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한 빌라와 포개질 것처럼 가까워서 해가 드는 일이 드문 내 방 안, 창문은 생활하다가 이따금씩 마주치는 액자 정도의 역할이다. 그림은 언제나 이웃 빌라의 벽돌. 액자 속 물감이 번져 다른 수채화가 되면 비 내리는 날이고, 처음 만나는 그림인 양 내 모가지가 빼꼼히 창문 밖으로 나오면 눈 내리는 날인 거다.
“저희 집은 해가 안 들어서 곧바로 시들 걸요?”
그럼에도 키워보라는 지인의 권유로 하는 수 없이 꽃 한 송이를 받아 오고야 말았다. 흰 색깔 무결점 튤립. 방 안에 놔두는 건 도저히 죄 같아서 빈 페트병에다 꽂아 창문 바로 바깥에 달린 에어컨 실외기 위에다 올려놨다. 두 빌라 사이의 비좁은 거기에라도 해가 들기를 바라면서. 그리고 오후 내내 액자 속 그림을 계속 내다본다. 해가 들지 않는 이 방의 주인인 나는, 튤립을 창문 밖으로 내몬 것 같다는 죄책감에, 그림의 제목을 <꽃>이라고 지어줬다.
*2019년 서울 북가좌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