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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우체국

전하지 못한 말 한마디

by 피터팬


바람 한 점 없는 새벽이었다.

창문 없는 방 안에서, 그는 눈을 떴다.


천장에 매달린 낡은 전등 하나.

차가운 공기, 바닥에 내려앉은 먼지.


사람의 온기라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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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가볍고 얇은 편지 한 통이 손에 잡혔다.


누구에게 보내는지,

왜 가지고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저 이 편지를 전해야만 한다는

막연하고도 분명한 확신만이 남아 있었다.


그때였다.

사무 책상 너머에서 등 굽은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손에는 오래된 편지철이 들려 있었다.


“처음 왔군요.”


그는 노인과 눈을 마주쳤다.


“여긴 마음 우체국입니다.

전하지 못한 마음들이 편지가 되어 흘러오는 곳이죠.”


“...저는 누구죠?”


그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노인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당신이 직접 찾아야 합니다.”


노인은 편지철에서 한 통의 봉투를 꺼내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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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정말 미안했어요.”


그 문장을 읽는 순간,

가슴 어딘가 깊은 곳이 툭 하고 울렸다.


아주 오래전의 후회가

이름도 없이 떠오르는 기분이었다.


“주소는 없네요.”


그가 말했다.


노인은 작은 쪽지를 건넸다.

거기엔 단 한 줄이 적혀 있었다.


“가장 오래도록 기다린 곳으로 가세요.”


그 문장을 읽자,

풍경이 조용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우체국도, 탁자도, 노인도

서서히 투명해졌다.


다음 순간,

그는 비 내리는 골목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젖은 전봇대, 녹슨 우편함,

그리고 빛 하나 새어 나오는 오래된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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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봉투를 조심스레 넣었다.


조금 뒤,

현관이 천천히 열렸다.


회색 머리칼을 묶은 중년의 여자가 문밖으로 나왔다.


그녀는 우편함을 열고,

편지를 꺼내 읽었다.


비에 젖은 편지를

두 손으로 소중히 감싸 쥔 채,

오래도록 말이 없었다.


그러다

조용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작은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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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미소는,

오래도록 가슴에 품었던 마음이

잠시 얼굴에 머문 순간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순간,

주인공의 가슴 어딘가가

살며시 떨려왔다


그리고

그가 처음부터 품고 있던 자신의 편지가

따뜻해졌다.


봉투 위에

천천히 글씨가 떠올랐다.


“나에게. 잊지 말아줘.”


손이 떨렸다.

그는 조심스레 봉투를 열었다.


그 안에는 단 한 줄.


“너는 오래도록, 말없이 사랑받고 있었어.”


그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어디선가

자신을 부르던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웠던 이름 하나가

속삭이듯 마음에 내려앉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우체국도, 편지도, 노인도

모두 사라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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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조용한 골목에 홀로 서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조금도

외롭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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