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회에서 소개한 에이스호텔은 사실 본사가 자리한 ‘힙스터의 성지’로 불리는 포틀랜드의 지역색을 반영한다. 지극히 포틀랜드스러운 ‘Very Portland’ 한 ‘MADE IN PDX’가 바로 에이스호텔이다. 글로벌 브랜드로 도약한 에이스호텔뿐이 아니다. 포틀랜드의 수많은 스몰 브랜드와 로컬 브랜드가 포틀랜드 라이프스타일을 바탕으로 전국 브랜드로 발전했다. 그렇다면 포틀랜드는 어떤 도시이길래 로컬 브랜드를 배출하는 '힙'의 대명사가 됐을까?
'힙'한 사람을 의미하는 힙스터란 대중의 유행을 따르지 않고 독립성, 친환경, 다문화주의 가치를 중시하는 자신 고유의 대안적 라이프스타일 추구하는 사람이다. 포틀랜드가 힙스터 도시라고 불리기 시작한 시기는 1980년대 후반이다. 1980년대 초반 불황 이후 도시 경제가 침체되면서 값싼 주택을 찾는 예술가들과 공예가들이 이곳으로 유입됐기 때문이다. 당시 포틀랜드의 임금 상승률은 437%로 다른 35개 대도시 중에서 31위를 차지하며 상대적으로 낮았다. 주택 가격 역시 1984년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평균값은 미국 전국의 평균값보다 낮았다.
이들이 유입된 80년대 이전에도 포틀랜드에는 이미 환경, 유기농 식품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음악 축제 등을 장려하는 히피족들이 1960년대부터 거주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히피 문화는 1980년대에 들어서 힙스터 문화로 변모, 1990년대 나타난 창조계급의 부상을 견인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이곳의 인구다. 포틀랜드의 인구는 60만 명, 오리건 전체의 인구는 400만 명이다. 한국 기준으로는 포틀랜드는 경기 안산시, 충남 천안시, 전북 전주시 정도 규모이고, 오리건주는 경남 규모의 광역 단체다. 이 작은 도시를 유명하게 한 건, 포틀랜드만의 독립적인 라이프스타일 때문이다.
그리고 포틀랜드만의 독립적 라이프 스타일을 형성하는 데는 이 도시의 문화와 도시 정책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포틀랜드는 1980년대까지 다른 산업 도시와 마찬가지로 탈산업화, 도심 공동화, 환경오염으로 쇠락한 도시였다. 1980년대부터 지속 가능성을 전면으로 내세우며 친환경, 친공동체, 친소상공인 도시 정책을 추진해 창조 도시의 반열에 올랐다.
포틀랜드의 특징인 로컬 소비와 동네 상권 문화는 지역 환경 운동을 통해 축적되어 왔다. 대량 생산, 대량 소비가 환경과 공동체에 미치는 악영향 때문이다. 로컬에서 생산하는 독립 기업과 브랜드를 선호하는 것이다. 1979년, 우리의 ‘그린벨트’와 비슷한 ‘도시 성장경계선 Urban Growth Boundary’이 만들어졌는데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지키기 위해 일정 구역 내에서만 개발을 허용하는 법으로, 친환경 도시의 면모를 잘 보여준다.
온실가스 배출 감축에도 적극적. 2016년에 이미 온실가스 배출을 1990년 대비 17% 감축. 그 기간 미국 전체의 온실가스 배출이 7% 증가한 점을 감안하면 괄목할 만한 성과다. 자연을 사랑하며 지속 가능한 친환경 생활을 추구하는 태도가 지역의 브랜드, 소규모 제조업, 클러스터 계열의 제조사가 이끄는 크리에이티브 비즈니스 생태계에도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포틀랜드는 다른 도시에 비해 독립적인 소상공인 산업의 비중이 높은 도시다. 2015년 포틀랜드가 속한 오리건주의 고용에서 소상공인 산업이 차지한 비중은 미국 평균 49%를 상회하는 55%로 50개 주 중 8위에 올랐다. 독립 기업의 규모를 측정하는 ‘인디 시티 인덱스(Indie City Index)’에 따르면 포틀랜드는 인구 백만에서 3백만 사이의 메트로폴리탄 지역 중 6번째로 독립 산업의 규모가 크다. 포틀랜드를 앞선 도시는 산호제이, 오스틴, 투산, 뉴올리언스, 내쉬빌 정도다.
