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항로로 들어갔다 나온 사람은, 나 하나뿐일 겁니다
1994년 가을,
제주 협재항.
내 이름은 김정우고, 그때 쉰여덟이었다.
어업은 서른몇 년을 했고, 바다에서 산 시간이 육지보다 길었다.
그날도 바다는 참 잔잔했어.
태풍 지난 뒤라 그런가, 물이 고요하고 햇살도 따뜻했지.
근데 이상하게 마음이 가만 안 있더라.
아무 계획도 없었는데, 아침부터 자꾸 옛생각이 났어.
송여코.
어릴 때부터 그 말은 들으면서 컸다.
"거긴 들어가지 마라. 물이 꺾여 돌아온다."
"사람이 늙는다."
"시간이 안 흐른다."
다들 그렇게 말했다.
그 말을 제일 많이 했던 사람은,
내 형 문호였다.
문호 형은 1963년에 바다 나갔다가 안 돌아왔어.
사리 지난 날이었지.
형 배도 못 찾았고, 시신도 없었어.
그날 이후로 그냥 없어진 거다.
마치, 사라진 것처럼.
그리고 그날, 나는
갑자기 송여코로 가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생각이 아니라,
끌려간다는 게 맞겠지.
나도 모르게 방향을 꺾었고,
그 길로 들었다.
물빛이 달랐다.
처음엔 맑았던 바다가
딱 잘린 선을 기점으로 색이 툭 꺼지더라.
맑은 청록색에서,
검푸른색... 아니,
먹물 같다고 해야 하나.
색이 아니라 분위기 자체가 달라.
계기판은 미친 듯이 돌아갔고,
수심이 ‘에러’로 바뀌고,
파도도 멈췄어.
진짜 멈췄어.
물결이 ‘멈춘’ 바다.
믿기지 않겠지만,
그 위에 배가 떠 있었어.
소리가 없어.
바람도 없고,
새도 없고,
엔진 소리도 안 들려.
귀가 아니라,
머리 자체가 조용해진 느낌이야.
그리고 그때,
맞은편 수평선에 배 한 척이 떠 있었지.
낡은 목선이었어.
익숙한 모양.
그걸 보는 순간, 알았어.
그건... 형 배였다.
30년 전, 실종되기 전 그 모습 그대로.
까만 고무잠바, 흰 수건,
그 얼굴, 그 눈빛.
그 사람이
아니, 형이
날 가만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더라고.
근데 말소리가 없었어.
그냥, 머리로 들렸어.
소리 없이 들려오는 느낌.
“네가 이렇게 자랄 줄 알았다.
어릴 땐 몰랐지.
내가 너 어릴 때 한 번 본 적 있다.”
그 순간, 나는 얼어붙었어.
숨도 못 쉬고,
손이 덜덜 떨리는데,
몸은 움직이지를 않더라.
그 뒤로는 잘 기억이 안 나.
정확히 어떻게 다시 나왔는지도 몰라.
정신 차렸을 땐
배는 항구로 돌아오는 길이었고,
주변 풍경이 낯설었어.
항구 모양도,
방파제 구조도,
사람들 얼굴도 다 달라져 있었어.
겨우겨우 전화국까지 걸어가서,
직원한테 내 이름 말했더니,
그쪽에서 오래된 실종자 명단 찾더니 그러더라고.
“1963년 실종 김정우. 아... 여깄네요.
돌아가신 걸로 돼 있어요.”
...그게 나였다.
나는 그 길로 집에도 안 갔어.
그냥 조용히 사라졌지.
내가 진짜 돌아온 건지도 모르겠고,
그때 본 형이 진짜 형이었는지도 모르겠고,
어쩌면 나도...
그 바다에 남은 거 아닐까 싶어.
이 이야기는
지금도 협재 근방 어촌에서
술 한 잔 들어간 어르신들이 가끔 꺼내는 이야기다.
“그 항로는, 사람이 드는 데가 아니우다.”
그 말을 할 때,
그들은 꼭 고개를 돌린다.
북쪽 바다를 등진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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