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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 Apr 05. 2020

<미드웨이>-꼰대 정신과  싸우다

이 시점에 인류가 싸우고 있는 적은 누구인가?

스포일러는 역사에 나와 있습니다.


이미 다 아는 스토리라고 이야기하고

영상과 전쟁 씬, 스케일, 배우의 연기 등등

영화 그 자체에 관련된 내용만 이야기하면

이 영화에 대한 감상은 그저 머릿속에서

방전되듯이 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영화는 메시지를 잘 구성해냈다.

역사의 모든 디테일을 있는 그대로 전부

구현해내지는 않았지만,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의 스태프가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는

정확하게 던져졌고, 일본에겐 비극이지만

미국의 반전적인 성격의 승리 스토리는

미국과 일본, 중국이라는 삼국의 역사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었다.


영화를 잘 만들어냈다는 정도 수준에서

위력적인 블록버스터가 전쟁씬을 잘

그려냈다고 말하고 나면, 끝이겠지만,

미드웨이라는 영화를 보기 전까지

이 코로나로 뒤덮인 지구의 한구석에서

갑자기 나는 "미드웨이"를 둘러싼

"2차 대전 태평양 전쟁사" 전체를

복기해보고픈 마음이 생겼고,

미드웨이의 전후를 둘러싼 "밀덕"들이

웹상에 상세하게 올려놓은 이야기들을

두루두루 읽게 되었다.


시간이 가는 줄 모르도록 그 이야기는

고구마 줄기처럼 이곳저곳의 역사적

사실을 연결시켜서 끌어올렸고,

왜 "일본"은 "태평양"에 있어서는

제해권과 제공권을 압도적으로

갖고 있는 단일 국가였음에도

무너질 수밖에 없었고, 결국

패망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동시에 그 당시의 패망의 원인이랄 수

있는 단선적이고 수직적인 사고 구조의

"군국주의"가 그대로 남아 지금의

"일본"정부가 아직도 그 어리석은 일을

다시금 어떻게 반복하고 있는가를 깨닫게

해주었다.


아직도 "바보"의 "정신"이, 좀 더

시대에 맞게 이야기하자면 "꼰대"의

"Latte is a Horse" 정신이, "일본"을

통해 "한국"으로, 지금 우리의 일부분의

"꼰대 정신"속에도 이식되어 있는가를

여실히 한번 더 잘 알 수 있었다.


그 꼰대의 정신이란 다름이 아닌

"군국주의" 또는 "전체주의"라 불리는

상방이 무조건 권력과 권위를 독점하는

수직적이고도 비효율적이고 비효과적인

의사 결정 구조에 사로잡힌 정신을

의미한다.

https://www.google.com/amp/s/cm.asiae.co.kr/ampview.htm%3Fno%3D2016091907043359383

물론, 제대로 선 권력과 권위 없는 국가나

하부 조직은 제대로 기능할 수 없다.

그러나 현실을 제대로 보고 논의하고, 수집된

정보와 상황을 토대로 제대로 된 방안을

수립하고 싸워야 하는 개념이 없다면

그것은 군대가 되었던 국가 자체가

되었든 간에 그러한 개념을 가진 상대에게

질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그것을 우리는 "전체주의"라고 한다.

이 경직된 사고는 "인종주의"와도 결합하고

"국수주의"나 "극단적인 정치적 이상"과

결합해서 인류에게 강력한 고통을 선사한다.

그 위의 한 줌도 안 되는 특권층을 위해.

좀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그들의

“쾌락"을 위해서다.



국민학교 때 읽었던 처칠이 만든

"태평양 전쟁사"를 떠올리자면,

일본군과의 공방이 현란하게 기술된

이 해전사의 기억은 비참하게 침몰한

여러 척의 영국 항공모함 및 구축함에

대한 기록 몇 가지만 나타날 뿐이다.

Wales는 영국에겐 일본 해군의 야마토만큼의 위상을 가진 구축함이었다. 그러나 가라앉고 말았다.

처칠의 입장에서야 영국의 재해권이

유명무실해진 태평양 전쟁사는 연합국이라는

우산 아래 같이 싸웠다는 것 외에는 사실

비극뿐이었던 태평양에서의 해전을

미국과 일본의 객관적인 역사적 근거를

충분히 조사한 뒤에 작성할 만큼의

중요성을 갖고 있지 않았던 것 같다.


