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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미가 Mar 09. 2019

우리는 아름다움을 훔쳐보았다

가난한 나라를 대하는 여행자의 자세



미얀마를 여행한 적이 있다. 그곳에 가게 된 이유는 기억나지 않는다. 신비로운 바간의 사원 사진을 보고 반했던 것 같기도 하고, 안 가본 동남아 국가 중에 내키는 대로 정했던 것 같기도 하다. 

우리 부부는 동남아를 좋아했다. 태국, 라오스에서의 신혼여행을 시작으로 수많은 동남아시아 국가를 여행했다. 매년 두세 번은 동남아로 떠날 정도였다. 유럽보다 편안하고, 중국이나 일본보다는 더 이국적이어서 좋았다. 바쁜 생활 속에 2주 정도의 휴가가 최대인 상황에서 거리도 적당했다. 








가난한 나라를 대하는 자세

미얀마는 수많은 동남아 나라들 가운데 자유여행 난이도가 꽤 높은 곳임에 분명했다. 내가 여행할 때는 이제 막 나라가 개방되기 시작해 자본이 들어오던 때였다. 여행 인구는 늘어나는 데 반해 인프라는 형편없었다. 금액 대비 호텔 수준도 열악했고, 서비스도 균일하지 않았다. 소박한 이들도 있고 영악한 이들도 있었다. 무엇보다 미얀마 문자! 낙서나 그림 같아 보일 뿐인 낯선 모양은 그렇다 치고, 왜 숫자까지 미얀마어로 써놓는 건데. 그래서 외국인인 우리는 버스를 전혀 이용하지 못했다. 

버스가 안 다니는 바간은 차라리 편했다. 비록 불편한 자리나마 소가 끄는 수레를 타고 하루 종일 다니는 건 신선하기라도 하니까. 당연히 에어컨을 기대해선 안 될 일이다. ‘wifi’라 쓰인 곳이라고 해서 와이파이가 될 거라는 기대도 일찌감치 접어야 했다. 전날 비라도 오는 날엔 케이블도 전기도 끊기기 일쑤였으니까. 





정령 신앙의 성지라고 하는 뽀빠 산에 갈 때 택시를 선택한 이유는 그래서였다. 일주일 훨씬 넘게 열악함을 즐기다보니 좀 지친 거지. 동남아에서 몇 만 원의 택시비를 쓰기란 손 떨리는 일이었지만 막상 타고 보니 시원한 에어컨 바람에, 어떻게 찾아갈지 고민할 필요도 없으니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미얀마는 쾌적함이 오래 통하는 나라가 아니었다. 뽀빠 산 꼭대기에 있는  성스러운 사원에 가기 위해서는 무려 777개에 달하는 계단을 올라야 했다. 그것도 맨발로. 이 또한 당연한 얘기지만 계단은 몹시도 더러웠다. 내가 먼지와 흙 정도로 더럽다고 얘기하는 사람이 아니다. 원숭이 배설물이 뒤섞여 최절정의 불쾌함을 제공하는 농도. 아, 그 끈적함이라니.  

더운 날씨에, 다소 기분이 더러워진 채로 우리는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비싼 택시비 줘가며 여기까지 왔는데 어쩌랴 싶은 체념 반, 그럼에도 뭔가 좋은 것을 발견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반.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다리는 무거워졌고, 곳곳의 원숭이들은 이상한 소리를 내며 우리를 위협했다. 

비수기였던 탓에 관광객은 많지 않았는데, 바나나 한 바구니를 어깨에 지고 오르는 미얀마 소년이 눈에 띄었다. 마른 근육을 그대로 드러낸 상반신에 반바지 하나만 입은 평범한 모습. 한눈에 봐도 엄청 무거워 보이는 짐이었는데 우리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올라가는 걸 보니 이 아이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사원에 가는 모양이었다. 아마도 주문받은 물량을 배달하는 거겠지. 

“쟤는 저거 배달해주고 얼마를 벌까. 짐 하나 없이 올라가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쟤는 진짜 힘들겠다.”

이런 작은 위안도 해보았다. 그런데 소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오래 계단을 오르다보니 점점 이런저런 감상에 젖게 됐다. 아름다운 소년이었다. 나이는 많아봐야 열대여섯.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가난한’ 나라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어린 나이에 제대로 꿈을 꿔보지도 못하고 고된 노동에 내몰린 걸까. 사람의 가치는 무엇이 정하는 걸까. 저 아이는 저 힘든 삶이 세상의 전부라 믿고 신께 감사하고 있을까. 








비로소 찾은 여행의 이유

복잡한 상념에 마음이 어지러워질 때쯤 저만치 앞서 가던 소년이 작은 나무 벤치에 바구니를 내려놓았다. 잠시 쉬어가기로 한 모양이었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나타난 아름다운 소녀. 반라의 차림에 땀으로 범벅된 소년과 달리 소녀는 꽤 화려한 전통의상을 갖춰 입은 모습이었다. 

그러니까 그곳은 이 젊은 연인이 늘 만나는 밀회 장소인지도 몰랐다. 이제 막 서로의 마음을 알았거나 어쩌면 이미 사귀고 있을지 모를 두 사람. 자신의 몸으로 정직하게 돈을 벌 능력을 갖춘 소년과 그런 소년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아름다운 소녀. 손수건으로 땀을 닦아주며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역광을 받아 두 사람이 앉아 서로를 바라보는 풍경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빛이 났다. 우연히 장면을 훔쳐본 그 순간 왠지 모르게 나는 나 자신이, 그리고 내 생각들이 부끄러워졌다. 

자본주의에 염증을 느낀다면서도, 자존심을 팔아 번 돈으로 여행 와서 알량한 우월감을 느끼는 나. 더워, 힘들어, 계단은 왜 이리 많아, 아무런 의미 없는 불평불만을 일삼는 나. 필요 이상의 음식을 탐욕스럽게 먹고, 두툼히 쌓인 뱃살을 빼겠다며 돈을 들여 운동하는 나. 그게 나였다. 

미얀마의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정직하게 노동으로 돈을 벌고, 소중한 사랑을 나누고, 그러한 삶을 선물하신 신께 감사하며 그들은 그렇게 살아갈 것이었다. 그런 그들을 내가 뭐라고. 쓸데없는 걱정을 내비친 순간 우리는 뒤룩뒤룩 살찐 자본주의의 돼지,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나머지 절반의 계단은 그렇게 조금 멍해진 채로, 조금은 반성하는 마음으로 올랐다. 이윽고 다다른 뽀빠 산 꼭대기. 원숭이 사원. 별것 없다는 것이 의외로 놀라웠다. 그러나 고요한 풍경 속에서 내 마음은 부풀어올랐다. 어디에서 어떻게 태어났든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세상 모든 존재는 각기 다른 이유로 아름답다. 나는 내가 주인공인 세상으로 다시 돌아갈 것이고, 더 아름다워질 것이다. 그런 생각들의 소용돌이 속에서 나는 이 여행의 이유를 제대로 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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