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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애 Oct 21. 2019

란창강을 건너 6대차산 이우(易武)로

이우 들어가는 길 풍경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열기와 차량의 소음이 뒤섞인 시내를 뒤로하고 란창강을 건넌다. 저 멀리 아득히 먼 곳 티베트 고원을 지나온 강물이다. 박완서 선생님의 티베트 기행기 <모독>을 읽으며 티베트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품은 지 20년이 넘었지만 아직 가지 못한 곳이다. 이제 여기까지 왔으니 다음엔 이 강물을 거슬러 올라 윈난 북부지역을 지나 내 심장을 뚫을 듯한 맑고 시린 티베트 고원의 바람을 맞으며 걷는 날이 오겠지.


"지상에서 산 모든 것은 시간의 속절없음 앞에서 사라 지기 마련이다. 인생이 그렇고 사랑이 그렇지 않은가. 그러나 우주에서 푸른 별이 빛나는 한, 문학과 예술이 꽃과 나무와 공기처럼 존재하는 한, 티베트가 지워지지 않는 한, 소설가 박완서의<모독>은 에테르처럼 아리테르처럼 남아 있지 않을까.

 어느 날, 생에 모독이 찾아올 때, 하여 가슴에 묵직한 바위가 놓인 것처럼 답답할 때, 삶의 속도가 생의 시간을 추월할 때, 친구여 <모독>을 펼쳐 보시길!"( 2014 가을 민병일)

이 인용 글은 1997년 박완서 선생님과 같이 티베트 여행을 하면서 사진을 찍어 <모독>을 같이 출판한 민병일 시인이 2014년 개정판을 내며 작고하신 박완서 선생님을 그리워하며 쓴 서문의 일부다.


이런 책 한 권 배낭에 넣고 티베트 고원을 걷고 있는 쓸데없는 상상을 하는 동안 차는 고속도로를 벗어나 구불구불한 산길을 오른다. 깊은 원시의 삼림지대, 바나나 농장과 가파른 산 중턱에 잘 가꾸어진 계단식 대지 차밭을 지나자 이우(易武) 입구가 보인다.

 

이우 입구

사진으로 참 많이 봐 왔던 이우 들어가는 관문이다. 한국에서 차산 답사 오면 누구나 그렇듯 그냥 지나치지 않고 차에서 내려 기념사진 찍는 곳이란다. 이 길을 지나간 수많은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하나의 통과 의례로 강한 햇살에 눈살을 살짝 찌푸린 조금은 어색한 표정으로 사진 한 장 남기고 이우 시내로 출발한다.

가는 길 곳곳이 공사 현장이다. 몇 년 전부터 고수차(古樹茶)가 인기를 끌면서 자본이 들어오고 산골 오지 차산의 작은 마을들에 변화의 물결이 거세단다. 가는 길 곳곳의 공사는 대부분 차를 만드는 초제소를 짓거나 식당, 숙박 시설이었다. 먼지와 공사 현장의 소음이 뒤엉켜 소란스러운 시내를 바라보며 드는 생각, 우리의 차 산업은 자꾸만 위축되어 가는데, 이곳은 활황이구나! 조금은 씁쓸한 마음으로 시내를 빠져나와 이우차산 중에서도 오늘의 목적지 마흑채 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마흑채 풍경

저 멀리 아득히 흰구름 흘러가는 파아란 하늘이 시원스럽다. 이곳의 지명이 왜 운남(雲南)인지 여행하는 내내 하늘을 보며 실감할 수 있었다. 마흑채엔 우리를 안내하는 윈춘의 여동생이 차농사짓고 차를 만들고 있어 그녀의 집을 방문하기 위해 왔다. 좁은 골목길을 지나 지은 지 얼마 안돼 보이는 새 건물 마당으로 들어섰다. 차에서 내리자 윈춘 동생네 식구들이 환한 웃음으로 반갑게 맞아준다.

그리고 차가 좋아 이곳에서 12년 동안 살다시피 하면서 차를 만들고 연구하는 한국분 K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라오상하이 박사장과도 인연이 있어 저녁에 윈춘의 집에서 만나기로 약속되어 있었는데 우리의 일정을 알고 여기로 먼저와 차를 마시고 있었다.


차가 많이 고픈 시간들이었다. 차산지 여행이었기에 집을 나설 때 마실 차는 챙기지  않고 현지에서 우려 담아 넣어 다닐 생각으로 작은 보온병만 준비해 왔다. 전날 아침 일찍 집을 나서고부터 차 마실 시간이 없었다. 버스와 비행기의 연속된 환승, 작고 허름한 호텔엔 전기 물 끓이기는 있는데 그 흔한 티백도 없었다. 이제야 제대로 된 차를 마실 수 있는 순간이다. 

그것도 많은 시간 그리워했던 유명한 차 산지에서 현지인이 직접 내려 주는 차맛을 드디어 보게 되는 순간이다.


 

이곳의 차농 윈춘

2019.09월에 제다한 산차 형태의 "생태차"를 내려준다. 그동안 기름진 음식의 느끼함을 말끔히 가시게 하는 개운하고 맑고 시원한 차맛이다. 이곳에선 생태차와 소수차를 같은 개념으로 사용하는듯하다. 고차수는 차나무 관리를 위해 가지 치기를 하지 않은 교목형으로 100년 이상된 차나무고, 소수차는 고차수 산지에 있는 100년 미만의 교목형 차나무 찻잎으로 만든 차, 고차수 산지에 있지만 가지치기를 해서 찻잎의 수확이 편리하고 한 그루당 생산량이 많도록 관목형으로 관리하는 왜화형 차나무도 있다. 생태차는 유기농으로 관리하는 다원의 찻잎으로 만든 차로 알고 있었는데 여기선 소수차와 생태차가 같은 의미로 사용되는 듯하다. 중국어를 모르니 심도 있는 질문으로 궁금증을 풀 수 없어 답답하기도 한 여행이었다.

우린 후 엽저가 탄력 있고 튼실하다.

이우는 시솽반나의 란창강 오른쪽에 위치한 차산으로 예부터 황실의 공차를 만들던 곳으로 고육대차산(유락, 만전, 혁등, 망지, 의방, 이우) 중 한 곳이다. 그만큼 차의 품질이 좋다는 의미리라. 이우 차맛의 산지 특징은 쓰고 떫지 않으며 목 넘김이 부드럽고 성질은 온화하고 맛은 두텁단다. K의 이런 설명을 들으며 마셔서 인지는 모르겠으나 맛이 달고 부드럽다. 찻잔에 자꾸만 손이 저절로 간다. 이번 가을 작업한 소수차 1Kg 한화 68,000원, 고수차 1kg 한화 20만 원 조금 넘는다. 봄 차는 더 비싸겠지만 우리의 우전이나 세작에 비해 많이 저렴한 가격이다. 우리 차의 생산 원가 생각하면 가격 경쟁력이 있을까? 고민스러운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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