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주아 도시는 어디일까. 멀리서 찾지 않아도 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도시가 바로 부르주아 도시다. 도시 계획하에 설계되고 운영되는 현대 도시의 원형은 부르주아가 19세기 중반에 완성한 파리와 같은 근대 도시다. 그런데 우리는 부르주아 도시에서 행복한가? 행복하지 않다면 어떤 도시를 새롭게 만들어야 할까. 부르주아 도시의 역사가 제시하는 미래는 새로운 도시가 아니다. 공동체와 상생한 부르주아 도시의 원형, 근대 상업 도시다.
부르주아 도시의 기원은 중세로 거슬러 올라간다. 11세기 이후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상인과 수공업자 계층의 부르주아는 영주가 사는 성의 주변에 모여 살기 시작했다. 부르주아 이름 자체도 ‘부르그(Burg, 성)’ 안에 사는 사람을 의미한다. 부르주아의 경제력과 함께 중세 상업 도시도 팽창했으며, 이 중 피렌체, 제노바, 베네치아, 브루게, 뤼베크 등이 르네상스 시대와 근대를 연 중심 도시가 된다.
부르주아 도시는 산업 혁명을 통해 중세 상업 도시에서 근대 상업 도시로 발전한다. 대표적인 근대 상업 도시가 16세기 암스테르담이다. 최초의 근대 상업 도시답게 암스테르담은 1588년 스페인 군주를 몰아내고 공화국 정부를 수립함으로써 미국 혁명, 프랑스 혁명 등 부르주아 시민 혁명 시대의 도래를 알렸다. 당시 암스테르담에 망명해 살던 데카르트는 그곳에서 재화와 자유를 발견했다. 경제적 자유로 부를 축적했고, 축적된 부는 더 큰 경제적 자유를 누릴 수 있게 했다.
“생활에 필요한 모든 물품, 사람들이 바라는 모든 진기한 물품을 이토록 쉽게 구할 수 있는 곳, 이토록 완벽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곳이 세계에 어디 또 있겠는가?”
암스테르담의 공간적 구조는 상인의 도시였다. 서구 무역의 중심지답게 설탕, 향료, 커피, 도자기 등 수많은 신세계 상품이 항구로 몰려들었고, 암스테르담 상인들은 이를 수송할 수 있는 운하와 창고, 이를 거래할 수 있는 거래소를 건설했다. 상인들은 상업 공간과 생활 공간을 구분하지 않았다. 거주지의 일부가 창고였고, 일부가 생활 공간이었다.
근대 상업 도시의 중심에는 도시 운영에 필요한 교회, 시청, 그리고 다양한 비즈니스와 시장이 모여 있었다. 거주 지역은 귀족, 중인, 서민 지역으로 구분됐다. 귀족은 궁전, 성, 장원과 같은 공동체와 격리된 공간에서 생활했다. 귀족과 달리 수공업자, 상인으로 구성된 부르주아는 시장과 거리를 중심으로 삶터와 일터를 꾸렸다. 이들은 사회와 일상에서 격리된 공간에서는 생존할 수 없는 직업의 계급이었다. 부르주아 계급과 부르주아 도시가 부상함에 따라 도시 문화의 중심이 궁전에서 거리로 옮겨졌다. 궁전의 전유물인 미술관, 공연장, 도서관이 거리로 나온 것이다.
부르주아 계급은 대중이 접근할 수 있는 문화 시설을 적극적으로 건설하고 후원함으로써 스스로를 귀족과 차별화했다. 박물관, 미술관, 콘서트홀 등 우리가 향유하는 대중적인 문화 예술 시설은 부르주아 혁명의 결과물이다. 부르주아는 문화의 영역도 확장했다. 사람이 많이 모여 있고 걸어 다니는 시장과 거리의 문화가 새로운 문화로 등장한다. 도시의 거리를 산책하는 시민, 그들이 찾는 카페, 술집, 잡화점 등 상업 시설이 어우러져 만든 거리 문화가 도시 문화의 중심으로 진입했다.
