희망한다. 근처에 같은 맥락을 지닌 스타벅스 리저브 로스터리 도쿄, 나카메구로 츠타야, 다이칸야마 츠타야 티 사이트가 있는 건 우연이 아니다.


나카메구로점만의 분위기.

이솝 나카메구로는 세계적이면서 트렌디한 '메트로폴리탄 도쿄' 이미지가 아닌 '일상의 도쿄'를 해석하려고 노력했다. 이솝 나카메구로점의 분위기는 당신이 누군가에게 초대받아 누군가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느낌을 담았다. 예로부터 이어온 도쿄의 삶. 도쿄에 살았던 누군가의 집으로 편안하면서도 어딘가 그리운 느낌을 만들고자 했다. 이에 따라 매장 안에 있는 책, 조명, 의자, 정원 모두 따뜻함에 초점을 둔다.


이솝 나카메구로 매장에 사용된 재료.

10평형의 매장 인테리어는 쇼와시대 초기 상업 및 산업 중심지에서 주거지역으로 발전한 나카메구로 지역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 1950년대 가정을 연상시키는 친숙한 가구는 콘크리트 벽과 천장, 금속 싱크대와 찬장, 야자나무와 바와 균형을 이루고 있다.

    

매장에 들어서면 큰 유리창이 보인다. 유리창을 통해 매장 안뜰에 자리한 정원을 볼 수 있다. 유리창 너머 보이는 정원은 쓰보니아같은 '작은 정원'보다는 서양식 정원에 좀 더 가깝다. 매장에 온 사람들은 유리창 앞에 놓인 원탁 테이블 앞에 놓인 의자에 앉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낮은 조도와 아늑한 조명은 방문객들이 '누군가 집에 방문한 평온함'을 더 느낄 수 있도록 돕는다.

교토와는 따뜻함이 돋보이는 이솝 나카메구로.

매장에 들어서면 큰 유리창이 보인다. 유리창을 통해 매장 안뜰에 자리한 정원을 볼 수 있다. 유리창 너머 보이는 정원은 쓰보니아같은 '작은 정원'보다는 서양식 정원에 좀 더 가깝다. 매장에 온 사람들은 유리창 앞에 놓인 원탁 테이블 앞에 놓인 의자에 앉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낮은 조도와 아늑한 조명은 방문객들이 '누군가 집에 방문한 평온함'을 더 느낄 수 있도록 돕는다.

완전히 분리된 피부관리실은 마치야를 통합한 느낌이다.

*이솝 나카메구로점은 이솝 도쿄 매장 중 유일하게 피부관리실이 있다. 이솝은 이곳도 편안한 방같이 꾸몄다. 마치 가게와 집이 공존하는 마치야를 하나로 합쳤다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마치야 방식을 적용한 블루보틀 교토와는 또 다른 아늑함이 있다.(마치야:상점과 주택이 같이 붙어있는 일본 전통건물양식)

매장에 방문한 사람들은 타일로 마무리한 작은 구리 싱크대에서 이솝 제품을 을 테스트해볼 수 있다. 싱크대 위에는 목재 진열장이 있다. 차갑고 건조한 콘크리트병은  이솝 제품을 돋보이게 한다. 음료 트롤리, 찬장 및 식당과 같은 다른 빈티지 가구들도 사람들이 이곳에 초대된듯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티크나무, 직조한 와시 페이퍼 라인으로 제작한 디스플레이함은 공간을 차분하게 나눈다.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시선이 들어간 공간.

빛에 반사되어 생긴 어두운 그림자, 아늑한 조명을 좋아하는 일본인들. 이곳을 디자인한 오가타 신이치로는 다니자키 준이치로가 ‘그림자에 대해서’에서 묘사한 미감을  이곳에서 구체적인 공간으로 구현한다. 다니 자치 준이치로는 '그림자에 대해서'에서 그림자 속 어두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우리들은 그 반대로 다도나 예식의 경우가 아니면 상이나 국그릇 이외에는 거의 도기만 쓰고, 칠기라면 촌스럽고 우아한 맛이 없는 물건이 되어 버렸다. 그것은 한편으로 채광이나 조명 설비가 가져다주는 '밝음'탓은 아닐까? 사실, '어둠'을 조건에 넣지 않으면 칠기의 아름다움은 생각할 수 없다고 해도 좋다. 오늘날은 하얀 칠기도 만들어지는 것 같지만, 예로부터 저 칠기의 겉은 검정이나 갈색이나 빨강으로, 그것은 여러 겹의 '어두움' 이 퇴적한 색깔이고, 주위를 둘러싼 암흑 속에서 필연적으로 생겨나는 것처럼 생각된다. 화려한 마키에 따위를 그려 넣고 번쩍번쩍 빛나는 왁스를 바른 작은 상자 나 책상이나 선반을 보면, 너무 현란하여 차분하지 않고 속악하게 조차 생각되는 경우가 있다. 만약 그런 도구들을 둘러싼 공백을 새까만 어둠으로 빈틈없이 칠 질 하고, 태양이나 전등의 광선 대신에 등불 하나나 촛불로 밝게 해 주면, 문득 그 현란하던 것이 바닥 깊숙이 가라앉아, 차분하고 무게 나가는 물건이 될 것이다."


빛이 사물에 부딪히며 만들어낸 그림자. 그림자를 통해서 드러나는 미세한 여러 단면들은 일본인들이 유독 좋아하는 아름다움이다. 오가타 신이치로는 이를 통해 생활양식에서 결코 변치 않는 아름다움에 집중한다.

사실 이솝 나카메구로 매장은 과거에도 몇 번 방문했었다. 그렇지만 그 당시에는 이 공간이 담긴 의미를 보아도 알지도 못했다. 나 자신이 이 지역과 도쿄역사에 대해서 많이 몰랐기 때문이다. 고백하건데 지금도 많이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처음 도쿄에 갔을 때보다는 조금은 더 안다.


조금씩 조금씩 무엇이라도 나 자신을 채워간다. 작은 것들이 쌓여 어느 날 뒤돌아 보면 크게 되어있다. 이솝의 작은 병에서 본건 단순히 작은 병이 아니었다. 조금씩 쌓이고 있는 나만의 내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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