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나무 아래 묻힌 것

오래된 제주 농가의 귤밭 아래 감춰진 가족사

by 피터팬


게스트하우스를 시작한 건 우연이었다.

서울에서 모든 걸 그만두고 내려왔을 때,

당장 뭘 해야겠다는 생각도 없었다.


그러다 문득,

제주시 외곽에 오래된 농가 한 채가 매물로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60년 넘은 돌담집.

귤밭과 우물이 딸려 있다는 게 전부였다.

대부분은 허물어졌지만, 이상하게 손을 대고 싶어졌다.


처음엔 그저 ‘한적한 게스트하우스’가 되면 좋겠다 싶었다.

귤나무는 예전 주인이 죽고 난 뒤로 돌보지 않은 채 몇 년이 지나 있었다.

나는 기계로 밭을 일으켰고,

잡초를 뽑고, 귤나무 아래 묻혀 있던 돌들을 하나하나 걷어냈다.


그렇게 마당에 쌓인 흙더미 아래,

하얗게 깨진 백자 조각이 드러났다.


처음엔 그냥 옛날 그릇이려니 했다.

그런데 그 조각 더미 밑에서,

녹슨 헬멧 하나가 나왔고

조금 더 파자, 반쯤 썩은 군복이 함께 묻혀 있었다.


군번줄도 있었다.

형태는 남아 있었지만 글자가 흐릿하게 닳아 있었다.


그날 밤, 마당의 귤나무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할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 이 마을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여긴... 말을 아껴야 하는 곳이야.”


그때는 그냥 옛날 사람의 미신쯤으로 넘겼다.


하지만 다음날, 동네 이장을 찾아가 군번줄을 보여주었을 때

그 사람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어디서 난 거냐?”

몇 날 며칠, 동네 어르신들 사이에 수군거림이 돌기 시작했다.

어떤 이는 “그 집은 피가 덜 마른 집”이라며 입을 닫았고,

또 어떤 이는, “그 땅 밑엔 사람보다 먼저 묻힌 이름들이 있다”고 했다.


결국, 할머니에게 전화했다.

서울에서 혼자 계시는 할머니는 한참 말이 없더니

천천히, 조용히 말했다.


“니 할애비가 돌아온 날, 몸에 총상이 있었단다.”

“근데 어디서 싸웠는지, 누구랑 있었는지, 끝내 한 마디도 안 했어.”

“밤마다 땀에 절어서 깼고 귤밭에 나가 혼자 오래 서있었지.”


며칠 뒤, 나는 마당을 다시 메웠다.

그 군번줄은 흙 아래 그대로 두었다.

그 귤나무 아래,

누군가의 이름과 기억이 함께 잠들어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 해 겨울,

귤나무엔 단 한 개의 열매도 열리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다.

마당 한가운데,

그 귤나무만 유독 잎이 마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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