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귤창고 앞의 허수아비

그 자리에, 내가 서 있었다

by 피터팬


제주 구좌읍, 12월 초


제주로 이주한 지 두 해째,

겨울 귤밭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수확이 끝난 밭에는 노란빛 껍질 몇 조각만 흩어져 있었고,

하루 종일 뒷산에서 바람이 부는 소리 외엔 별다른 소음도 없었다.

나는 원래 서울에서 영상 일을 하다가,

재택으로 전환되면서 아내랑 함께 제주로 내려왔다.

집은 구좌읍 한가운데서 조금 떨어진 단독주택.

주변엔 귤밭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그날도 오후 늦게, 드론 테스트를 하러 귤밭 위로 나갔다가,

아주 낡은 창고 하나를 발견했다.


처음 보는 곳이었다.

동네 한 바퀴 다 돌았다고 생각했는데도,

그 창고는 마치 “원래 거기 있었던 건데 못 본 척 하고 지나친 것처럼”

그렇게 조용히 서 있었다.


입구 앞엔 허수아비가 하나 있었다.


농약 포대로 만든 몸통, 푸석한 밀짚모자,

낡은 장갑이 끼워진 철사 팔.

그런데 귤밭에도 없는 허수아비가,

왜 하필이면 창고 입구를 향해 서 있는지 이상했다.


그날 밤, 나는 드론 촬영 영상을 정리하다가 멈칫했다.

처음엔 아무도 없었던 귤밭에,

영상 후반부에 갑자기 허수아비가 서 있는 장면이 찍혀 있었다.

기억과 다르게 영상 속엔 그게 점점 가까워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편집자라서 아는 감각이었다.

그건 누가 “배경에 뭔가를 은근히 심어놓은 장면” 같은 그런 구도였다.


며칠 뒤, 동네 슈퍼 아주머니와 이야기하다가,

나는 무심코 “귤밭 옆 폐창고를 봤다”고 했다.


아주머니는 망설이다가 이렇게 말했다.


“거기...

예전에 서울에서 사진 찍던 총각 하나,

실종된 적 있었어.

마지막으로 본 게 그 창고 앞이었지.”


그날 이후 나는 매일 창고 앞을 지나며 확인했다.

허수아비는 여전히 거기 있었지만,

매번 위치가 달랐다.


하루는 문 옆, 하루는 창문 옆,

하루는 창고 뒤편,

심지어 하루는 지붕 위에 서 있기도 했다.


비가 오는 날이었다.

나는 우산을 쓰고 멀찍이서 지켜봤다.

그날 허수아비는 고개를 숙인 채 창고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나는 이상한 기분에 휩싸였다.

그날 밤, 창고 앞을 지나가며

나는 장난처럼 이렇게 중얼거렸다.


“너... 누구 기다려?”


그 날 이후였다.

허수아비가 귤창고 앞이 아닌,

우리 집 앞 귤밭에 서 있던 건.


딱히 놀라지도 않았다.

그냥... 웃겼다.

바람이 옮겨놨나, 누가 장난쳤나,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그 허수아비가 입고 있던 작업복이

내 옷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며칠 전 잃어버린 회색 기모 후드.


나는 불안한 마음에 드론 영상을 다시 돌려봤다.

며칠 전 찍은 파일 하나,

거기엔 귤창고 앞에 서 있는 내 모습이 찍혀 있었다.


나는 카메라를 보지 않았고,

멀리 창고를 등지고 있었지만 분명히 나였다.


그 영상은...

내가 찍은 기억이 없다.


나는 그날 이후 귤밭에 나가지 않았다.

허수아비는 다시 창고 앞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언젠가 또, 귤밭 어디쯤에서

“내가 나를 지켜보는 장면”을 마주하게 될까 봐,

나는 그 근처를 쳐다보지 않는다.


그래도 이상하지 않아?

귤밭에 세워진 허수아비는 귤을 지키는 게 아니라,

그 창고를 바라보고 있었단 말이야.

마치...

거기 아직도 누가 있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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