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철, 저승을 걷는 소리
제주 장마는 유난히 길고, 무겁다.
비가 오는 날보다, 비가 오지 않는 날이 더 눅눅하다.
그날도 그랬다.
비는 그쳤지만, 집안 가득 축축한 공기가 내려앉았고
마당의 흙은 여전히 질척였다.
모기장이 있는 문을 닫아놨는데도
눅눅한 장판 위로 찬기운이 은근히 배어들었다.
그렇게 한밤중,
처음으로 그 소리를 들었다.
‘또또또또또...’
발굽이 젖은 땅을 딛는 듯한 소리.
처음엔 멀찍이서 들렸고,
서서히, 집 바로 앞 마당까지 다가왔다.
난 누워서 귀만 쫑긋 세운 채 숨을 죽였다.
이상하게도, 발걸음은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힘없이 질질 끌며 걷는 게 아니라,
분명히 네 다리로 또박또박 딛고 오는 듯한 규칙적인 리듬이었다.
마치 돼지, 혹은... 짐승 같은.
하지만 이상한 건, 그 다음 날이었다.
문을 열고 나가보니
마당 한쪽, 물기 머금은 흙 위에
이상한 발자국이 남아 있었다.
짐승의 것처럼 보였지만,
확실히 말할 수는 없었다.
앞발은 둥글고 짧은데,
뒷발은... 무슨 사람 발처럼 길게 뻗어 있었고
셋으로 갈라진 발가락이 선명히 찍혀 있었다.
딱 세 발.
양쪽 다 합쳐도 여섯 개.
그날 이후,
비가 오는 날보다
비가 오지 않는 날 밤마다,
그 소리가 또 들려왔다.
‘또또또또또...’
젖은 흙 위를,
무언가가 잊지 않고 지나가는 소리.
동네 어르신에게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냈다.
그 말에 노인은 담배를 꺼내 문 채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 조용히 말했다.
“그거, 쇠도깨비 발소리다.”
“...도깨비요?”
“쇠도깨비. 걔는 말도 없고, 사람도 안 보여.
다만 소리만 남기고 지나가.
죽을 사람 앞에서만...
딱 세 발자국 남기고 간다.”
그날 이후, 나는 마당에 나가지 않았다.
비가 오지 않는 밤에는, 특히.
이상하게도 그 해 장마는
끝나지 않을 것처럼 길었다.
그리고, 8월 초.
마당 쪽 창문에서
똑같은 소리가 마지막으로 들려왔을 때,
나는 그날,
아버지를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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