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상상으로 만들어가는 놀이세상.
수지는 오늘 등원하지 못하고 가정보육을 했다. 수지가 걸린 아데노바이러스는 전염성이 있어, 완치가 되기 전엔 등원할 수 없다. 그래서 오늘은 내가 연차를 내고 집에 수지와 같이 있었다. 평일 낮에 아이와 같이 있는 게 오랜만이었다. 수지는 주말 동안엔 입이 아프다고 잘 먹지도 못했는데, 어제부터 조금씩 먹기 시작했고 컨디션을 회복해 가고 있다. 오늘은 아주 컨디션이 좋았다.
비도 오고, 아이도 아직 몸이 회복 중이라 밖에 나갈 순 없었다. 그래서 오늘은 집에 있었는데, 수지가 어린이집 안 가고 엄마랑 집에 있는 게 즐거운지 뭔가 더 들뜨고 신나 보였다. 엄마랑 뭘 하고 놀까 하며 행복하게 놀잇감을 찾는 모습이었다.
우리 집엔 육아하는 집엔 하나쯤은 다 있는 주방놀이세트나, 미끄럼틀 같은 조금 덩치가 큰 놀잇감은 없다. 아주 잔잔한 장난감들, 블록, 거의 멜로디언 크기의 작은 피아노 하나가 있다. 오히려 잘 걷지도 못하고 겨우 앉아있거나 기어 다녔던 어린 시기엔 덩치 큰 장난감들이 있었는데, 얼마 안 가 처분했다.
지금은 너무 잘 뛰어노는 36개월인 아이인데, 우리 집엔 특별한 놀잇감이 별로 없다.
그러다 보니 우리 수지는 집에 있는 모든 가구가 다 자기의 놀잇감이다. 오늘 오전에 수지와 같이 시간을 보내는데, 수지가 거실 소파에 수지가 좋아하는 인형 두 개랑 같이 수영을 한다며 논다. 나에겐 인형을 잡고 수영하게 하라고 시키고, 내가 인형을 가지고 어푸어푸 수영한다고 하니까 수지가 까르르 웃으며 즐거워한다. 자기도 수영한다고 어푸어푸 흉내 내는데, 요즘 놀 때마다 수영장을 말하는 걸 보니 물놀이하러 자주 가야 할 것 같다.
그렇게 수영놀이를 하더니, 소파가 갑자기 미끄럼틀이 된다. 소파 쿠션을 소파밑에 기대 놓고, 그 쿠션을 미끄럼틀이라고 타고 내려온다. 타고 내려온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그냥 엉덩이만 대면 바로 바닥인데도 수지는 그게 미끄럼틀이라고 좋아하며 몇 번을 타고 내려온다.
처음에 이 모습을 봤을 땐 아 집에 미끄럼틀을 하나 사야 하나 하는 생각을 잠시 했었는데, 오히려 집에 기구가 있으면 흥미를 금방 잃을 것 같기도 하고, 집에 미끄럼틀이 없으니 놀이터나 키즈카페 가면 더 좋아하며 신나게 노는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미끄럼틀이라고 정해진 기구가 아니라, 자기가 미끄럼틀이라고 새롭게 창조해서 노는 그 모습이 좋아서 그냥 없는 대로 두었다.
수지는 소파 미끄럼틀을 탈 때 자기가 좋아하는 인형을 데리고 와서 같이 타기도 하는데, 그때는 정말 친구랑 타는 것처럼 즐거워하고 내가 반응을 더 재밌게 해 주면 더 좋아한다.
그리고 소파는 정글짐이 되기도 한다. 미끄럼틀을 놀이를 하고 나서는 갑자기 소파에 기어 올라가서 그 위에 걸터앉아 말 타는 것처럼 흉내내기도 하고, 올라갔다 내려왔다 하며 한참을 논다. 소파 하나가 여러 개의 놀이기구 역할을 다 한다. 실제 수영장도 아니고, 미끄럼틀도 아니고, 정글짐도 아니지만 수지가 즐거워하는 그 모습을 보면 놀이터에서 노는 것과 다름없는 해맑은 얼굴이다.
그리고 엄마가 자기를 지켜보고 있는지, 놀면서 항상 나를 쳐다본다. 내가 수지를 보고 있는 걸 확인하면 엄마가 자기를 보고 있다는 것이 기분이 좋은지, 더 업돼서 신나 한다. 그런 수지를 보는 게 행복하다.