주옥같은 영국의 항공모함 등이 대파당하고

바닷속으로 가라앉은 것 외에는 크게

기술할만한 요소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과 일본 간의

치열한 정치적인 수싸움과

이합집산을 반복했던 전반적인

역사는 언급되어 있지 않았기에

뒤늦게나마 다시 돌아본 미일 간의

거대한 태평양 상에서 벌어진

치열한 공방은 갑작스럽게

쏟아지는 엄청난 량의 디테일을

뿜어냈고 그것은 기억이 담을 수 없는

방대한 데이터와 더불어 있는 내용이었다.


역사상 실제로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일대를 침략하고

남아시아 일대로 진출해서

말 그대로 태평양 전부를 자기

것으로 만들고자 했던 일본의

거대한 야망은 우리에게도 피해를

끼치고, 난징의 대학살 등을 통해

중국에도 피해를 끼쳤으며, 러시아와

대만도 충분 이상으로 수탈을 당하는 등

여러 국가와 민족에게 고통을 확대했던

것이다. 이건 그 누구도 부정할 수도 없는

역사상의 진실이고, 이를 합리화하는

일본의 우익의 행태는 그저 적반하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뿐이다.


이 과정에서 이념이든 정의든 상관없이

영국 등의 유럽 국가 연합국과

독일과 일본, 소련 모두에게 무기와

석유, 물자를 팔아 재끼면서

자신의 북중남미 식민지를 유지하고

맘 편히 세력을 불려 나가려 했던

미국 간에는 사실 전쟁이 벌어질만한

충분한 필연성은 없었던 상황이었다.




영화의 초반에 그런 둘 간의

복잡한 관계에 대한 역사적인 내용은 같이

한자리에서 벌어진 연회에 나란히

참석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두 국가 간의 요인들의 모습에서만

짧게 그려진다. 그 둘은 사실 그저 같이

식민지를 나눠갖고, 비즈니스를

확대해가는 사이좋은 동반자였다.

약자를 뽑아먹고 그 과정에서 나온

이익을 공유하는 중이었다.


이 과정에서 침략전을 계속 확대해

나가기 위해서 미국으로부터 석유를

사 와야만 했던 일본은, 중국으로부터

물러나지 않는다면, 더 이상 일본에

석유를 팔지 않겠다는 통보를 듣는다.

미국은 일본으로부터 그렇게 했다간

뜨거운 맛을 볼 것이라는 협박을

듣게 된다.


일본은 중국에 대한 정복을 공고히 하고

남아시아로의 식민지 확대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갖고 있지 않은

중요한 자원인 석유가 그 무엇보다도

절실했던 것이다. 러시아의 석유를

시추할 기술이 있었다면 그쪽으로

갔겠지만 역사엔 만약이란 없다.

일본군의 복식은 매우 세련되게 나오고 군인들의 경직된 인상은 표준화된 방식으로 연기된다. 만만치 않다는 인상을 주도록.

그러나 그것을 얻고자 하는 방법이

미국을 협박하고 공격해서 협상의

자리로 끌어내어 조약을 맺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과신"에 의한 전략으로

갔던 것은 "꼰대의 정신"에 의한 착시

외에는 딱히 설명할 말이 없다.


그들은 당시 산업에 있어서 최대의

생산국인 미국의 저력을 과소평가했었고,

이를 경고하는 자국 내의 엘리트들의 의견을

일언지하에 무시하였다. 그 결과, 제대로

잠든 사자의 코털을 뽑는 일을 하게 된다.



이런 내용을 중등 교육 이상을 받았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정리하니

이 협박을 한 이후에 바로 진주만에 대한

폭격으로 이어지게 되는데, 이 전후의

이야기를 뛰어넘어 진행되는 스펙터클한

폭격 씬은 이 영화가 매우 고전적인

전쟁물임에도 불구하고 시선을 잠시도

화면에서 떼놓을 수 없도록

밀도 높게 진행된다.


고증과 조금 어긋난 부분이 있다면

당시의 국가 간 정규전의 이른바

에티켓을 벗어나 제대로 된 선전포고도

없이 일본군 "제로센"기 등의 전투기의

엄청난 항속 거리 등을 이점으로

진주만을 공격한 일본 함대가

미국보다 진일보하고 보다 현대적인

기술을 가진 군대로 언급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물량과 규모 면에서

당시의 미국 태평양 함대는 일본

함대보다 밀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1. 그러나 일본 함대는 미군이 갖고

있던 "레이더"를 갖고 있지 않았다.

육안으로 식별하고 이후에 공격을

하는 전통적인 방법 외에 결과적으로

계속 밀릴 수밖에 없었던 중요한

기술의 차이가 있었다.


2. 일본은 기술과 물량, 병법의 기본이랄

수 있는 적을 알고 나를 알면

위험에 처하지 않는다는 기본을

잃고 있었다. 카미카제 정신으로

무장하고 전쟁 중에 죽은 군인을

우선 진급시키는 사이비 종교집단의

모습을 유지했다. 순교를 강요하며.


