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을 말한 자, 침묵을 지운 자
2017년 6월 20일, 17시 14분 / 서울 외곽, 4번 창고 내부
루카는 통신 단자에 다시 연결된 장비 상태를 확인하며 무전기를 손에 쥐었다.
“핀, 응답해. 이동은 시작됐나?”
하지만 무전기 너머에선 정적만이 들렸다.
그 정적 속에서, 누군가 미세하게 숨을 삼키는 소리가 섞여 있었다.
루카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뒤쪽, 창고 벽 너머 어둠 속.
그곳엔 이미 누군가 들어와 있었다.
“화이트팀...”
루카는 중얼이며 손을 뻗었다.
작은 발광기 하나가 그의 등 뒤에서 켜졌고, 곧 그림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자료, 돌려줘야겠다.”
낮고 냉정한 목소리.
그는 화이트라인 감시조 중 하나였다.
루카는 되묻지 않았다.
대신, USB 한 개를 자신의 주머니에서 꺼내 바닥에 내려놓았다.
“이걸 찾는 거라면... 늦었어. 이미 올라갔고, 저장됐고, 백업도 끝났어.”
“우린, 실패를 그냥 두지 않아.”
그러자 루카는 작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게 바로, 너희가 실패한 이유야.”
그 순간, 외곽 경보등이 깜빡였고 창고의 비인가 출입구가 강제로 열렸다.
한 무리의 인원이 빠르게 진입해 상황을 가로막았다.
민간 감시자들, 혹은 ‘선’과 연결된 제3라인의 개입이었다.
총성이 울리지 않은 것은, 어느 누구도 방아쇠를 먼저 당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루카, 대피해. J-S4 이동 경로 확보됨.”
무전기가 다시 살아났다. 핀의 목소리였다.
루카는 곧장 그 틈을 뚫고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화이트팀 요원들이 추격을 시작했지만, 이미 창고 내부는 데이터 포맷과 동기화 작업으로 혼란스러워지고 있었다.
2017년 6월 20일, 17시 16분 / 강원도 J-S4 민간 레이더부지 인근
핀과 아이는 철문이 잠긴 지하 갱도를 따라 이동 중이었다.
곳곳에 낙진처럼 쌓인 전자부품, 사용되지 않은 관측 장비, 그리고 오래전에 꺼졌던 신호등.
이곳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구역이었다.
아이의 손을 잡고 걷는 동안, 핀은 몇 번이나 무전기를 들었다 놨다.
“루카는 성공했을까...”
아이의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그 사람들... 또 쫓아올까요?”
핀은 잠시 멈춰 섰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하지만 이번엔... 우리만 쫓는 게 아니야.
이제부터는, 진실을 숨기려는 자들도 도망쳐야 해.”
아이의 눈이 잠시 흔들렸다.
하지만 곧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핀은 아이의 손을 꼭 쥐었다.
“끝까지 간다. 여기서 멈출 순 없어.”
지하 통로 끝, 오래된 관제실로 향하는 문 앞에서
핀은 마지막으로 뒤를 돌아봤다.
“여기까지 온 이상, 이 싸움은... 반드시 끝나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