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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애 Nov 12. 2019

보이차의 정의를 생각해 보다.

의방차산 소엽종 찻잎

식사를 마친 사람들이 차와 오토바이를 타거나 산길을 걸어서 하나 둘 돌아간다. 잔칫집 흥겨운 분위기를 뒤로하고 우리도 비포장 산중 도로를 흔들리며 달린다. 오늘의 목적지 중 하나인 의방차산 윈춘의 친척집 가는 길이다.


중국 정부에서 2003년과 2008년에 발표한 보이차의 정의를 살펴보면 "운남 대엽종 찻잎을 쇄청모차(晒靑毛茶)로 가공하여 만든 생차와 숙차"다. 보이차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현실을 반영하기 위해 보이차의 정의도 수정 보완되어 왔다. 하지만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변하지 않았는데 "운남 대엽종 찻잎을 원료로 사용해서 햇볕에 건조하여 만든 차"라는 내용이다.  


이 정의 또한 현실과의 괴리는 여전하다. 지금 가고 있는 의방 차산은 대엽종이 아닌 "소엽종 찻잎"으로 보이차를 만드는 곳이다. 청나라 때 이곳엔 황제와 황족에게만 차를 만들어 진상하던 다원이 있었다. K의 안내로 도로에 차를 세우고 입구 이정표 하나 없는 작은 산길을 걸어 내려가니 비석이 하나 있는데 깊은 산 밀림 속에 방치되어 있던 것을 보이차가 인기를 얻으면서 2016년에 새로 정비했다. 그 내용은 청나라 건륭제가 의방 차산 관리인 "토천총(土千總/직책) 조당제"의 공을 높이 평가하여 내린 일종의 공덕비다.


황제가 의방차산에 속하는 "만송의 찻잎 만으로 공차를 만들고, 다른 차산의 찻잎으로는 일체 공차를 만들지 말라"는 옛 기록이 있어 현재 유명세를 타고 있는 "만송차"는 소엽종 찻잎으로 만든 보이차다. 올봄 1kg이 5 - 6백만 원에 거래되었지만 그 생산량이 극히 적어 쉽게 구할 수없단다.


예전 황실에서 선호하던 차는 소엽종 찻잎으로 만들었으며, 현재 의방, 혁등, 망지 등의 차산에서 소엽종으로 제법 많은 보이차가 만들어지고 있다. 그리고 보이차 제다에서 아주 중요하고 핵심적인 과정이 "쇄청모차(晒靑毛茶) 만들기"라고 한다. 햇볕에 널어 말려야만 국가가 정한 품질 표준에 맞는 보이차가 된다. 현재 중국에서 생산되는 보이차 총생산량의 몇 퍼센트쯤이 햇볕에 건조해서 만들어 질까? 기계식 열풍 건조로 만들어지는 대형 차창의 생산량은 전체 보이차 생산량의 몇 퍼센트나 될까?


보이차가 만들어지는 현실과는 괴리감이 존재하는 교과서적인 정의와 그에 따른 이런저런 상념과 정리되지 않는 생각들로 머릿속이 복잡해질 때 윈춘이 차를 길옆에 세운다. 차에서 내리자 시원하고 맑은 바람 따라 차꽃 향이 날아온다.


찻잎 따러 가는 길

슬리퍼에 치마 입고 풀이 무성한 차밭으로 거침없이 들어간다. 평상시엔 이런 전통 복장과 대나무 바구니를 메고 차나무에 올라가 찻잎을 따지 않는다. 치마 입은 채로 나무에 오르기 불편하고 대나무 바구니는 나뭇가지에 걸려서 작업 효율이 떨어진다. 사진도 찍을 겸 이곳까지 왔으니 전통 복장을 입고 찻잎 따는 모습이 보고 싶어 부탁했더니 차밭 안주인이 흔쾌히 준비해서 바구니 메고 찻잎 따러 나선다.


찻잎 따기

차밭 안주인의 성격이 활달하고 거침이 없다. 3 - 4미터는 되어 보이는 제법 높은 차나무를 슬리퍼 신은 채로 너무 쉽게 오른다. 수많은 날들을 차나무와 같이하면서 살아온 자연스러움이 묻어 나는 몸짓이다. 작은 찻잎 하나하나를 손으로 따 모은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님을 잘 안다. 그것도 저렇게 나무 위에서 찻잎 따기는 위험하기도 하고 고개도 아프고 무척 힘들어 보인다. 윈춘의 아내는 봄에 찻잎 따다 나무에서 떨어져 고생을 많이 했단다.


맑고 향기로운 차 한잔이 내 앞에 놓이기까지 수백 수천번의 손놀림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찻잎은 뜨거운 솥에서 뒤틀리고 비틀리며 상처 입어야 비로소 제대로 된 향기를 뿜어 낸다. 고단한 노동과  찻잎의 아픔을 담은 상처의 맑은 결정체가 한잔의 차다.


가을 차 만들기가 거의 끝날 시기여서 차나무에 딸 수 있는 찻잎이 많지 않아 바구니에 채워진 양이 얼마 되지 않는다. 멀리서 온 손님을 위해 귀찮아하지 않고 이렇게 옷을 갖춰 입고 찻잎 따는 모습을 보여준 여인들이 너무 고맙다.


여행길에서의 만남은 짧아서 늘 아쉽다. 그래서 다음에 다시 오려는 여지를 남겨 두고 떠나기를 반복하는 게 여행인지 모른다. 다시 왔던 길을 달려서 상명으로 돌아간다.


압병 공장 내부

정운 초제소로 돌아오다 길목에 있는 압병(壓餠)하는 공장에 들렀다. 햇볕에 말린 찻잎을 수증기에 쐬어 광목 자루에 넣고 강한 압력으로 눌러서 단단한 덩어리로 만드는 것이 압병이다. 이렇게 덩어리로 뭉쳐 놓은 것을 긴압차(緊壓茶)라 하고, 단단하게 뭉치지 않고 찻잎이 하나하나 흩어져 있는 것을 산차(散茶)라고 한다. 바싹 마른 산차는 부피도 많아 보관하려면 공간을 많이 차지하고 충격에 약해 잘 부서진다. 압병 하여 긴압차로 만든 이유는 보관과 운송의 편의를 위해서다. 가을이라 물량이 적어 압병 작업이 쉬는 날이라 볼 수 없어 아쉽다.

건조와 포장하기

압병 하는 과정에서 뜨거운 수증기로 인해 차는 수분을 머금게 돼 통풍이 잘되는 그늘에서 말린 후 종이로 낱개 포장을 하고 7개씩 죽순 껍질로 묶음 포장을 한다. 죽순 껍질은 잡냄새와 습기 침투를 막아 줘서 몇십 년이고 오랜 세월 차를 보관하는데 아주 좋은 포장 재료다. 그리고 압병 할 때 수증기와 열을 받아서 차는 향이 풍부해지고 맛이 깊어진다.


압병 공장을 둘러보고 나오니 산 그림자 길게 내려앉고 골목길을 헤집고 다니던 많은 닭들도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 습기 머금은 눅진한 바람이 불어온다. 먼길 떠나온 여행자는 막막한 그리움 앞에 노을 지는 하늘만 쳐다보며 쓸쓸한 상념에 잠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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