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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애 Oct 21. 2019

구름의 남쪽, 윈난(云南)으로

윈난의 차밭

태풍 미탁이 밀어 올리는 비구름으로 아침부터 비가 쏟아진다. 먼길 떠나기 좋은 날씨는 아니지만 비 내리는 차창 밖 풍경 바라보며 상념에 잠기기 좋은 분위기다.

지리산 골짜기의 차농이 참 많은 시간 윈난(云南)을 그리워했다. 차(茶)를 업으로 하지 안아도 윈난은 여행자에게 아주 매력적인 곳이다. 멀리 가고 싶어 늘 먼 곳에 대한 그리움을 가슴에 품고 사는 나, 윈난으로의 여행은 쉽게 인연이 닿지 않았다.


지리산 아래 작은 산골마을에서 차농(茶農)으로 살아온 지 20년이 다 되어 간다. 그 긴 세월 동안 한때 우리 차 산업은 녹차 위주의 성장을 통하여 제법 흥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그 호시절은 얼마 가지 못하고 농약 파동을 겪으며 내리막 길로 들어섰다. 커피 시장의 지속적인 성장과 중국, 대만, 인도, 스리랑카, 일본 등의 세계적 고품질의 다양한 차가 유통되면서 소비자는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우리 차(茶)의 설 자리는 점점 좁아졌다.


중국은 수많은 종류의 차들이 생산되는 곳이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는 녹차 위주로 제다업이 성장했고 다양한 종류의 제품 개발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호시절엔 녹차 한 가지만 만들기도 바빴다. 그러나 그런 봄날은 오래가지 못하고 녹차는 점점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우리 차의 다양성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처음엔 홍차, 청차 위주의 실험 제다를 많이 했다.


그러다 긴압차(緊壓茶)의 매력에 사로 잡혀 많은 시간 실험 제다에 매달렸다. 녹차는 만든 지 1년이 지나 다음 해 봄 햇차가 나오면 묵은 차가 되어 더 이상 상품으로써의 가치를 지닐 수 없다. 차농은 녹차의 재고가 부담스럽다. 그런데 긴압차는 만들어서 세월을 보내도 차의 품질이 떨어지지 않고 후발효가 진행되면서 새로운 차가 된다. 그 대표적 긴압차가 중국 윈난의 보이차다.


15년 넘는 시간 동안 우리 소엽종 찻잎으로 긴압차를 만들어 오면서 나에겐 스승이 없었다. 오로지 맨땅에 헤이딩 하듯이 때로는 무지하게 접근하기도 하면서 책이나 인터넷의 많은 정보가 스승이 되어 주고 제다의 궁금증을 풀어 줬다. 긴압차의 본고장 윈난에 가고 싶다는 갈망으로 제법 오랜 시간 그리움의 열병을 앓아왔다.

버스와 비행기 안에서 지난 20여 년의 차농사와 차 만들기를 돌아보며 스스로 정리하는 시간을 보냈다.


지리산 자락 하동에서 진주를 거쳐 인천공항에서 칭다오 경유해 쿤밍까지 오니 밤이 깊었다. 참, 긴 하루다.


기름기로 가득 찬 쌀국수

쿤밍 시내의 허름한 호텔에 짐을 풀고 자정이 넘은 시간 허기를 달래러 나갔다. 이번 여행의 현지식 첫 끼니는 비위를 강하게 자극하는 향신료 냄새 가득한 야시장에서 육수가 아닌 기름에 담겨 있는 듯한 비주얼의 쌀국수다.


이곳은 윈난의 남부지역으로 미얀마, 라오스, 베트남과 가깝다. 그래서 동남아시아 분위기 물씬 풍긴다. 쌀국수는 이곳의 주식에 가깝고 간단하게 한 끼 때우는 식사로 많이 먹는다.

난잡스럽게 흩어져 있는 주위의 물건과 쓰레기들이 뒹굴고 기름기로 미끌거리는 바닥의 낮은 의자에 쪼그려 앉아 고수(샹차이/香菜)향 후욱 치고 올라오는 쌀국수, 윈난에서의 첫맛은 오래 기억에 남을 만큼 강렬했다.


순간 앞으로의 여행이 음식 때문에 힘들 거 같은 불길한 느낌이 뇌리를 스친다. 그러나 그건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호텔에서 쪽잠을 자고 아침 일찍 비행기로 보이차 생산지역인 징홍이라는 작은 도시로 들어갔다. 이번 여행을 준비한 한국 인솔자인 서울 신촌에서 "라오 상하이 찻집"을 운영하는 박 사장(라오 반장)과의 오랜 인연이 있는 이곳의 차농 "윈춘(云春)"이 공항에 마중 나와 있었다.


여행 일정 동안 한국에서 온 우리가 불편함이 없도록 잘 챙겨준 윈춘의 섬세한 배려 덕분에 쌀국수나 다른 음식을 먹을 때도 "샹차이(고수/香菜)"나 우리가 소화하기 어려운 향신료 폭탄을 무사히 피해서 잘 먹고 다닐 수 있었다.

작고 아담한 징홍 공항

징홍의 첫 느낌은 태국에 온듯하다. 공항을 나와 거리를 달리니 곳곳에 많은 꽃들이 피어 있고 열대의 강열한 햇살이 내려 꽂힌다. 차 창문을 내리고 바람을 맞는다. 부드럽고 뜨뜻하며 눅진한 습기 머금은 매끄러운 바람이 얼굴을 스친다.


이제야 비로소 여행자가 된 느낌이다. 나에게 있어 여행의 맛은 바람 같은 것인지 모른다. 늘 어딘가 먼 곳을 향해 달려가 버려서 잡을 수 없는 그런...


열대의 강한 햇살이 눈부신 징홍의 거리

비행기 탑승 시간에 쫓겨 아침을 먹지 못해 적당한 식당을 찾았지만 대부분의 식당이 아침 출근 시간 영업을 마친 브레이크 타임이었다. 길가의 청소 중인 식당 한 곳에서 들어 오란다. 늦은 아침으로 쌀국수를 먹는다. 여러 종류의 양념 중에서 자기 입맛에 맞는 것들로 담아 먹으면 되는데 쪽파 듬뿍 담고 박 사장이 권해 주는 열무김치 비슷한 짠지를 넣고 간장으로 간을 맞춘다. 특유의 향신료 향이 좀 강한 편이다.

먹는 중간에 씹히는 작은 알갱이는 제피 같기도 한 것이 혀를 얼얼하게 자극한다. 기름기 많지만 어젯밤에 먹은 것보다는 덜해서 먹을만하다.


이제부터 가는 길이 차(茶)를 찾아가는 진정한 여행길이다.

오늘의 첫 목적지 고육대차산 중 한 곳인 이우(易武)를 향해 열대의 강한 햇살이 눈부신 거리로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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