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성과 결합된 고유의 콘텐츠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로컬 크리에이터의 일은 무엇일까? 그 답은 로컬 크리에이터의 차별성에서 찾아야 한다. 로컬 크리에이터가 일반 창업가와 다름 점은 단어 ‘로컬’에 있다. 로컬 콘텐츠로 창업하고 경쟁력을 유지하는 로컬 크리에이터의 가장 중요한 일은 로컬 콘텐츠 개발이다.
문화산업에서 콘텐츠란 “부호, 문자, 도형, 색채, 음성, 음향, 이미지, 영상 등의 자료 또는 정보”를 말한다. 로컬 크리에이터가 문화창조산업뿐만 아니라 골목산업에서도 활동하기 때문에 콘텐츠의 범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본 연구에서는 콘텐츠를 브랜드, 프로덕트, 공간, 커뮤니티 공공재 등 유/무형 혼합 콘텐츠를 포함한 다양한 유형의 아웃풋(Output, 생산물)으로 정의한다.
콘텐츠를 이렇게 정의하면 로컬 콘텐츠의 의미는 명확해진다. 로컬 콘텐츠는지역 자원에서 추출된 콘텐츠다. 환경, 역사, 문화, 공동체, 지리, 장소등의 지역 자원이 로컬 콘텐츠 생산 과정에서 인풋(input, 투입재)으로 투입된다.
콘텐츠 소재(인풋)
활용할 수 있는 콘텐츠 소재는 자연환경, 역사문화, 지리장소, 공동체다. 로컬 크리에이터가 가장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인풋은 자연환경이다. 세계 어디서나 산, 강, 바다 등 자연환경은 지역의 특색, 그리고 생산물을 결정한다. F&B 분야의 로컬 크리에이터라면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수산물의 활용 가능성을 일차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지역의 역사와 문화 또한 중요한 콘텐츠 소재다. 지역의 역사는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는 건축물뿐 아니라 브랜딩과 스토리 텔링에 필수적인 이야기 소재를 제공한다. 문화자원이 문화재일 필요는 없다. 지역에서 현재 활동하는 예술가, 공예인, 작가도 중요한 자원이다. 지역 작가의 작품을 공간에 활용하고 전시, 공연, 행사 등 그들과 협업해 다양한 콘텐츠를 개발할 수 있다. 지역의 문화 자원은 고전적인 의미의 문화예술 자원, 즉 전문 예술가가 창조하는 문화예술 자원에 한정되지 않는다. 문화의 영역을 생활문화로 확대하면 인풋 자원은 무궁무진해진다. 스타벅스와 나이키가 활용한 시애틀과 포틀랜드의 콘텐츠 소재는 각각 커피와 아웃도어 문화였다.
로컬 크리에이터가 창의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자원이 지리와 장소다. 사업장의 위치가 사업자가 접근할 수 있는 자원, 활동하는 상권, 만족해야 하는 소비자층을 결정한다. 장소성 또한 사업의 성격과 범위를 규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사업장이 위치한 지역이 도시지역인지, 농촌지역인지, 도시에서도 신도시인지, 원도심인지, 원도심에서도 도로변인지, 골목인지에 따라 고객에게 제공할 수 있는 장소의 경험이 달라진다.
공동체는 사업장이 위치한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 그곳에서 활동하는 사업자, 사업장을 방문하는 고객 등 다양한 유형의 커뮤니티를 의미한다. 커뮤니티 호텔을 지향하는 숙박업소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지역 주민과 여행자가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환경과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다. 커뮤니티 프로그램 없이 현지인처럼 살고 싶은 여행자를 유치할 수 없다. 지역의 사업자는 공동 행사와 제품 개발을 위해 협업할 수 있는 파트너이자, 매장에서 활용하는 로컬 제품을 생산하는 협력업체다. 로컬 크리에이터가 다른 지역에서 경험할 수 없는 서비스를 개발하고자 한다면, 자신이 활동하는 지역에서 누가 어떤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하는지를 파악하는 일로 시작해야 한다.
콘텐츠 개발(아웃풋)
로컬 크리에이터의 다수가 활동하는 골목산업이 생산하는 콘텐츠는 브랜드, 프로덕트, 공간, 커뮤니티 공공재다. 이중 프로덕트와 공간은 전형적인 무형 콘텐츠가 아닌 유/무형 혼합 콘텐츠로 분류할 수 있다.
브랜드, 프로덕트, 공간, 커뮤니티 공공재를 기획하는 능력이 바로 로컬 크리에이터에게 필요한 콘텐츠 개발 능력이다. 그렇다면 콘텐츠 기획 능력은 어떻게 키울 수 있는가? 기존 문헌은 어떤 ‘로컬 콘텐츠 개발 방법론’을 제시하는가?
1)브랜드 기획
비즈니스 모델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브랜딩 또는 브랜드 정체성이다. 창업가가 추구하는 브랜드 가치, 브랜드가 타깃으로 하는 소비자층, 브랜드 가치를 전달하는 브랜드 메시지 등이 브랜드 정체성을 구성한다. 브랜드 정체성을 구현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이를 담은 대표(Signature) 상품의 개발이다.
