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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목길 경제학자 Apr 13. 2021

히피 문화를 파는 홀푸드마켓

미국에서 좀 산다 싶은, 수준 높은 도시라면 반드시 있어야 하는 곳, 뉴욕 출신은 아니지만 까다로운 뉴요커들의 생활 문화 중심에 자리 잡은 이곳. 할리우드 배우들의 파파라치엔 이곳에서 장을 봐서 나오는 모습이 쉽게 포착되곤 하는데, 이곳은 바로 유기농 제품만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홀푸드마켓(Whole Food Market, 이하 홀푸드)이다.

      

홀푸드는 그동안 월마트 등 대형 할인점이 이끌었던 유통업계의 판도를 바꾸며 자신들만의 경영 철학과 가치관으로 특히 건강과 환경을 중요시하는 소비자들에게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이 마켓이 어떤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를 전개해왔는지 이번 리뷰를 통해 알아보도록 하겠다.



홀푸드 경쟁력

      

1980년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두 명의 사업가가 직원 19명과 함께 단출하게 시작, 2020년 현재는 총 500여 개의 점포를 운영하고 있고 2017년 160억 달러의 순매출을 달성하는 등 홀푸드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경기침체 속에서도 매년 10% 이상의 매출 신장을 기록하면서 미국의 유통업계뿐만 아니라 산업 전반에서 새로운 기업의 모델로 각광받고 있다.      


게다가 회사의 기업 평판은 미국 최고 수준이다. 미국의 경제지 포춘(Fortune)에서 선정하는 ‘일하기 좋은 100대 기업’ 순위에 16년간 꾸준히 이름을 올렸을 정도로 매출로 보여주는 성과와 더불어 업무 환경 역시 좋은 평가를 받고 있어 그야말로 대내외적으로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는 기업이다.           



그런데 이런 성과를 이루는데 가장 중요하게 작동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이 기업이 사업 초기 때부터 일관되게 경영철학으로 삼고, 기업의 모토로 내세우고 있는 이 문구에 담겨있다고 할 수 있다. Whole Foods, Whole People, Whole Planet. ‘완전한 식품, 완전한 인간, 완전한 지구’라는 이 기업의 모토는 인공적인 요소가 가미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식품, 인간, 지구를 의미한다. 눈앞에 보이는 이윤보다 고객의 건강과 사회 환경을 우선시하는 홀푸드가 무엇을 추구하는 기업인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다.


그럼 구체적으로 홀푸드는 이 모토를 어떻게 실천하고 있을까? 우선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자연식품을 엄선해 소비자들에게 제공하는 것이 첫 번째 핵심 가치다. 홀푸드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단어가 오가닉, 내추럴, 무첨가이다. 대형 유통기업들이 자사의 유통망을 통해 공급자들에게 제품을 조달받는 형태와 다르게 홀푸드는 매장이 있는 지역 내의 원재료 공급자들을 최대한 활용한다. 본사에서 전체 매장들을 관리하는 게 아니라 각 매장의 책임관리자들이 지역 공급자들과의 공급망을 통해 식재료를 공급받기 때문 가능한 일이다. 물론 결정한 상품은 본사의 철저한 품질 기준을 통과해야 한다.    


또 다른 엄격한 기준은 매장에 판매될 수 있는 제품은 동물 학대를 하지 않은 것이어야 한다. 닭ㆍ돼지ㆍ소 등 모든 육류는 ‘우리나 새장 등에 갇혀 있지 않아야 하고 다리를 뻗을 수 있어야 한다’는 규정을 지켜야만 납품을 할 수 있다. 동물학대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푸아그라를 사려고 한다면 홀푸드 대신 다른 마켓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홀푸드의 신조가 실제로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가장 잘 드러낸 대표적인 사례가 있다. 2013년 3월 미국 정부가 유전자 조작 농산물을 이용한 식품 생산과 판매를 전면 허용하자 미국의 시민단체와 환경단체가 크게 반발했다. 다른 식품 판매점이 식품 회사의 압력으로 GMO 표기를 주저하는 사이, 홀푸드는 2018년까지 모든 판매 상품에 자발적으로 유전자 조작 농산물 포함 여부를 표기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같은 결정을 한 이유를 홀푸드는 뭐라고 설명했을까? 홀푸드는 ‘GMO를 전혀 함유하고 있지 않다고 표시한 어떤 제품의 경우  매출이 15% 늘었다면서 GMO 표시는 고객들의 요구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GMO 포함 식품을 원하지 않는 소비자의 요구에 부응하는 것이 오히려 비즈니스에 유리하다고 주장한 것이다.      