새로운 부르주아 문화를 바탕으로 상업 도시를 넘어 근대 대도시로 확장한 도시가 파리다. 부르주아 혁명의 혼란이 진정되는 1830년대, 아케이드, 레스토랑, 카페, 가로등 등 우리가 근대 도시 문화의 아이콘으로 여기는 거리 문화가 파리에서 출현한다. 오염물로 가득했던 파리 거리가 새로운 형태의 도시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거리로 변신했다. 이런 거리 문화를 배경으로 산책자(Flaneur) 중심의 파리의 보헤미안 문화가 태동한다.
파리가 대표적인 근대 도시로 탈바꿈하는 과정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사람이 1860년 파리 개조 사업을 시작한 조르주 오스만 백작이다. 오스만 백작은 파리를 거리, 마을, 공원, 공공 미술 중심의 근대 도시로 탈바꿈했다. 오스만 도시 계획의 결과가 전차, 백화점, 레스토랑, 거리, 박람회, 미술관, 공원으로 대표되는 근대 문화의 탄생이다.『부르주아의 시대 근대의 발명』의 저자 이지은은 19세기 후반 파리를 극장, 광장, 루이 16세기의 복고풍 가구, 오리엔트 여행, 일본 도자기, 백화점, 박람회, 미식, 인상파, 아르누보의 유리 공예에 열광한 부르주아의 도시로 묘사한다.
산업화 과정에서 부르주아가 상업 도시만 건설한 것이 아니다. 맨체스터, 디트로이트 등 특정 산업에 특화된 수많은 산업 도시를 건설했다. 뉴욕, 보스턴, 시카고, 런던, 도쿄와 같은 상업 도시에도 대규모 산업 시설이 진입했다. 산업 시설, 자동차, 석탄 연료가 뿜어낸 매연은 이들 도시의 공기를 심각한 수준으로 오염시켰다. 1920년대 뉴욕, 도쿄, 런던을 방문한 조선의 지식인들은 하나같이 숨쉬기 어려운 공기에 대해 불평했다.
산업 도시의 공동화는 1950년대 본격화된다. 제2차 세계 대전 직후 시작된 미국의 탈산업화는 주민의 도심 탈출, 남서부 지역으로의 대규모 이주와 동시에 진행되면서 전통적인 산업 도시들을 초토화했다. 세인트루이스, 디트로이트, 클리블랜드, 버펄로 등 대표적인 산업 도시의 현재 인구는 가장 융성했던 1950년의 40~50% 수준에 불과하다. 전쟁 폐허같이 버려진 산업 도시의 도심은 대규모 인구 감소가 얼마나 무서운 현상인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런 추세에 변화가 생긴 것은 2000년대 중반이 되어서였다. 피츠버그, 클리블랜드, 시러큐스 등 몇몇 산업 도시가 간신히 인구 감소 추세를 극복하고 성장세로 돌아선 것이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미국 중서부의 산업 도시는 계속 인구를 잃고 있다. 미국의 도시학자 에드워드 글레이저(Edward Glaeser)가 단언하는 대로 산업 도시의 시대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탈근대에 접어든 현재의 부르주아 도시는 어떤 상황인가? 외형만 보면 부르주아의 중심지인 대도시는 계속 성장하고 있다. 미국 경제의 부흥을 이끄는 도시들도 대서양과 태평양 연안의 슈퍼스타 도시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악화된 소득 불평등 논쟁은 현대 대도시의 지속 가능성을 의심케 한다. 세계의 모든 대도시가 부동산 폭등, 주거 젠트리피케이션, 노숙자 등 내부 양극화 문제로 위기를 맞고 있다.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필자는 현대 대도시의 불평등은 상당 부분은 부르주아 사회의 폐쇄성에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부르주아는 경제적, 정치적 패권을 쟁취한 19세기 후반 이후 대중으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 후 계속적으로 악화되고 있으며, 국가별로 차이는 있겠지만 현대 부르주아 계층이 공통적으로 선호하는 키워드는 크게 자동차, 게이트, 부티크, 공원 네 가지다.
