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에 없는 경로
2016년 가을,
한 달 살이처럼 제주에 내려가 있었다.
졸업 앞둔 디자인과 셋이서,
카페 인테리어 촬영도 하고, 브랜딩 과제도 하면서 지냈다.
우리는 애월 쪽 민박집에서 머물렀다.
그 근처엔 사람들이 거의 안 다니는 해안 자전거길이 하나 있었다.
원래 자치단체에서 만든 길인데,
홍보도 안 됐고 관리도 안 됐는지
길 중간중간 풀에 덮여 있었고
이정표는 다 녹슬어 있었다.
“야, 이거 진짜 올레길 같지 않냐?”
“0번 코스 뭐 이런 걸로 하면 꿀잼이겠다.”
우리는 그냥, 장난처럼 시작했다.
진짜로 팻말을 만들고, QR코드도 붙였다.
링크는 우리가 직접 만든 지도 페이지였고,
디자인과 나온 티 좀 나게 예쁘게 만들어뒀다.
그 길은 ‘없는 길’이었다.
지도엔 없고, 안내책자에도 없는 경로.
하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폐도.
사람 발길이 끊긴 곳.
그게 매력이라고 생각했다.
‘제주를 진짜 아는 사람만 아는 길’.
우리는 그렇게 만들었다.
팻말엔 이렇게 적었다.
OLLE 0 / 시작지점 – 폐안내소
QR을 찍고, 당신만의 제주를 시작하세요.
중간중간 목재에 “0-2”, “0-3” 이런 식으로 숫자를 매기고
낡은 나무 의자 옆엔 “쉼터 아님, 되돌아보지 마세요” 같은 문구도 적었다.
다 장난이었다.
그저 놀고 있었던 거다.
그런데, 두 달쯤 지나서
우리 만든 링크에 접속자가 급증했다.
누가 블로그에 소개했더라.
“진짜 제주 올레 마니아들 사이에 도는 코스”라고.
#올레길0번 해시태그도 생기고,
‘비공식 코스라 지도엔 없다’는 말도 퍼졌다.
우린 좀 신났다.
몰래 성공한 프로젝트 같기도 해서.
서울에 돌아가서도 그 얘기 하며 웃었다.
그런데 3월쯤,
우리 메일로 어떤 여자분이 메일을 보냈다.
“혹시 올레길 0번 안내판 만드신 분 맞나요?”
“혹시 다른 구간으로도 확대 중이신가요?”
답장을 하려다 말았는데,
며칠 뒤 다시 메일이 왔다.
“제 동생이 제주에서 실종됐습니다.
마지막 휴대폰 신호가 'OLLE 0 – 쉼터'라고 저장된 위치에서 끊겼습니다.”
거기서 처음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우리가 적은 이름,
그 팻말에 썼던 이름이었다.
나는 다시 제주에 갔다.
이야기를 만든 건 나였고,
내가 지워야 할 것도 같았다.
그 길을 따라갔다.
팻말은 몇 개 그대로 있었고,
어떤 건 새로 칠해져 있었다.
우리가 쓰지 않았던 방식으로.
예를 들어,
우린 ‘0-6’까지만 만들었는데,
그 뒤로 ‘0-7’, ‘0-8’ 이정표가 생겨 있었다.
그건 우리가 만든 게 아니었다.
그리고 ‘0-8’ 지점.
그때도 기억난다.
거긴 작은 소나무숲 길목이었고,
밤에는 정말 아무 소리도 안 나는 곳.
그날,
나무 뒤에 누군가 서 있었다.
움직이지 않고,
등만 보였다.
가까이 가면 안 될 것 같았다.
근데 웃긴 건
그 사람도,
우리 만든 가짜 팻말을 보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조용히 돌아섰다.
다시는 거기 가고 싶지 않았다.
지금도 올레길 0번 검색하면
“비공식 코스”, “지워진 길” 이런 말들이 돈다.
그 길은,
처음엔 없었다.
내가 만들었다.
근데 지금은... 내 거 같지가 않다.
누군가,
그걸 계속 만들고 있다.
실제로 거기서 사람이 사라졌는데도 말이다.
정말이었다.
처음엔 그냥 장난이었다.
근데 지금은...
그 길이 날 기억하고 있는 것 같다.
공식엔 없는 코스였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길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명씩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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