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엇인가를 이루어 내기 위해 나름의 최선을 다하며 살아간다. 우주가 돕는다고 했을까. 간절한 바람은 이룸으로 이어져 때로는 큰 성취감을 맛보기도 한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그 바람이 단순히 이룸으로 이어질 수 있느냐의 문제는 아닌 듯하다. 그보다 더한 사안은 그 이룸이 채움으로 이어질 수 있느냐의 문제였다. 이룸만 이루면 되는 줄 알았는데 거기에는 늘 채움의 부재가 있었다.
보통 우리는 이룸을 통해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반대로 이룸 없음과 동시에 제외되기도 한다. 아니. 스스로가 먼저 자신을 제외시킨다. 이러한 조건 속에 우리는 무언의 압박감, 긴장감과 같은 감정을 안고 산다. 따라서 이룬다 한들 그 안에서 알 수 없는 불안감과 공허함을 매번 느끼는 것이다. 거기에는 내가 아닌 성과만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반려동물을 키우거나 부모에게로 달려가나 보다. 그들을 껴안고 있기만 해도, 부모가 차려준 따뜻한 밥상 한 차림만으로도 우리는 조건에서 벗어나 잠시동안 쉼을 얻는다. 생각해 보면 별 것 아닌 지극히 일상적인 것들인데 말이다. 어쩌면 우리는 큰 이룸 앞에서보다, 이렇게 사소해 보이는 작은 것들로부터 더 많은 채워짐을 충족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채움은 단순히 이룸에서 오지 않았다.
우리는 어쩌면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았을지 모른다.
다만, 우리는 그저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여지길 원했던 것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