로컬 크리에이터는 일반적으로 로컬 콘텐츠를 통해 브랜드 정체성을 확립한다. 지역 자원과 문화는 브랜드 소재를 제공하는 일차적인 자원이다. 공공 문서, 사료, 향토 문화 연구서, 인터넷 정보의 아카이빙을 통해 소재를 발굴할 수 있다.
로컬 크리에이터가 주로 의식주 생활산업에서 주로 활동하기 때문에 생활 문화가 뚜렷한 도시가 브랜드 기획에 좋은 환경을 제공한다. 슬로 라이프, 친환경주의, 아웃도어, 커뮤니티, 독립 문화, 힙스터, 진보주의 등 독특한 라이프스타일을 자랑하는 포틀랜드가 대표적인 도시다. 포틀랜드 라이프스타일을 소재로 창업한 매거진 ‘킨포크’는 가까운 사람을 의미하는 킨포크라는 타이틀로 브랜드의 포틀랜드정체성을 구현했다.
로컬 문화를 브랜드에 반영하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상호나 태그라인에 지역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다. 출신 도시를 가장 적극적으로 마케팅하는 한국 기업인 대전 성심당의 태그라인은 ‘나의 도시, 나의 성심당’이다.
동네 이름도 좋은 로컬 브랜드 소재다. 과거에는 명동, 압구정동 등 시대를 대표하는 중심 상권이 브랜드였다면, 지금은 골목길의 부활 덕분에 연희동, 연남동, 한남동, 익선동, 성수동 등 서울의 중심 상권과 거리가 먼 작은 동네가 사람을 모으는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상호, 브랜드 메시지에 동네 이름을 삽입해 브랜드의 지역성을 강조함으로써 특색, 유동인구, 이미지 등 동네 브랜드가 제공하는 유/무형 자산을 활용할 수 있다.
2) 프로덕트 개발
프로덕트는 로컬 크리에이터가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제품과 서비스다. 제품과 서비스를 가장 손쉽게 로컬 콘텐츠로 제작하는 방법은 지역에서 생산되는 재료 등 지역 자원을 인풋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인풋은 로컬 농수산품 등 유형 재료에 한정되지 않는다. 제품과 서비스를 마케팅하고 홍보하는 데 투입되는 콘텐츠 소재도 인풋으로 이해할 수 있다. 사투리 디자인으로 소품을 제작하는 광주 역서사소, 지역 농산물을 맥주 재료로 사용하는 강릉 버드나무브루어리의 '미노리세션', 광주 무등산브루어리의 '광산바이젠', 지역 식품을 아이스크림 재료로 활용하는 강릉의 '순두부젤라토' 등이 대표적인사례다.
로컬 크리에이터가 일차적으로 활용해야 하는 인풋은 전통문화다. 전국 어디서나 전통 공예, 농법, 기술을 친환경적이고 지역 밀착적인 생산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다. 불교의 경주, 유교의 안동과 전주, 근대문화의 군산과 인천 등 전통문화가 뚜렷한 도시에서는 전통문화에 글로벌과 기술을 접목하는 방식으로 전통문화를 활용할 수 있다.
또 다른 중요한 인풋이 커뮤니티 자원이다. 로컬 브랜드를 수집해 판매하는 로컬 브랜드 편집숍, 지역 브랜드가 참여하는 팝업 스토어와 축제, 공동 판매, 공동 작업과 제작 등 로컬 브랜드 간 협업, 로컬 창업자를 육성하고 로컬 창업자 커뮤니티를 구축하는 코워킹 스페이스와 창업 인큐베이터 등 다양한 방식으로 커뮤니티 자원을 동원할 수 있다. 주민이 직접 경영에 참여해 지역이 필요한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하는 마을호텔, 마을기업, 협동조합, 사회적 기업도 커뮤니티 인적 자원을 활용한 프로덕트 기획 모델의 하나로 분류할 수 있다.
지역 브랜드를 편집해 판매하는 매장이 로컬 편집숍이다. 포틀랜드에서 지역 상품을 "포틀랜드 메이드(Portland Made)", "메이드 인 포틀랜드(Made in Portland)"로 표현하듯이 선진국 도시에서는 '우리 도시 제품'을 적극적으로 홍보한다. 국내에서는 로컬 참기름, 마늘 소금, 명란 등 지역의 장인 제품을 수집해 서울 소비자에게 소개하는 연남동의 연남방앗간, 제주 서귀포 사계리 지역의 가게와 브랜드뿐만 아니라 제주 지역의 장인 제품을 수집하고 판매하는 사계생활, 시흥 월곶동에서 로컬 농산물과 지역 소비자를 연결하는 빌드의 팜닷이 대표적인 사례다.
3) 공간 기획
로컬 콘텐츠 개발의 세 번째 방법은 공간 디자인이다. 역사적 가치가 높은 건축물을 매장으로 리모델링하거나 유서 깊은 거리에서 매장을 오픈하는 것이 가장 손쉬운 지역 기반 공간 기획이다.