3. 진주만 공격 당시 일본이 성공적일

수 있었던 이유 중에는 치밀한 보안이 중요한

역할을 했었으나, 한번 기습이 성공한

이후에는 승자의 과신에 빠지면서

보안을 누설하고, 암호를 해독당하는

상황 자체에 둔감해졌다.

진주만에 대한 공습은 중일 전쟁 및 러일 전쟁 그 어디서도 제대로 선전포고를 하지 않았던 일본의 비열함과 더불어 나온다.


진주만의 성공적인 기습 이후에도

미국이 석유를 제공하겠다는 전제조건으로

일본과의 협상의 자리로 나오지 않고,

미국 국민 전체가 일본에 복수해야 한다는

참전의 의지를 밝히면서 예상과는 다른

반응을 보이자, 일본의 "꼰대"는 한번 더

미국의 기지를 공격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AF"라는 이름으로 이미 미국이 포착한

일본의 교신 내용에서 반복된 "미드웨이"로

추정되는 공격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지하

케이블 통신망을 통해 이미 일본군이 접근

불가한 교신을 할 수 있었던 미군은 일부러

전파 통신망을 통해 "미드웨이"의 "담수화

설비(바닷물을 식용/산업용 담수로 정수하는

설비)” 고장 소식을 흘리고, 이와 동시에

일본 해군이 이 내용 그대로를 "AF"의

정보로 인식하는 통신을 포착했다.


이후, 미 해군은 어느 방향으로 어느 시간에

일본 해군이 침공해올지 5도의 방향과 5분의

오류만 남기고 미리 파악하고 있는 상태가

되어 있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만큼이나

"꼰대 정신"에 결합한 "승자의 저주"를

뒤집어쓴 일본 해군은 잘못 파악한 정보를

근거로 "담수화 설비"를 수리할 필터까지

담은 배를 끌고 "미드웨이"를 어수룩하게

쳐들어가기까지 했다.



히틀러는 일본이 자신과 연맹 또는

주축국의 일부가 되기로 마음먹고

공동의 적인 러시아의 함대를 궤멸시키는

등의 전과를 일본이 올리자 "3천 년간 (본토를

공략당하지 않아) 진 적이 없었던 나라와

한편이 되었다"라고 자화자찬했다고 한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독일과 일본 간의

과신은 진주만 공습의 성공 이후에

보안 유지와 상대방의 정보에 대한

파악에 둔감한 모습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리고 한 번도 당한 적이 없었던 일본의

본토에 대한 공습을 미국의 "둘리틀 특공대'의

폭격에 의해서 내륙 한복판에 당했다.


당시 기술로 대륙간 폭격기의 이동은

미국과 일본 간에 이뤄질 수가 없었다.

항공모함에 실을 수 있는 함대 기는

어뢰로 공격하는 뇌격기나 항모나 전함 등에

직접 폭탄을 떨어뜨리는 급강하 공격기,

전투기 정도 밖에 없었기에 항모의 짧은

이륙 거리를 날아 폭격기를 이륙시키고

이를 일본 공습 후에 중국에 착륙시켜서

탈출하는 작전을 일본제국의 "꼰대"들은

상상할 수도 없었고, 포착할 수도 없었다.

진주만 공급에 대한 거의 즉각적인 반격은 "둘리틀 특공대"의 전대미문의 작전을 통해 수행되었다. 일본 폭격 후 미군을 도왔던 중국인은 대학살을 당한다.

도쿄 등을 폭격하고 중국을 통해

귀환한 미군을 도왔다는 이유로

일본은 25만 명의 중국인을 다시금 학살했다.


이런 만행과 무지를 저지르고도 반성하지

않는 이들이 일본 우익이고 아직도 그들은

그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꼰대 정신"의

소유자들이다.


그렇다. "꼰대 정신"과 더불어 "코로나

바이러스"를 키우며 바로 우리 옆에

있는 국가가 바로 이 영화 속의

"우리의 적"으로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 적의 정체는 다름 아닌 "전체주의"다.

"꼰대 정신"의 좀 더 공식적인 이름이

이것임을 이젠 누구도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이 "꼰대 정신"을 가진 국가의 지도 계층은

국민이 죽건 말건, 자신의 주변 국가의

누가 죽건 말건 간에 자신의 "아집과 고집"을

지키기 위해 제대로 된 정보나 사태에 대한

파악 없이 "전쟁"을 일으키거나 "분열"과

"적대감 확대", "편견 주입", "탄압", "은폐" 등의

온갖 부작용을 가진 수단을 모두 사용한다.


