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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혼자가 아니어서 다행이야

by 피터팬


제주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 나는 외로움이란 걸 무시하려 애썼다.
바람은 늘 불었고, 바다는 늘 예뻤지만, 그 고요함은 때때로 잔인했다.
말 한 마디 건넬 사람도, 기대 쉴 어깨도 없었다.
익숙한 모든 것을 떠나온 선택이었지만, 낯선 섬의 침묵은 내 마음속 빈틈을 더 크게 울렸다.


그러던 어느 날, 분리수거장 옆에서 누렇게 타들어가는 눈빛을 마주쳤다.
치즈무늬의 작고 마른 몸, 낯설지만 익숙한 고독함이 느껴졌다.
한참을 바라보다가, 손을 내밀었고, 그 고양이는 별 망설임 없이 내 삶 안으로 들어왔다.
내가 그 아이를 데려온 건지, 그 아이가 나를 골라준 건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그로부터 5개월 뒤, 또 한 번의 만남이 찾아왔다.

집 뒤 산자락을 걷다가 마주친, 풀숲 너머 반짝이던 회색 고등어무늬 고양이.

조심스럽고 경계심 많은 눈빛. 어쩌면 나와 많이 닮은 녀석이었다.

매일 아침 마주하게 되었고, 며칠을 그렇게 지켜보다가

어느 날 문을 열었을 땐 이미 마당에 발을 들이고 있었다.

그때부터 우리는, 넷이 되었다.

나와 아내, 그리고 두마리 고양이.

낯설은 섬살이 속에, 그렇게 작은 가족이 생겼다.


처음엔 그저 함께 지내는 ‘동물’일 줄 알았다.
적당한 거리에서 밥을 주고, 지켜보고, 같이 살아가는 정도일 줄 알았다.
하지만 어느새 나는 그들의 집사가 되어 있었고,
그들은 우리의 하루를 시작하고 끝내는 따뜻한 존재가 되어 있었다.


말 대신 눈빛으로, 침묵 대신 고른 숨소리로.
그 어떤 말보다 깊고, 어떤 위로보다 조용한 존재들이었다.
이 섬살이가 덜 외롭다고 느낀 순간은,
그 애들이 무릎 위에 올라와 잠든 날부터였다.
아무것도 말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그대로 있어줘서 고맙다고 말해주는 듯한 시간들.


이 이야기는, 제주에서 두 발로 걷던 우리가
네 발 친구들과 함께한 계절들의 기록이다.
치즈와 고등어, 따뜻한 두 고양이가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꾸었는지에 대한 고백.
혼자가 아니어서, 참 다행이었다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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