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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맡기는 세탁소

꿈은 잊혀도 사라지지 않는다

by 피터팬


동네 골목 깊숙이,

간판 불빛이 희미한 세탁소가 하나 있었다.


낡은 철문 위엔 오래전부터 벗겨진 글씨가 매달려 있었지만,

그곳을 아는 사람들은 여전히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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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는 옷을 맡기지 않는다.

손님들은 밤마다 찾아와

꾸다 만 꿈을 봉투에 담아 두 손으로 건넸다.


“사장님, 이 꿈 좀 맡아주세요.

너무 지저분해져서 도저히 꺼낼 수가 없네요.”


세탁소 주인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 꿈들을 조심스레 세탁기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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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돌아가는 소리는 언제나 부드럽고,

희미한 빛을 품은 거품이

유리창 너머로 일렁였다.


며칠 뒤 손님들은 맑게 정리된 꿈을 돌려받았다.

더 이상 무겁지 않고,

다시 꺼내어 이어갈 수 있는 꿈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남자가 찾아왔다.


“제 꿈이 하나 보관돼 있을 겁니다.

아주 오래전에 맡기고는... 찾으러 오지 못했어요.”


세탁소 주인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먼지 쌓인 창고로 들어갔다.


남자는 잠시 망설이다가,

그 뒤를 따라 조심스레 창고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에는 수십, 수백 개의 봉투가 쌓여 있었다.

주인이 돌아오지 못한 꿈들이었다.


그 중 하나,

유리 세탁기 속에서 여전히 빛나고 있는 꿈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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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춘 듯, 그러나 사라지지 않고 고여 있는 꿈.


남자는 그것을 보는 순간,

오래전 자신이 놓아버린 소망을 떠올렸다.


“아, 이건... 내가 어릴 적 꾸던 꿈이군요.

내가 잊은 줄만 알았는데.”


그는 손을 뻗었다.

그러나 세탁기 문은 열리지 않았다.


주인은 조용히 말했다.


“오래된 꿈은 쉽게 꺼낼 수 없답니다.

대신, 당신이 다시 걸어가야 하죠.


꿈은 깨끗이 씻겨 있지만,

손에 넣을지 말지는 당신의 몫이에요.”


남자는 한참을 그 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세탁기에 비친 자기 얼굴을 바라보며 작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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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다시 시작해보겠습니다.

이번엔 맡기지 않고, 내가 품고 가야겠군요.”


그날 이후,

골목의 세탁소엔 간간히 창문 불빛이 흘러나왔다.


사람들은 여전히 꾸다 만 꿈을 맡기러 왔지만,

가끔은 오래된 꿈을 되찾으려는 이도 있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세탁소 주인은 조용히 속삭였다.


“꿈은 맡길 수도, 되찾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꿈을 이어가는 건 당신 자신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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