그러나 지금의 시대에 꼰대는 2차 대전처럼

"독일"과 "일본", "이탈리아" 등의 전체주의

국가의 지도자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자국의 "우한"에서 급속 확대된 "코로나",

공식적인 명칭은 "사스"의 변형된 이름이다.

이 바이러스의 확대를 상부에 보고할 수

없도록 경직된 "시진핑"의 중국 정부의

"꼰대 정신"이 초기 사태 확산에 일조했다.


그리고 우리나라로 넘어온 이 바이러스는

일면 잘 차단되는 듯 보였지만, "전체주의"나

"꼰대 정신"의 극단인 "사이비 종교 집단"의

"선민 주의 정신"이 이 나라 내에서 폭발적인

바이러스의 확산을 일으키는데 일조를 했다.


"이탈리아"는 이미 그전부터 선진국이라는

세간의 인식과는 다른 후진적인 행정 능력과

정치 지도자의 "꼰대 정신"으로 나름 유명한

국가였다. 이에 인구 고령화 위험까지 더해진

상태에서 급작스러운 바이러스 확대와 높은

치명률로 유럽 전체를 위협하는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미국의 지도자는 모두가 알고 있는

"미국을 더 위대하게"하기 위해 "다른 나라는

어찌 되든 상관없이"를 외치고 있다. 트럼프는

대통령 답지 않은 정보와 비정상적인 확신을

가지고 미국에서 폭발적인 확진자의 증가를

방치했었다. 짧지 않은 시간 내에 중국을

능가하는 확진자 수와 사망자 수를 기록한

배경엔 그의 "꼰대 정신"의 영향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가장 무서운 상태로 남아 있는 국가는

이 시점에서 "일본"이 아니랄 수가 없다.

2차 대전 전의 영광, 공교롭게도 그 대전

당시와도 유사하게 다가온 전 세계 경제의

공황 전 분위기, 높은 부채로 인한 재정 악화

등을 겪고 있는 일본의 지도자는 그때의

"군국주의"와 크게 다르지 않은 "꼰대 정신"을

승계한 "아베"다.


단지, 도쿄에서 개최하기로 예정된 "올림픽"을

제 때 치르기 위해 그는 정보를 통제하고,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파악된 "확진자"와 "사망자" 등의

정보 노출을 막기 위해 진단을 최소화하고,

재외 국민이 탑승하고 있는 "크루즈"들의

입국을 막고, 선박 안의 일본인 확진자 수를

자국의 통계에 넣지 않는 등의 비합리적인

방법을 통해서 "바이러스"의 보이지 않는

확산을 도왔다.


이제 제대로 대응코자 하지만 여전히 그는

"꼰대"다운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일본 국민은 경각심을 제대로 갖지 못한

상태에서 취약해 보인다.


"미드웨이"에서의 일본 해군 함대의 대파

그리고 이어지는 이후의 해전과 남아시아

일대의 일본 육군의 연쇄적인 대패에는

"아베 정권"의 실패와 겹치는 "현상에 대한

은폐"와 비정상적인 "군국주의 정신"의

강요, 정확한 정보와 기술을 기반으로

하지 않은 대충의 판단이 계속적으로

겹쳐 있다.

일본 국민이 코로나에 감염되던 말던 그는 재선 되고 싶었던 것이다.

전범으로서 어설픈 자살까지 시도했던 "도조

히데키"는 자살에 실패해서 붙잡힌 뒤 진행된

재판 과정에서 미군인과 대화하는 중에

"민주주의 국가"에서 개방된 교육을 받은

일개 군인의 인식 수준이 높고, 사고 능력도

높다는 데 대해서 (립 서비스도 있겠으나)

좋은 평가를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후회한

것이 진작에 이 같은 국가와 제대로 이야기를

나누지 않은 것이었다고 한다.

그런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그는 사형당했다.

당시 일본인들에게는 제대로 자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욕을 먹었었다. 머리에 쏠 총을 심장에 쏘려고 하다 살았던 위인

"꼰대 정신"은 "꼰대" 자체만 "바보"로 남겨

두는 것이 아니다. 그를 따르는 모두를

그와 같이 만든다. 일본 국민은 그 때나

지금이나 뭉쳐서 부당한 권위에 제대로

저항하지 못하는 역사를 지속하고 있다.

 


"미드웨이" 해전에서 진 것은 사실

"일본"이라는 국가가 아니었다. 오히려

진 것은 국가의 내용물인 "꼰대 정신"이었다.