자동차는 현대 사회에서 중요한 부의 상징 중 하나다. 부자라면 남들이 부러워하는 고급 자동차를 다수 보유하는 것은 기본이다. 문제는 공간이다. 부자가 주차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교외의 대저택이나 도심 대형 아파트 단지에서 살아야 한다. 부자가 사는 도시의 도로도 자동차 이동이 편리해야 한다. 도심에 부자 지역이 있다면 그 지역은 자동차가 많이 다닐 수 있도록 대로 중심으로 구획된 지역일 것이다.
두 번째 키워드인 게이트(Gate)는 장벽을 의미하며 이 또한 현대 상류 사회의 계급과 신분 의식을 강하게 드러낸다. 이들은 스스로를 다른 계급과 격리하면서 계급의 정체성과 연대성을 공고히 한다. 현대 부르주아가 계급을 구분하는 방법은 주거지, 학교, 클럽이다.
상류 사회가 선호하는 주거 지역은 ‘게이티드 커뮤니티’다. 이는 자동차와 보행자의 유입을 엄격히 제한하고 보안성을 향상한 주거 지역으로, 거주민은 게이트와 울타리를 마련하고 경비원을 고용한다. 게이티드 커뮤니티는 일반적으로 교외의 주택 단지 형태를 띠지만, 도심에서도 주상 복합 등 아파트 단지를 통해 폐쇄성을 유지한다. 게이티드 커뮤니티는 코업(CO-OP), 주민회, 골프 회원권 등 다양한 방법으로 입주자의 자격을 심사하고 규제한다. 뉴욕 부르주아가 가장 선호한다는 어퍼이스트사이드(Upper East Side)에서 가장 들어가기 힘든 아파트가 주거 협동조합을 의미하는 코업이다. 코업에 입주하기 위해서는 협동조합 운영위원회의 엄격한 심사를 받아야 한다. 슈퍼스타 가수 마돈나,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의 입주 신청도 거부할 만큼 보수적인 기준으로 입주자를 심사한다.
또 하나의 게이트는 학교다. 현대 부르주아 도시는 공통적으로 학교의 입학을 제한하여 신분을 유지하고 통제한다. 어퍼이스트사이드에서 지역 내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 중・고등학교로 이어지는 학연은 신분 유지의 핵심 기재다. 거주지 학연은 궁극적으로 일류 대학의 상징인 아이비리그 진학으로 이어진다. 어퍼이스트사이드 상류층은 이런 학연과 혼인 관계로 부를 세속하고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주민이 선호하는 사립학교 입학의 기준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일류 학교에 진학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자격은 기존 학부모의 추천이다. 기존 상류 사회와 연고가 없는 사람이 진입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파크 애비뉴의 영장류(Primates of Park Avenue)』의 저자 웬즈데이 마틴(Wednesday Martin)에 따르면 부르주아 사회의 게이트는 입학으로 끝나지 않는다. 학부모 내부의 계급 구조를 극복하지 못하면 자녀가 학교 생활을 정상적으로 하기 위한 네트워크를 만들지 못한다.
마지막 게이트는 공식・비공식 클럽이다. 부르주아 도시에는 다양한 사교 클럽이 활동한다. 어퍼이스트사이드 사회도 메트로폴리탄 클럽(Metropolitan Club), 코어 클럽(Core Club), 예일 클럽(Yale Club) 등 맨해튼의 대표적인 사교 클럽 중심으로 움직인다. 어퍼이스트사이드에 위치한 미국외교협회(Council of Foreign Relations)도 뉴욕 부르주아의 사교 클럽으로 이해해야 한다. 골프 클럽도 부르주아 사회를 연결하는 중요한 사교 클럽이다. 공식적인 클럽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보이지 않은 비공식 클럽이 더 중요할 수 있다. 학교부터 고급 식당과 상점까지, 모든 고객은 동등하게 대우받지 않는다. 이들은 구성원 사이의 신분을 엄격하게 구분한다. 엄청난 규모의 부를 소유하지 않으면 어퍼이스트사이드의 최상위 클럽에 진입하기 어렵다. 돈만 강조하는 것은 아니다. 자선 행사, 미술관 후원회, 학교 이사회 등 지역 사회 공공재를 위해 많은 기부를 해야 최상위 클럽의 멤버가 된다.
