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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애 Nov 06. 2019

보이차와 흥망성쇠를 같이하는 의방촌

의방촌 돌길

찻잎을 덖고 널어 놓느라 한바탕 분주한 아침을 보낸 안주인이 외출 준비를 마치고 같이 길을 나선다. 마을을 벗어나 구불구불 산길로 접어든 차는 오르막을 오르고 고개를 넘어 깊은 산속 높은 곳으로 들어간다. 울창한 숲에 단풍 든 나무는 없고 푸른 물결 일으키며 불어 오는 맑고 투명한 바람에 서늘한 기운이 묻어나 가을인 듯 아닌 듯 계절의 문턱을 넘나 들며 의방 차산 가는 길은 울퉁불퉁 비포장이 많다.


보이차(普洱茶)의 역사에서 의방은 찬란하게 피어 올랐던 황금시대가 있었다. 청나라 때 황실의 공차(貢茶)로 진상되면서 한때는 번성하였으나 청나라가 망하면서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의방촌 거리를 걸으며


명, 청 시대 무수한 마방들의 차마고도 긴 여정의 시발점이었다는 돌이 깔린 길을 따라 걸어 본다. 가을 끝물차 수확해서 볕 좋은 곳에 말리며 사람들은 옹기종기 모여 황편을 골라내고, 옥수수 가득 널려있는 풍경은 가을이 영글었는데 햇살은 뜨거운 여름 한낮이다. 흥망성쇠의 흔적들이 남아있어 쓸쓸함이 깃든 낡은 집들과 2000년대 들어와 보이차가 붐을 일으키며 새로운 봄날을 맞아 신축 중이거나 깨끗하게 지어진 집들이 뒤섞여 세상에 영원한 부귀영화는 없다고 무언으로 보여주는 풍경이다.

    

의방차산 윈춘 친척집 가는 길

우리 차의 암울한 오늘이 퇴락의 긴 터널을 지나서 의방촌을 가득 채운 햇살처럼 밝은 봄날이 올까?

            

                  "시(詩)는 인공의 낙원이고 숲은 자연의 낙원이고

                   청학동은 관념의 낙원이지만, 한 모금의 차는

                  그 모든 낙원을 다 합친 낙원이다." <김훈 에세이 / 자전거 여행 중에서>


다시 오는 봄날엔 지리산에 이런 낙원이 펼쳐지기를 염원하며 먼 하늘 끝 높은 산과 산들이 만들어 내는 능선과 구름이 그려 내는 그림을 넋 놓고 바라보며 험한 산길을 한동안 달리는데 길 양옆으로 차와 오토바이들이 주차되어 있고 갑자기 길이 막혔다. 이런 깊은 산속 외길에 차들이 서로 엉켜 있고 많은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게 무슨 일이 있나 보다. 윈춘이 한참을 기다려 앞에 있던 차들이 정리되어 길이 열리자 조금 가다 길 옆에 차를 주차한다.


친척 결혼식이 이곳에서 있어 점심도 먹을 겸 해서 들렀다. 결혼식에 초대받고 참석하지 않으면 큰 실례라고 윈춘이 말해준다. 그래서 안주인까지 동행했나 보다. 지금은 중국의 최대 연휴인 국경절 기간이다. 땅덩어리 넓은 중국, 도시에 나가 있는 친척들이 이런 오지까지 오려면 며칠이 걸리기도 해서 긴 연휴기간에 결혼식을 많이 치른다.


결혼식 잔치 풍경

차에서 내려 몇 걸음 걷는데 길가를 따라 폭죽 터지는 요란한 소리에 깜짝 놀랐다. 폭죽은 붉은색을 좋아하는 중국 문화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는 것으로 결혼식에서 크게 터트려 큰 소리를 내게 하고 붉은색 불꽃을 보임으로서 악귀를 쫓아내는 의식이다. 귀가 멍하게 울리는 요란한 폭죽 소리와 날아오는 파편을 피해 잠시 걸음을 멈췄다가 마당으로 들어선다. 둥근 테이블이 가득 놓여있는 마당에서 남자들은 분주하게 음식을 나르고 많은 사람들이 둘러앉아 시끌벅적 웃고 떠들며 식사를 하고 있다.


같이 식사한 할머니 가족

테이블들이 만석이어서 우리 일행이 앉을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윈춘 부부가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사이 바로 앞의 할머니와 손자가 식사하는 테이블에 남자들이 의자를 가져다주며 앉으라고 권한다. 처음 보는 낯선 외국인을 불편해하지 않고 웃으며 맞아준다.


이곳의 좀 색다른 식사 문화는 상위에 빈공기가 놓여 있는데 이를 앞접시처럼 사용하면서 밥은 본인이 직접 이 빈공기에 담아와 먹는다. 여행 중 몇 곳의 농가에서 식사할 때도 한쪽에 놓여있는 전기밥솥의 밥을 본인이 직접 담아와 먹었다.


잔칫날이어서 밥솥이 아닌 마당 한켠에 넓고 푸른 파초잎을 깐 대나무 바구니 안에 밥이 있어 담아오니, 도시에서 결혼식에 온듯한 같은 테이블의 흰색 셔츠를 입은 세련된 여인이 음료수와 컵을 챙겨다 준다.


그릇에 담긴 작은 물고기 튀김에 관심을 보이자 할머니께서 메콩강(란창강)에서 잡은 거란다. 대부분 민물고기는 특유의 비린맛을 잡기 위해 향신료가 너무 많이 들어있어 먹기 힘들었는데 기름에 튀기고 대파만 뿌려져 있어 그렇게 비리지 않고 먹을만하다. 훈증한 소고기 볶음이 질긴 듯하면서 고소하니 맛있다. 한우는 없으니 들판에서 운동 많이 했을 물소겠지? 자연에서 온 깊으면서도 거친 맛을 많이 보는 여행길이다.


할머니께서 상에 놓여 있는 여러 음식들을 가리키며 많이 먹으라고 연신 말씀하신다. 참, 친절하시고 마음에서 진정으로 우러난 순박함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도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여 돼지 잡고 푸짐하게 음식 장만해서 마당에 멍석 깔고 결혼식 잔치를 시끌벅적하게 치르던 때가 있었지. 그 시절이 까마득한 옛날의 희미한 기억 한 조각으로 떠오른다. 이제는 다시 그런 아름다운 풍경과 마주할 수없음이 마음을 아련하게 만든다.


세계테마 기행 화면으로 많이 보아온 그런 풍경 속에 앉아 소수민족 결혼식 잔치를 같이하다니, 행운이 함께한 여행이다. 이런 추억을 만들어 준 윈춘 부부의 배려 깊은 따뜻한 마음이 너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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