평소 창업자이자 CEO인 존 맥키가 “사람은 먹지 않고 살 수 없다. 기업 역시 이익을 남기지 않고는 살 수 없다. 사람들 환경에 유익한 친환경 식품을 판매하면 기업도 살고 사람도 살 수 있다”라고 경영 철학을 밝혀 왔는데 앞선 결정도 그런 홀푸드의 확고한 경영 방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같은 행보에 대해 소비자들은 적극적 지지를 보냈다. 내가 조금 더 비싼 돈을 주고 홀푸드의 제품을 사지만 그것이 나를 더 건강하게 만들고, 나를 더 윤리적인 사람으로 만들어준다는 인식이 결국은 내가 홀푸드를 이용함으로써 남들과는 차별화된 라이프스타일을 사는 사람이라는 하나의 상징으로서 작용하기 때문이다.

      

라이프스타일을 중시하는 소비자는 건강과 환경을 가격만큼 중요한 가치로 추구한다. 그리고 건강과 환경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고 값이 조금 비싸더라도 가치 있는 물건에 돈을 쓰고 싶어 하는 소비자가 만족할 만한 제품을 판매하기 때문에 이 같은 성공이 가능했다. 진정성을 원하는 소비자의 욕구를 누구보다도 잘 충족시켰다고 할 수 있다.




홀푸드와 오스틴 라이프스타일

      

그런데 홀푸드의 성공요인 중에서 한 가지 주목할 점이 있다. 필자는 독자에게 홀푸드가 미국 내 다른 지역이 아닌 왜 텍사스 오스틴에서 시작됐을까?라는 질문을 하고 싶다. 아마 독자들 중에는 그냥 거기 CEO 고향 아니야?라고 생각할 텐데, 실제로 그 답이 정답에 가깝다. 홀푸드가 첫 매장을 연 사우스 오스틴 지역이 이 질문의 열쇠를 쥐고 있다. 홀푸드마켓은 1980년 히피족 2명이 사우스 오스틴, 정확히는 사우스러마(South Lamar) 거리에 세운 1호점에서 시작, 그리고 사우스 오스틴은 오스틴의 대표적인 히피 지역이다.      


홀푸드가 히피 지역에서 처음 개점한 것은 단순한 우연은 아니다. 히피 이전에도 미국에는 자연식품 운동이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탄력을 받은 계기는 1960년대 히피 문화의 시작이다. 히피 문화는 1980년대 생태주의 운동과 최근의 로하스 운동(LOHAS: Lifestyles Of Health And Sustainability)의 효시라고 할 수 있다.      


히피족은 기존의 권위와 주류 문화를 거부하고 대안적 삶을 사는 사람으로 친환경, 자연과 가까운 삶을 추구하는 히피족이 대기업이 만들어낸 상업적 인공 식품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히피족이 시작한 자연식품 운동은 1980년대에 나타난 소위 여피(Yuppie)로 불리는 전문직 직장인이 외모와 건강미를 중시하기 시작하면서 주류 문화로 흡수됐고 홀푸드는 이러한 시장 변화를 적극 활용해서 비즈니스를 펼친 덕에 일부 히피족과 기호가만 찾던 자연식품 가게에서 미국 상류층 소비자의 문화 아이콘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그리고 히피 문화는 세월이 지나면서 오스틴을 대표하는 문화가 됐다. 1960년대의 과격한 히피 문화가 독특한, 그리고 트렌디한 생활 문화로 진화함으로써 히피 문화에 대한 일반 시민의 거부감도 상대적으로 줄었고

오히려 히피 지역에서 독특한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며 활동하는 예술가와 음악가가 오스틴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들었다. 이제 오스틴 사람도 오스틴의 색다른 문화를 자랑스럽게 내세우는데 오스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슬로건은 “Keeping Austin Weird”로, 직역하면 오스틴을 별나게 유지하자는 뜻이다.     


오스틴에서 히피 운동이 활발했다는 것은 오스틴이 그만큼 자유롭고 개성 있는 라이프스타일을 존중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Forbes)는 “1960년대 정신이 살아 있고 혁신과 창의성을 강조하며 자유분방한 정신을 장려하는” 도시로 오스틴을 소개하기도 했다. 이렇게 오스틴의 히피 문화를 자양분으로 성장한 홀푸드 마켓은 오스틴의 자랑스러운 성과로 여겨졌다. 