그 과정에서 미군조차 자신 안의 "꼰대"를

발견했었다. 이 꼰대의 영향력을 벗어나지

않았다면, 태평양 해전의 향방은 또한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무기 부서의 가장 높은 장군이 무기

회사로부터 대가를 받은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본질이 누구의 말도 잘 듣지 않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는지. 어쩌면

그 둘 다 결합된 상황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적의 군함에 맞지 않는 "어뢰"를 개발해서

제대로 된 검증 없이 미 해군에 공급했다.

 

이 문제가 당시 해군의 수장이었던 "니미츠"

제독에게 보고가 되어서 개선 요청을  

받았음에도, 끝까지 개발된"어뢰"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고, 맞지 않는 어뢰를 개발된

그 상태로 쓰게끔 모든 수단을 동원했었다.


이 "어뢰"는 설정된 수심보다 더 아래쪽을

향해 날아갔고, 명중률을 높이기 위해 개발된

자기 유도 장치는 무용했건만, 그는 끝까지

사용한 군인들이 잘못 사용한 것이지

"어뢰"에는 문제가 없다고 우겼다고 한다.


영화에서도 "뇌격기" 편대가 발사한 어뢰나

"잠수함"이 발사한 어뢰는 좀처럼 일본

항모나 구축함에 잘 맞지 않는다. "강습기"가

항모 갑판에 기를 쓰고 날아가 떨어뜨린

폭탄으로 가까스로 침몰시키는 장면이

반복되는데, 그것에는 이 같은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멋진 장면이 자꾸 나오지만, 어뢰가 부실해서 이랬다고 보면 안습이 된다.

그 장군은 천수를 누렸고, 단 한 번도 자신의

실책을 인정하지 않고, 퇴임까지 근무한

사람이다. 그를 다른 위치로 보내고 새롭게

개선 및 개발한 "어뢰"가 겨우겨우 맞기

시작하면서 미 해군의 해전 중의 승리 빈도가

더 높아졌다고 하니, 정말로 높은 지위를

가진 "꼰대"란 "핵폭탄"보다도 무서운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반대로 일본에 이런 꼰대들이 많지 않았다면

일본은 전쟁에서 이겼을 것이다. 어쩌면

아주 다행스러운 일이다.



"미드웨이"의 결말은 이미 웹상에 널려 있고

출판된 모든 정보를 통해서 알려져 있다.

그 정보를 접한 사람들에게 이 영화의 치밀한

고증은 영화를 더 즐겁게 보도록 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내 역할은 시간이 없는 분들을

위해 내가 읽은 내용을 간추리는 수준이다.

역사상 실제 인물과 유사한 배우가 배역을 맡았고, 왼쪽 하단 오른쪽 두번째의 미해군 니미츠 제독을 맡은 우디 해럴슨의 싱크로율은 높다.

그러나 고증 없이도, 스펙터클함과 더불어

인류 역사상 최초로 항공모함 간의 함대 기를

주로 사용하는 이 해전은 내내 흥분감을

유지하게 만들고, 손에 땀을 쥐는 긴장감을

멈출 수 없게 한다.


영화를 보다 보면,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인류의 위기도 왠지 극복할 수 있을 것 같고,

낙관적인 미래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은

묘한 희망이 생긴다. 그리고 지금 시점에서

전 인류가 싸워야 할 적이 누구인가에 대한

명확한 그림이 잡힌다.


그것은 바이러스 자체가 아니다. 이것의

확산을 방치하거나 은폐, 축소하려는

속편한 생각을 하고 이를 실행할 위치에

있는 “꼰대”의 “정신”이다.


이에 대응하는 사람들이 "꼰대 정신"이 아닌

국가 간의 협조와 사회 구성원 간의 협력,

바이러스에 대해서 세운 전 세계적인 논의에

의해서 만들어진 "사회적 거리 유지"등의

정책을 준수하며 각고의 노력을 그치지

않게 하는, 있는 그대로의 상황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건전한 정신"을 갖고

있기에 희망이 있는 것이다.


자기 자신만의 이기가 아닌 "인류의 생존"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류애"다.

"꼰대 정신"이나 "인류애"나 특정 연령대의

전유물만은 아니다. 아무리 어려도 "꼰대"가

있고,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인류애"를

제대로 가진 자가 있다.


같이 살아남기 위해 어느 쪽에 서야 할지는

당신이 판단 내려야 한다. 당장 강해보이는

꼰대에게 고갤 숙이고 처참한 죽음을

자살 어뢰나 카미카제 폭격기 안에서

맞이할 것인가? 아니면 제대로 조종간을

잡고 적의 항공모함에 폭탄을 떨구고

격침시킨 뒤에 함께 살아남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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