규모도 규모지만 포틀랜드 독립 산업이 특별한 진짜 이유는 창의성에 있다. 포틀랜드의 독립 가게, 로컬 크리에이터, 공예공방, 메이커스, 스타트업은 전국적으로 알려진 로컬 브랜드를 많이 배출한다. 포틀랜드에서 출발해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로컬 브랜드는 다양하다. 커피의 스텀프 타운 커피 로스터즈(Stumptown Coffee Roasaters), 코바 커피(Coava Coffee), 리스트레토 로스터즈(Ristretto Roasters), 수제 맥주의 데슈트 브루어리(Deschutes Brewery), 팻 헤즈 브루어리(Fat Head’s Brewery), 텐 배럴 브루잉(Ten Barrel Brewing), 로그 증류소&펍(Rogue Distillery and Pub House), 독립 서점의 파웰스 북스(Powell’s Books), 브로드웨이 북스(Broadway Books), 자전거의 조우 바이크(Joe Bike), 사가 프로파일즈(Saga Profiles), 호텔의 에이스 호텔(Ace Hotel), 유기농 슈퍼마켓의 뉴 시즌즈 마켓(New Seasons Market)을 꼽을 수 있다.
탄탄한 독립 브랜드를 기반으로 포틀랜드는 커피, 수제 맥주, 자전거 산업의 중심지로 성장했다. 2018년 인포그룹(Infogroup) 수제 맥주 도시 1위, 2018년 바이시클링 매거진 자전거 도시 5위(시애틀, 샌프란시스코, 포트 콜린스, 미니애폴리스 다음), 2018년 월렛 허브 커피 도시 4위(뉴욕, 시애틀, 샌프란시스코 다음)로 선정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포틀랜드 독립 산업이 활발한 더 근본적인 원인은 로컬 문화, 동네 문화, 환경주의, 힙스터 문화가 대표하는 도시 문화에서 찾을 수 있다. 로컬 중심 문화의 영향력은 포틀랜드 거리만 잠시 걸어만 봐도 느낄 수 있다. 편의점, 패스트푸드 등 다른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프랜차이즈 가게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2006년 월마트 매장의 진입을 저지한 것처럼 포틀랜드는 전통적으로 스몰 비즈니스와 독립 상점을 보호하는 도시로 유명하며 지역 상품 구매를 독려하는 ‘바이 로컬(Buy Local)’ 소비자 운동도 활발하다.
시정부의 동네 상권 정책 또한 로컬 브랜드 발전에 기여한다. 포틀랜드는 하나의 통합된 도시라기보다는 여러 동네가 네트워크를 형성한 도시다. 그만큼 동네와 동네 상권이 정체성이 뚜렷하고 독립적인 경제 단위로 중요하다. 포틀랜드는 지역을 중심부, 산업 지역, 대학 지역, 동네 상권(Neighborhood Business District)으로 구분해 관리하고 지원, 현재 50개 지역이 동네 상권으로 지정돼 있다. 동네 상권은 포틀랜드 총고용의 1/4을 담당하는 중요한 산업이다. 동네 상권에서 활동하는 소상공인은 2만 명에 이를 정도다. 시정부는 지역 주민과 소상공인이 협동조합 등의 주민 협의체를 조직해 상권에 필요한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을 하도록 권장하고 지원한다.
지금까지 살펴봤듯 포틀랜드 경쟁력의 원천은 고유의 라이프스타일이다. 친환경주의, 독립문화, 로컬리티 등 포틀랜드가 대표하는 라이프스타일은 앞으로 글로벌 생활문화를 선도할 탈물질주의 라이프스타일이다. 포틀랜드 모델의 관건은 라이프스타일과 창의성의 결합이라 할 수 있는데 고유의 라이프스타일을 지속 가능한 생산문화로, 즉 새로운 산업과 비즈니스 창출의 동력으로 활용한다면 힙스터 도시로서의 명성은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강릉, 목포, 춘천 등 넥스트 포틀랜드를 꿈꾸는 한국의 도시가 집중해야 하는 분야도 고유의 라이프스타일일 것이다. 서울과 같아져야 한다는 단기적 사고방식이 아닌 시간이 걸리더라도 지역에 기회가 있다고 생각해 잔류하거나 돌아올 인재를 도와줄 방법을 강구해야 하고, 무엇보다 무조건 따라 하기 식이 아닌 차별성에 중점을 두고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간과해선 안될 것은 창조인재의 혁신성을 뒷받침한 로컬 소비다. 포틀랜드 시민들이 자유롭고 독립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즐기면서 유기농 음식, 수제 맥주와 커피, 독립 서적을 소비하지 않았다면 포틀랜드의 창조성은 지속 가능하지 못했을 것이다. 포틀랜드 창조도시성의 원천은 결국 다름 아닌 시민들이었음에 주목해야 한다.
포틀랜드 모델을 한 문장으로 요약해보자.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는 커뮤니티 비즈니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