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색으로 물들어가는 행복한 엄마
오늘은 수지 아빠가 친구 만나고 밖에서 1박 하고 오는 날이다. 내가 저번달에 모녀여행을 가느라 1박을 하고 와서 남편도 동등하게 휴가가 주어졌다. (이런 건 철저하게 잘 지키는 부부)
그래서 남편이 저녁에 나가기 전에 수지에게 인사하는데, 아빠가 친구 삼촌을 만난다고 하니 수지도 나갈 거라고 떼를 쓰다가 결국 울음이 터졌다. 뿌엥!!!!! 하며 바닥에 드러누워 자기도 데려가라고 우는 수지를 달래며, 엄마가 산책 데리고 간다고 하니 그제야 울음을 그쳤다.
오늘 마침 저녁도 일찍 먹었고, 수지도 일찍 씻어서, 저녁 산책 잠시 다녀오면 수지 자기 전까지 저녁 시간을 잘 보내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평소엔 수지 하원하고 집에 들어오면, 다시 나가기 귀찮아서 저녁엔 잘 나가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은 아빠 따라간다고 울고불고 난리난 수지를 달래려면 할 수 없었다.
남편은 나가고, 나도 수지와 산책 나갈 준비를 했다. 밖에 비가 많이 오고 있어서 유모차에 방수커버를 씌우고 수지는 잠옷 입고 있던 그대로 입고, 나도 편한 차림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가니 비가 많이 쏟아져도 수지는 비 오는 풍경을 보는 것을 즐기며 좋아하는 인형을 껴안고 유모차 산책을 즐겁게 했다.
나도 산책을 나올 때는 조금 귀찮았는데, 막상 나와서 비 오는 저녁 무렵의 풍경을 보다 보니 귀찮던 마음은 사라지고 좋았다. 비 오는 저녁 무렵의 풍경이 내 마음을 차분하게 하기도 하고, 비 오는 풍경 자체가 주는 그 분위기가 참 좋았다.
아이랑 있다 보면 예상치 못한 일들도 많이 생기고, 나 혼자였으면 절대 안 갔을 곳, 안 했을 행동 같은 것들을 아이로 인해 많이 하게 된다. 아이는 나를 새로운 세계로 이끌어주는 열쇠 같기도 하다. 아이가 나를 새로운 문으로 인도하고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새로운 세상을 경험한다.
오늘 비 오는 날 저녁 산책도 나에겐 그런 경험이었다. 새로운 세계라고 말하면 아주 거창해 보이지만, 사실 내가 나 스스로는 하지 않을 행동을 하고, 가지 않을 곳을 가는 것 자체가 나에겐 새로움이다.
그래서 아이를 따라나서다 보면, 예상치 못한 더 좋은 일들이 생기고 더 좋은 마음이 생긴다. 난 수지가 태어나고 나서는 비 오는 날이 좋아졌다. 그전에는 비 오는 날을 좋아하지 않았다. 비 올 때 꿉꿉한 느낌과, 부스스해지는 머리, 고데기를 해도 다 풀려버리고, 곱실거리는 머리카락, 이런 게 다 싫었다. 그리고 등굣길이나 출근길 아침에 비가 오면 더 번거롭고 힘들어서 비 오는 날의 안 좋은 점만 생각하며 비 오는 날을 좋아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수지는 비 오는 날을 무척 좋아한다. 비 오는 날에, 비가 안 오면 할 수 없는 것들을 마음껏 즐긴다. 모든 아이들은 물을 참 좋아하는 것 같다. 비 오는 날 물웅덩이에서 첨벙첨벙 거리며 즐거워하고, 비가 많이 와서 배수구나 하수구에서 물소리가 나면 그 소리를 들으며 한참을 들여다본다.
비 오는 날은 온 세상이 아이의 놀이터가 되는 날이다. 나도 이제 비가 오면, “어, 우리 수지가 첨벙첨벙 놀이하며 좋아하겠다” 하는 생각부터 든다. 아이가 좋아할 모습을 생각하면서 비 오는 게 반가워졌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날 발견하고서는, 내가 많이 변했구나 하고 느꼈다. 아이로 인해, 내가 싫어하던 것도 좋아하게 되고, 좋은 점만 보게 되었다. 좋아지는 것들이 더 많아진다.
아이의 시선을 같이 따라가다 보면 나도 어느새 같이 웃으며 즐거워하고 있다. 비가 오는 날 미끄럼틀에 물방울이 가득 맺혀 있는 것도 자세히 들여다보고, 길가에 달팽이 하나도, 물방울 맺혀있는 꽃도 자세히 보게 된다. 길가에 물웅덩이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모든 웅덩이를 아이가 다 밟아야 하기 때문에, 물웅덩이를 아이와 같이 찾고 발견하며 좋아한다.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아이와 함께하다 보니 내 마음도 순수로 물들어 간다. 순수함은 내 마음에 뭔가 뚜렷하게 서있는 것들, 오래된 고정관념의 진한 색깔을 연하게 해주는 능력이 있는 것 같다. 뭐든 잘 섞이고,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은 마음. 어떤 색을 섞어도, 다 잘 어울리는 색이 순수인 것 같다.
아이의 색으로 물들어가는 내 마음이 좋고, 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더 아름답게 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을 가지게 되어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