세 번째 부르주아를 나타내는 키워드는 부티크다. 부르주아들은 신분적 차별성을 중시하기 때문에 대중이 모이는 상가는 기피한다. 대신 부티크가 모여 있는 쾌적하고 한적한 상점가를 선호한다. 어퍼이스트사이드에도 일반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고급 백화점과 부티크를 중심으로 상권이 형성되어 있다. 예술가와 창의적인 소상공인이 활동하는 골목 상권은 부르주아 지역에 어울리지 않는다.
마지막 키워드인 공원을 통해 부르주아 계급에게도 복잡한 도시의 일상에서 도피할 자연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퍼이스트사이드의 대표적인 공원은 센트럴 파크(Central Park)다. 이곳 주민들이 사랑하는 센트럴 파크에는 상업 시설을 찾기 어렵다. 주민들이 자연 그대로를 유지하고 싶어 해서일까? 다른 이유가 더욱 중요할 수 있다. 동네를 혼잡하게 하는 유원지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원지가 되면 원하지 않는 다양한 부류의 사람이 출입하게 되고 대규모 유동 인구는 상류 사회 지역의 삶의 질과 배타성(Exclusiveness)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한국에도 부르주아 도시가 존재한다. 한국 사람이 가장 선망하는 강남의 키워드를 살펴보자. 대로(大路)와 발레파킹은 자동차 도시에, 주상 복합과 학원과 골프 클럽은 게이티드 커뮤니티에, 백화점과 명품점은 부티크 상권에, 한강과 양재천 공원은 비상업적 공원에 상응한다.
현대의 많은 건축가는 부르주아 도시의 폐쇄성을 우려한다. 일부는 서울의 폐쇄적 주상 복합이나 요새같이 세워진 중정형 단독 주택을 ‘자폐 건축’이라고 비판한다. 자폐 건축은 생태, 친환경, 공동체 등 미래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와 충돌한다.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공동체 기피증이다. 부르주아 도시의 큰 숙제는 ‘건물 내부의 개인성과 건물 외부의 공공성’의 공존을 모색하여 창의적인 방법으로 익명성과 공동체의 균형을 회복하는 것이다.
20세기 도시 건축의 거장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는 자본주의 사회에 ‘(사회주의) 혁명이냐, (아파트) 건축이냐’는 물음을 던졌다. 열악한 주거 환경에서 신음하는 노동자를 위한 아파트 도시를 건설해야 자본주의를 구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었다. 르 코르뷔지에의 대형 신도시는 사회주의 실험이었을 뿐, 탈권위주의의 현대 사회에 적합한 모델은 아니다. 보행자, 거리, 공동체, 자연, 이웃이 탈물질주의 감성에 맞는 키워드다. 전상인 교수의 지적대로 사회학적 상상력으로 공간의 빈곤을 극복하고 새로운 대안을 찾아야 한다.
건축가 황두진은 ‘가장 도시적인 삶’을 제공하는 건축으로 일터와 삶터가 가까이 있는 ‘무지개떡 건축’을 제안한다. 세운상가와 같은 거리 친화적인 상가 아파트가 도심의 밀도를 높이고 공동체와 공존하는 도시 문화를 촉진하는 무지개떡 건축의 대표적인 유형이다. 역설적이지만 탈근대 도시의 원형은 근대 상업 도시에서 찾을 수 있다. 르 코르뷔지에는 고향 라쇼드퐁( La Chaux de Fonds)의 시계 공방 건축에서, 황두진은 산업화 시대 한국의 상가 건물에서 영감을 얻었다. 상업, 주거, 생산 공간을 같은 건물에서, 그리고 이를 도시의 거리에 촘촘히 배치한 근대 상업 도시가 도시의 익명성과 공동체를 동시에 실현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