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버려진 구두들의 마을

버려진 것에도 기억이 있고, 그 기억은 누군가의 길이 된다.

by 피터팬

숲속 깊은 곳,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오솔길 끝에

이상한 마을이 하나 숨어 있다.


그곳에는 사람도, 집도 없다.

대신 오랫동안 버려진 구두들이 모여 산다.


57be16d3-3e32-4784-9d87-045eb6ab3ec5.png


낡아 삐걱거리는 구두,

흙먼지가 잔뜩 묻은 운동화,

비에 젖은 장화,

그리고 한쪽 굽이 부러진 하이힐.


겉모습은 다 달라도,

그 구두들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어떤 구두는 말한다.

“나는 무도회장의 불빛을 밟았지. 반짝이던 그 밤을 잊을 수 없어.”


운동화는 목소리를 높인다.

“나는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함께 달렸어. 웃음소리와 숨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돌아.”


장화는 차분히 속삭인다.

“비 오는 날, 빗방울이 발끝에서 춤추는 걸 보았어. 빗길의 노래는 내 마음속에 남아 있단다.”

그리고 하이힐은 잠시 망설이다가 말한다.


“나는 이별의 길을 걸었어. 아프지만... 그 순간도 내 안의 일부야.”


19e684e6-2018-422b-8333-fab8fc877e78.png


그날 밤, 숲에서 길을 잃은 아이가

울먹이며 이 마을에 도착했다.


“나... 집에 가고 싶은데, 길을 모르겠어.”


아이가 묻자, 구두들이 하나둘 앞으로 나섰다.


낡은 구두는 말했다.

“내가 걸어온 길을 따라가면 언젠가 집을 찾을 수 있단다.”


운동화는 씩씩하게 외쳤다.

“힘내! 달리면 금방 닿을 수 있어. 네 발걸음은 충분히 빠르니까.”


장화는 아이를 안심시켰다.

“비가 내려도 괜찮아. 젖은 길도 언젠간 마르고, 넌 계속 앞으로 갈 수 있을 거야.”


마지막으로, 하이힐이 조용히 속삭였다.

“가끔은 아픈 길도 있어. 하지만 그 길 끝엔 반드시 돌아가야 할 네 자리가 있단다.”


247ae52e-46c6-421a-80aa-5c504f47a37b.png


아이는 눈물을 닦고

구두들의 이야기를 가슴 깊이 새기며

조심스레 발을 내디뎠다.


숲속의 길은 여전히 낯설고 어두웠지만,

구두들의 목소리가 등불처럼 아이를 비춰주었다.


한참을 걷던 아이의 눈앞에

작은 불빛이 보였다.


5c27c861-82eb-4a97-b858-a0e81c1a74cc.png


집이었다.

창문 사이로 흘러나오는 노란 불빛은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빛이었다.


“나... 돌아왔어!”


아이의 목소리가 문 너머로 울려 퍼졌다.


뒤돌아보니,

구두들의 마을은 이미 고요히 어둠에 잠겨 있었다.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그러나 아이는 알았다.

버려진 구두들의 이야기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그리고 그 기억들은 언제나

길을 잃은 누군가를 집으로 데려다줄 거라는 걸.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