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지않아 꽃필 그날
아버지는 철도 공무원이셨다.
실제적인 측면으로 보자면 내 삶에도 진즉 기회들은 있었던 것 같다. 사실상 낙하산으로 코레일 관련 자외사에 들어갔었고, 아버지의 플랜으로는 나를 철도 공사 본사 쪽으로 돌리는 것이 목적이었다.
약 5개월 뒤.
나는 퇴직서와 함께 유니폼을 반납한 후 아버지에게 통보했다. 그리고 집은 발칵 뒤집혔다. 죽일 듯한 기세로 몰아붙이는 아버지를 피해 약 일주일간 바깥을 배회하며 맴돌았다. 이렇게 극단적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렇게 하지 않으면 그만둘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후 내가 원했던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했고,
그에 알맞은 직장에 취직하여 약 10년을 넘게 일했다. 중간에 두 번 이직하기도 했다. 물론 같은 계열이었고 경력에는 무관했다. 그러던 어느 날 번아웃이 찾아왔고, 그렇게 적잖게 일했던 사회생활을 정리했다. 그리고 현재는 편의점 알바와 자동차 배달 부업일을 하고 있다.
편의점은 평일 기준 이틀 일한다. 하루 6시간씩 총 12시간. 배달 부업은 출퇴근이 따로 없다. 다만 가능하면 편의점 알밧 날을 제외하고 점심 피크 한 타임, 저녁 피크 한 타임, 그리고 잠시 집에 돌아와 저녁 식사 후 야간 한 타임. 이렇게 세 타임 나눠서 일한다. 쉬는 날은 따로 정하지는 않는다. 그냥 느낌 가는 대로 하루 정도 쉰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일하는 편의점 점주님이 점포를 두 개 운영 중이시고, 시간 조정이 유연한 나에게 대타 근무를 많이 맡기는 편이다. 따라서 매달 본래 월급의 1.5배 정도를 더 가져가기 때문에 생활비 측면에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전 편에 이야기했지만, 이렇게 불투명해 보이는 흐릿한 삶에서 벗어나 보려 이것저것 많은 것들을 시도했었다. 그러나 어떤 연유인지 대부분 빗나갔고, 그렇게 시간은 흘러 벌써 25년의 막바지에 이르렀다. 여전히 무언가 선명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후회 하지도, 후회할 것도 없다.
껄이라는 후회만큼 바보 같은 생각은 없어 보인다. 이미 그랬고, 거기에는 책임이 따르며, 책임을 지면 그만이다. 극단적으로는 여기서 삶이 끝난다 해도 괜찮다. 제시된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거나 미달되어도 그럭저럭 견딜만하다. 적어도 내가 살고 있기 때문에.
지나온 시간들과,
선택했던 모든 과정들을 통해
나는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다.
그러나 보이는 것들로만
섣불리 판단할 수 없는 것은,
우리는 그간 그 속에서 무엇이 함께 자라나고 있었는지 끄집어 내볼 수 없기 때문은 아닐까.
바라기는.
그것이 더 자라나,
머지않아 꽃필 그날을 잠잠히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