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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미가 Mar 16. 2019

안녕, 작은 친구

여행지에서 만나는 동물들

모스크에서는 시시때때로 영롱한 종소리가 들려왔다. 일상을 살아가던 인간들이 신의 은혜로움을 잊지 말라고, 당연함과 아무렇지 않음에 잠식되지 말라고 자꾸만 일깨워주는 소리 같았다. 터키 사람들은 무엇을 하고 있든, 어디에 있든  종소리에 맞춰 모스크가 있는 방향으로 절을 올렸다. 터키를 여행하던 때, 나는 그 모습이 좋았다. 이슬람교라는 낯선 종교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기도가 끝난 뒤, 모스크 주변을 돌며 고양이 밥을 챙겨 주던 사람들의 모습도 기억에 남는다. 어디선가 수십 마리의 고양이들이 모스크 앞에 나타나 기지개를 켜며 잠을 자거나 기다렸다는 듯이 사료를 받아먹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도 일상적이라 내겐 신선한 충격이었다. 시간에 맞춰 사람들은 신께 기도를 올리고, 고양이는 밥을 먹고. 이 조화로움의 정체는 무엇인가. 

실제로 터키에서는 고양이가 악귀나 액운을 쫓는 영험한 동물로 여겨진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호텔, 식당, 가게 등 어디서나 고양이가 당당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밥을 먹고 있으면 고양이가 무릎 위에 올라와 내 생선을 노렸다. 가게에 진열된 예쁜 그릇에는 도도한 고양이가 또아리를 틀고 낮잠을 자고 있었다.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잘 알고 있는 겐지 고양이들은 낯선 사람의 손길을 애써 피하지 않았다.



생명 대 생명으로서의 예의 

사람이 동물을 대하는 자세를 보면 그 나라의 문화와 정신에 대해 어렴풋이 알게 된다. 뜨거운 방콕, 길거리 한가운데서 바로 옆에 사람이 지나가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늘어져 있던 커다란 개들을 보며 더운 나라 특유의 느긋함과 게으름에 웃음이 났다. 인도네시아, 미얀마, 인도 등의 아시아 국가들에서는 원숭이를 신성하게 모시는 사원을 만날 수 있었는데, 당당하게 인간을 조롱하는 영악한 원숭이를 만날 때면 화가 나다가도 촉촉한 눈빛으로 하늘을 바라보는 모습에는 뭔지 모를 뭉클함도 느꼈다. 

인간만이 사는 세상이 아니라는 걸 여행하면서 더욱 절실히 배우게 된 셈이다. 한국의 작은 도시에서만 성장한 나는, 사실 마당에 묶어 키우던 똥개 외에는 가까이 동물을 접해본 일이 없었다. 동물원에 가서 창살을 사이에 두고 만나는 존재가 아닌 이상, 우리가 사는 일상의 공간에서 동물은 늘 배제되어 있었다. 비둘기는 해충이 바글거리고, 쥐는 박멸해야 할 대상이며, 길고양이는 불길하고 성가신 존재에 불과했다. 시골에서도 크게 사정은 다르지 않다. 밭을 망쳐놓는 고라니, 안전에 위협이 되는 야생 멧돼지, 닭을 채어가는 황조롱이. 왜 우리나라에서 인간과 동물들은 이토록 적대적이고 경쟁적인 관계를 버리지 못하는 걸까. 어차피 같은 지구를 나눠 쓰는 생명체인건 마찬가진데 말이다. 최근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인구가 늘고 있다고 해도 이런 상호의존적인 관계 외에 인간과 동물이 주체적으로 어우러져 사는 세상은 요원한 걸까. 



때로인간보다 더 멋있는 동물도 있다

딱 한 번, 우리나라에서 아주 멋진 동물 친구를 만난 적 있다. 동물을 보고 멋있다고 생각한 적은 처음이었다. 이 친구의 이름은 정돌이. 지리산에 있는 ‘정돌이네 민박’에 사는 진돗개다. 친구들과 지리산 둘레길을 걸으러 내려갔다가 우연히 묵게 됐는데, 저녁으로 먹으려고 사간 족발이 너무 맛이 없어서 정돌이에게 몇 점 던져줬다. 주인아주머니 말로는 ‘먹이를 주면 길 안내를 해줄 것’이라고 했지만 솔직히 진지하게 듣진 않았다. 그런데 그 말은 사실이었다. 다음날 아침, 길을 나서며 진담 반 농담 반으로 ‘정돌아. 같이 가자’고 부르긴 했지만 진짜로 따라나설 줄은. 아니, 따라나서는 수준이 아니라 정돌이는 내내 앞장서서 성큼성큼 걸었고 우리가 개 뒤꽁무니만 좇는 형국이었다. 한참 앞서 가다 우리가 뒤처지면 잠시 서서 기다려주기도 하고, 멀리서 무슨 수상한 소리가 나면 빛의 속도로 달려 나가 한참을 부스럭대다 돌아왔다. 행인을 위해 멧돼지도 잡는다는 주인아주머니 말씀이 진짜였던 모양이다. 실제로 정돌이 몸에는 상처가 여럿 있었는데, 나중에는 그 모습마저도 야성적이고 강인해 보였다. 


4~5시간에 달하는 트레킹 내내 믿음직스럽게 이어진 정돌이의 에스코트는 우리에게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정말 신기한 건 ‘일하는 중엔 먹지 않는다’는 철칙이라도 있는지 쉬는 동안 소시지나 간식거리를 던져줘도 입에도 안 대던 프로 같은 모습. 택시를 타고 떠날 때까지 계속 우리 곁을 맴돌던 믿음직한 진돗개의 의리라니!

나중에 서울 올라와서 민박집에 전화해 물어봤더니 정돌이는 무사히 16km를 달려 집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둘레길 길잡이로서의 역할에 자긍심을 갖고 있는 걸까. 이런 동물이라면 기꺼이 존경과 찬사를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됐다. 어찌 한낱 짐승이라 무시하고 얕볼 수가 있겠느냐 이 말이다. 

세상엔 멋진 인간들의 수만큼이나 매력적이고 존경스러운 동물들이 함께 살고 있다는 걸 반드시 기억할 필요가 있다. 어떤 악기보다도 아름다운 소리로 음악을 들려주는 이름 모를 새들, 도시의 중요한 일원인 각양각색의 아름다운 고양이들, 인간을 인간보다 더 사랑하는 개들. 이들을 보지 못한다면, 당신은 이 세상의 아주 일부밖에 모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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