수지는 주방놀이도 좋아한다. 아무래도 엄마가 항상 주방에서 뭔가를 하고 있는 모습을 자주 보니, 엄마 흉내를 내고 싶어 하는 것 같기도 하고 호기심을 가진다. 우리 집엔 커다란 주방놀이세트는 없지만, 간단한 소꿉놀이 할 수 있는 조리기구 장난감과 과일, 음식 모형 장난감은 있다. 수지가 소꿉놀이 장난감이 한가득 들어있는 박스가 꽤 무거운데도 영차영차하며 거실로 들고 나왔다.
그러고는 나에게 요리를 해준다면 앉아보라고 한다. 수지는 나름 요리를 하기 위한 세팅을 한다. 박스 안에서 몇 가지 조리기구와 음식, 과일 장난감을 꺼내놓는다. 뭔가 세팅한다는 느낌이 든다. 그렇게 요리 준비를 하고 나서 정말 요리하듯이 프라이팬에 뭔가를 넣고 볶아서 나에게 그릇에 담아주고, 먹어도 된다고 한다. 그리고 아주 친절하게 “손으로 먹어도 돼”라고 말한다. 너무 귀엽다.
그러다 그릇에 음식 하나를 담았는데, 뭔가 더 담아주고 싶으면 “엄마 지금 이거 먹으지마“라고 한다. (수지는 먹지마를 먹으지마라고 하는데 이 말이 너무 귀엽다.) 그리고 자기가 원하는 만큼 음식을 다 담아주고 나서야 이제 먹으라고 한다.
내가 먹는 시늉을 하며 “너무 맛있다~“하거나 아님 ”아 뜨거워~“ 하며 반응을 다르게 해 주면 수지가 재밌어한다. 그리고 내가 먹는 시늉을 할 때 엄마가 아이 밥 잘 먹을 때 기특하고 이쁘게 보듯이 그런 눈빛으로 나를 본다. 이 글을 적다 보니, 이 놀이를 하면서 수지가 내 밥을 챙겨주고 잘 먹는 나를 보며 애정 가득 담은 눈으로 날 보던 수지가 떠올라서 갑자기 뭉클하다.
그리고 수지는 주방놀이를 할 때 작은 개구리 실로폰을 가스레인지 삼고, 피아노 모형의 작은 장난감을 싱크대 삼아서 주방놀이 할 땐 항상 그 두 가지를 챙겨 온다. 그리고 실로폰 위에 냄비나 프라이팬을 올리고, 피아노 장난감에선 손을 씻거나 설거지를 한다. 그 모습이 정말 사랑스럽고 귀엽다.
주방놀이를 좋아하는 아이를 위해 싱크대나, 냉장고, 가스레인지 모형의 장난감세트를 살까 싶은 생각을 이전에 잠깐 했었지만, 자기가 스스로 가스레인지를 만들고 싱크대를 만들어 노는 이 모습이 너무 사랑스럽고, 이뻐서 안 사고 그냥 두었다.
지금 생각해도, 안 사길 정말 잘한 것 같다.
집에 있는 모든 것이 수지의 놀잇감이다. 우리 집엔 수지로 인해 본래 자기 역할이 아닌 수지가 재창조한 역할로 탄생하는 물건들이 많다. 아이의 기발한 발상, 상상력을 보며 놀라기도 하고 신기하고, 내가 배우기도 한다. 정말 별것 없는 우리 집이지만 오히려 별게 없어서 아이가 상상하기에 적합한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본인이 상상해서 만들어내는 놀잇감들이 가득하다. 이런 아이의 순수하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보니 장난감을 더 사고 싶은 욕심이 전혀 들지 않는다. 다 갖춰서 좋은 것만은 아니다. 물론 필요한 것은 사주지만, 굳이 없어도 되는 것들은 없는 대로 놔두면 아이가 자기의 생각과 상상력으로 무언가를 만들어 채워놓는다.
이런 아이의 세계를 보는 것이 즐겁고 행복하다.
오늘 우리 수지가 해맑게 웃으며 즐겁게 놀이하는 모습을 곁에서 볼 수 있어 정말 행복했다. 주말에 아이와 새로운 곳으로 나들이 가고 놀러 가는 것도 좋지만, 평일낮에 이렇게 함께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너무 특별하고 소중했다. 익숙한 곳에서 아이가 편안하고 자유롭게 노는 모습을 보며 내 마음도 뭔가 흐뭇하고 행복했다.
우리 집은 수지의 상상으로 수영장, 놀이동산, 외계인이 있는 우주가 되기도 하고 고급 레스토랑이 되기도 하고, 없는 게 없는 마트가 되기도 한다. 아이의 세계에 함께 들어가 놀다 보면 나도 같이 즐거워진다. 아이와 함께하는 이 모든 순간이 소중하고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