아마존, 홀푸드 인수


그런데 2017년 6월 16일 홀푸드 고객들에게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아마존이 홀푸드를 137억 달러(15조 5000억 원)에 인수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일단 당시 시장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보통 인수 발표 후 인수한 기업의 주가는 자금 부담 때문에 떨어지기 마련인데, 오히려 아마존의 주가는 급등하여 아마존 기업가치 상승분이 홀푸드 인수 가격을 넘어선 것이다. 금융시장이 홀푸드의 인수가 아마존의 미래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인정한 것이다. 그리고 2020년 9월 아마존은 온라인 배송 전용 식품 슈퍼 '홀푸드 마켓'을 오픈했다. 코로나 19 여파로 식료품 온라인 판매 시장 경쟁이 격화되면서 한층 우위를 점하기 위한 전략으로 여겨지는 대목이다.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융합의 추구하는 아마존은 앞으로 홀푸드를 신선 식품의 오프라인 플랫폼으로 활용할 것이다. 아마존 신선 식품의 오프라인 체험장이자 식선 제품을 배달하는 동네 물류센터로 기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홀푸드가 시작되고 성장한 오스틴 사람들의 상실감은 엄청났을 것이다. 게다가 제2의 실리콘 밸리가 되기 위해 시애틀과 오스틴은 오랫동안 경쟁해왔는데 시애틀의 자랑이 아마존이라면, 오스틴의 자존심은 홀푸드였다. 향토기업을 잃게 된 오스틴 시민들이 안타까우면서도, 아마존의 홀푸드 인수 사례를 통해 전국 통합 비즈니스 모델의 한계에 대해서도 점검할 필요가 있다.



유기농 슈퍼는 로컬 비즈니스

      

그렇다면 홀푸드는 왜 지역 기반 비즈니스 노선을 포기하고 전국 통합 비즈니스 모델을 선택하게 됐을까? 1984년 휴스턴 시장을 시작으로, 홀푸드는 공격적인 투자와 마케팅, 인수합병으로 전국 시장에 진출했다. 전국 진출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결정이 있는데 무엇일까? 바로 상장. 전국화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홀푸드는 1992년 나스닥에 상장했다. 전국화 노력으로 홀푸드는 해마다 놀라운 성장을 거듭해, 2017년 연 매출 160억 달러에 달하는 미국 최대의 유기농 슈퍼마켓이자 가장 영향력 있고 일하고 싶은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렇지만 기업 공개와 전국화, 그리고 경쟁 압박은 서서히 창업 이념을 지키기 어려운 상황으로 홀푸드를 내몰았다. 크로거, 월마트 등 경쟁 슈퍼마켓이 유기농 식품을 판매하기 시작하자, 단기 실적과 비용 절감에 대한 투자자의 압박은 거세졌고 경쟁 기업의 유기농 시장 진입은 장기적으로 홀푸드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리고 그 사이 유기농 시장이 보편화되어 홀푸드가 다른 가게보다 비싼 가격을 요구할 명분도 사라졌다. 


계속되는 위기 속 돌파구가 필요했던 홀푸드는 주가가 2013년 65 달러에서 최고점을 찍은 후 하락하면서 원칙과 타협하기 시작했다. 전국을 12개 지역으로 나눠 지역 단위로 구매하던 정책을 포기하고 중앙에서 구매하는 방식으로 전환,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자체 브랜드(PB) 판매를 늘려 2016년 매출의 20%까지 높였다. 그리고 2016년에는 저가 매장인 ‘386’을 출시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경영실적은 개선되지 않았고 투자자의 압력을 이기지 못한 홀푸드는 결국 2017년 6월 아마존에 매도하기로 결정했다. 


결과만 놓고 보면 맥키의 전국화 모델은 지속 가능하지 않은 것으로 판명됐다고 볼 수 있다. 홀푸드의 전국 통합 모델에 대한 재평가는 친환경 슈퍼마켓 산업은 전국 기업이 아닌 지역 기업이 경쟁력을 가진 분야라는 주장에 힘을 실어 준다. 초심을 잃지 않고 지역 슈퍼마켓으로 남았다면 더 오래 자신의 경영 철학을 지켰을지도 모른다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홀푸드의 경쟁력은 라이프스타일의 진정성에 있었다. 지역에서 구축한 생태계를 기반으로 미국 유기농 슈퍼마켓을 석권한 것이다. 하지만 전국 체인으로 확장하는 과정에서 지역과의 관계가 단절됐다. 지역에서 생산되는 안전하고 신선한 유기농 식품이라는 이미지라는 진정성이 훼손된 것이다.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 지역 생태계로 진정성을 확보해야 성공할 수 있다. 


정리하면 홀푸드 사례의 교훈은 세 가지다. 첫째, 홀푸드마켓은 히피 운동에서 시작됐다. 둘째, 유기농 슈퍼는 로컬 비즈니스다. 셋째,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의 경쟁력은 지역 생태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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