역사적 건축물이 부족한 장소에서는 공간 디자인을 통해 주민과 주민을, 주민과 고객을, 지역과 기업을 연결하는 것이 공간 기획의 핵심이다. 최근 트렌드는 오픈 계단, 서가, 루프탑, 빈티지를 통해 지역의 거리, 자연, 지식, 역사와 연결하고 지역의 스토리 자산을 활용하는 것이다.
지역 상생 개념으로 공간을 디자인한 대표적인 사례가 연희동 카페거리에서 약 70개 건물을 리모델링한 쿠움파트너스다. 옛 주택의 장점을 고스란히 살림으로써 단독주택 단지라는 동네 정체성을 유지하고 외부 계단과 연결 다리 등을 통해 모든 임차 공간을 대로변 상가 1층처럼 설계한다. 동네 유동인구를 자연스럽게 매장으로 유치하는, 동네와 호흡하는 공간을 기획하는 것이다.
4) 커뮤니티 공공재 생산
마지막으로 랜드마크, 커뮤니티 공간, 로컬 플랫폼, 로컬 비즈니스 생태계 등 커뮤니티 공공재 (정확히 말해 공공재 성격을 일부 띤 사유재)를 로컬 콘텐츠로 개발할 수 있다. 커뮤니티 공공재는 지역 상생을 추구하는 로컬 크리에이터가 자연스럽게 생산할 수 있는 콘텐츠다.
공공재를 공급하는 데 있어 민간 기업인 로컬 크리에이터에게 지역 정부만큼의 수준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로컬 크리에이터와 지역 경제가 상생할 수 있는 영역에서 공공재를 제공하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지역 상권 활성화가 골목상권에서 활동하는 로컬 크리에이터에게 적합한 상생 영역이다.
커뮤니티 공공재를 제공하는 대표적인 기업으로 서울 연희동의 사러가쇼핑센터를 들 수 있다. 연희동 시장을 기반으로 성장한 사러가쇼핑센터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백화점, 할인마트와 동등하게 경쟁하는 독립 슈퍼마켓이다. 연희동 골목상권은 주차장, 유동인구, 문화 상징성 등 다양한 공공재를 제공하는 사러가쇼핑센터를 중심으로 형성됐다. 상권 공공재를 제공하는 사러가쇼핑센터는 충성 고객, 균형적인 상권 구성, 상점의 다양성 등의 혜택을 얻는다.
커뮤니티 공공재 개념에는 지역 문제 솔루션도 포함된다. 지역의 유휴 공간을 활용해 창업하는 도시재생 스타트업, 지역 주민이 참여하고 지역 자원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커뮤니티 호텔, 지역 주민에게 모임과 교류의 장소를 제공하는 커뮤니티 카페 등이 현재 부상하는 커뮤니티 비즈니스 모델이다.
로컬 크리에이터가 주도하는 상권 공공재 생산과 상권 개발을 개념화할 수 있는 분석틀이 <골목길 자본론>에서 골목상권 성공 조건으로 제시한 C-READI 모델이다. 성공한 골목상권은 공통적으로 문화 인프라(Culture), 임대료(Rent),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 접근성(Access), 도시 디자인(Design), 정체성(Identity) 등 6가지 조건을 충족한다는 의미다.
지역 상권에 공공재를 제공하는 로컬 크리에이터는 결국 자신의 상권이 C-READI 조건(또는 지역산업 생태계의 조건)을 만족하는데 기여하는 기업이다. 가게 스스로가 문화 자원과 기업가 정신을 창출하고, 공간과 접근성을 개선하며, ‘착한 가격’으로 지역 파트너와 협력하는 것이다. 로컬 크리에이터의 C-READI 전략, 즉 지역 상권의 C-READI 조건에 대한 기여는 지역상권을 활성화할 뿐 아니라 문화성, 창의성, 공유가치, 커뮤니티 중심으로 변화하는 시장 환경에서 성공할 수 있는 비결이다.
지금까지 브랜드, 프로덕트, 공간, 커뮤니티 공공재 기획을 통해 로컬 콘텐츠를 개발하는 방법을 설명했다. 이 네 가지 방법이 현장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로컬 콘텐츠 개발 방식이다.
로컬 콘텐츠 개발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아직 초보 단계다. ‘로컬 콘텐츠 개발론’, 즉 콘텐츠 개발에 필요한 반복적인 과정(절차, 방법, 산출물, 기법, 도구)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으로 부를만한 수준의 지식은 축적되지 않았다. 한국에서 콘텐츠 기반 로컬 비즈니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다를 것이다. 로컬 창업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성공 사례가 늘기 때문에 보다 체계적인 연구가 가능할 것이다. 학계가 지속적인 리서치와 현장 조사를 통해 보다 정교한 로컬 콘텐츠 개발 방법론을 개발할 것을 기대한다.
*골목산업이란 상점가의 매장에서 주민과 관광객을 대상으로 상품과 서비스를 판매하는 산업 활동으로, 소품/잡화점, 공예공방, 서점, 음식 주점, 숙박 등이 포함된다. 문화창조산업이란 사회에 축적된 다양한 형태의 지식과 정보를 인적/기술적 자원을 활용해 시장가치가 있는 창의적 제품과 서비스를 생산하는 산업 활동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