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그림자

그 방은, 원래 없었어.

by 피터팬


서귀포 쪽 비 예보는 나흘째였다.

비행기 티켓은 취소 불가였고, 펜션 예약도 마찬가지였다.

우린 그냥 가기로 했다.

사람 없는 게 목적이었으니까.


렌터카 안.

조수석 창문을 흐르던 물방울이 지그재그로 갈라졌다.

이따금 와이퍼가 턱, 하고 걸렸다.


“근데 이상하게 좋다.”

아내가 말했다.

“뭐가?”

“이 비, 창문, 차 안 습기... 이런 거 다.”

“너 원래 비 오는 거 싫어하잖아.”

“서울에서 오는 비는 그렇지. 여긴 좀... 기분이 묘해.”


나는 웃었다.

서울에서는 우산을 쓰고도 짜증났지만,

여기선 젖는 것도 낭만이었다.

둘만 있다는 게 더 컸다.


펜션은 숲을 반쯤 끌어안은 언덕 위에 있었다.

목조 2층 건물.

초록색 지붕에 작은 현판 하나.


달그림자

숲과 비, 그리고 쉼


주인은 말수가 적은 남자였다.

우리를 보자마자 열쇠를 내밀며 말했다.

“비 많이 오니까, 창문 열지 마세요. 습기 많이 차요.”

“다른 방엔 아무도 없죠?”

“이번 주는 둘뿐입니다.”


우린 그 말에 안심했다.

진짜로 아무도 없는 곳.

우리가 찾던 분위기였다.


방은 따뜻했다.

통유리 밖으론 진한 숲이 있었고,

빗소리는 은근하게 바닥을 울렸다.

에어컨을 켜지 않아도 시원했고,

우린 소파에 앉아 와인 한 병을 땄다.


“작년 여름 기억나?”

“캠핑 갔다가 갑자기 천둥...”

“텐트 무너졌지.”

“근데 여기, 너무 조용해서 조금 무섭다.”

“무서운 거 좋아하면서.”


우린 그렇게 한참을 얘기하다 잠들었다.

TV도 없이, 핸드폰도 꺼두고.


11시 조금 넘어서,

나는 잠결에 천장에서 ‘쿵’ 하는 소리를 들었다.

처음엔 나무가 뒤틀리는 건가 했지만,

곧 또 한 번,

쿵...

쿵... 쿵...

규칙적이지 않았다.

가끔은 뭔가를 질질 끄는 소리도 섞였다.


“위에 뭐 있나 봐.”

아내가 작게 속삭였다.

“2층 비어 있다 그랬잖아.”

“그럼 지금 저 소리는 뭐야?”


우린 조용히 복도 불을 켜고 2층으로 올라갔다.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2층은 우리 방과 같은 구조.

하지만 거실 끝,

사진엔 없던 문이 하나 있었다.


그 문은 아주 천천히 닫히고 있었다.

누군가 방금 나왔다는 듯.

그리고 그 옆 벽엔,

젖은 발자국이 복도 바닥을 따라 나 있었다.

우린 문을 열지 않았다.

그냥 내려왔다.


1층으로 돌아와 문을 잠갔고,

불도 모두 켜두었다.

아내는 소파에 앉아 조용히 무릎을 끌어안았다.

나는 말없이 주방을 정리했다.


“근데...”

아내가 작게 말했다.

“우리, 2층 올라갈 때...”

“응?”

“문... 이미 열려 있었던 거지?”

“...그렇지.”

“근데 그 안에서... 소리 났어. 아주 작게.

누가 ‘쉬...’ 하는 숨소리처럼.”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순간 떠올랐다.

2층에 있던 문,

그 앞쪽 벽에 걸린 액자.


액자 속 사진.

우리가 지금 있는 이 펜션.

그리고 현관 앞에 선 사람.


...우린 그걸 본 적 없는데,

사진 속 남자는 나였다.

옆에는 아내가 서 있었다.

비가 오고 있었고,

배경은 지금 우리가 묵고 있는 방.

근데,

그 사진은 오래된 느낌이었다.


빛바랜 액자.

흘러내린 종이 테두리.

그리고 사진 한가운데,

검은 볼펜으로 쓴 글자 하나.


“다시 들어오지 마세요.”


서울로 돌아온 뒤,

나는 그 펜션 블로그를 다시 열어봤다.

사진 목록이 하나 추가돼 있었다.

제목은 없이,

그저 날짜만 쓰여 있었다.


6월 21일, 23:42


그날 우리가 도착한 날.

우리가 2층 계단 위에 서 있었던 시간.


사진 속엔

누군가 문틈 사이에서 우리를 찍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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