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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 Jun 30. 2021

<3. 진과 사브리나의 어린 시절>-d

일루미네이션 공원의 게임-1

3. 진과 사브리나의 어린 시절


d. 일루미네이션 공원의 게임-1


리처드는 친할아버지인 케언즈의 연구실에 있었다. 부모님이 사고로 일찍 돌아가신 뒤 줄곧 리처드의 집은 할아버지의 이 연구실이었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면 연구에 몰두하던 할아버지가 반갑게 맞아 주곤 하지만 케언즈는 그의 연구와 강의 때문에 시간을 그리 많이 낼 수 없었다. 그래서 리처드는 연구실의 접속장치로 메인프레임에 접속하여 교양 교육을 받거나, 일루미네이션 공원에서 시간을 보냈다.


몇 년 전부터 연구실 한구석에 있던 구형 접속장치가 일루미네이션 공원에서 싱크율이 더 높다는 것을 알고 할아버지 몰래 게임을 할 때는 구형 접속장치를 이용했다. 할아버지는 구형 장치를 사용하지 못하게 했지만 못하게 하면 더 하고 싶어 지기 마련이고 게임에서 훨씬 유리하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도저히 그만둘 수가 없게 되어 버린 것이다.


그날도 할아버지의 수업을 마지막으로 학교에서 돌아와 일루미네이션 공원으로 접속했다. 일루미네이션 공원에서는 실감 나는 게임을 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아직 미성년자인 리처드에게는 여러 가지 제한이 있었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장비로 접속할 경우 제한도 없을뿐더러 접속장비와 사용자의 뇌파가 동조하는 싱크율도 90% 이상이어서 현실에서의 지식을 게임에서 이용하는 정도나 응용력도 배가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케언즈는 일루미네이션의 관리자 권한을 가지고 있어서인지 게임 자체를 조정할 수 있었다.


[딩동 메임프레임에 접속하셨습니다. 케언즈님]


다행히 할아버지는 오늘도 접속장치에 유전자 암호를 걸어놓지 않았다. 어깨너머로 케언즈의 비밀번호를 확인해 두었던 리처드는 간단히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암호 확인. 일루미네이션 공원으로 이동합니다.]

[친구 찾기를 실행하시겠습니까?]


리처드는 핸들러 교육생들의 식별 정보를 미리 입력해 두었다. 실행 버튼을 누르고 나니 진과 사브리나가 고대 로마시대를 배경으로 게임을 하고 있다는 정보가 화면에 떠올랐다.

(출처; unsplash.com)

'지난번에도 둘이서 게임하던데 이 녀석들 요즘 사귀는 건가?' 리처드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사브리나에게 호감이 있었지만 미처 표현하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슬쩍 게임에 들어가서 구경할까?' 생각이 거기까지 미친 리처드는 조금 망설이다가 실행 중인 프로그램의 설정을 고쳤다. 그러고 나서 등장인물 중 사브리나와 가까운 이에게 자신을 싱크 시켰다. 잠시 노이즈가 생긴 뒤 눈을 떠보니 로마 시대의 풍경이었다. 루실라의 위치정보를 확인해보니 신전 쪽에 있었다.


사브리나는 이번 게임에서는 이길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아니 최소한 지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시스템 버그를 이용해 상대방의 싱크율을 떨어뜨릴 수 있는 방법을 알아냈기 때문이었다. 일루미네이션의 시스템에서는 싱크율이 50% 이하로 떨어지게 되면 사용자의 안전을 위해서 자동으로 접속을 해제하게 된다. 그러니 사브리나는 자신이 진에게 점수에서 뒤질 경우 가벼운 마음으로 진의 싱크율을 낮출 작정이었다.


루실라가 된 사브리나는 신전 소속 무녀를 선택한 덕분에 순조롭게 고급 학문을 배우고 있었다. 진이 어느 곳으로 갔는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신전보다 고급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는 곳은 없을 테니 이번 게임은 그리 나쁘지 않은 출발인 것 같았다.


단 하나 마법 교사랍시고 속임수만 보여주는 미케로스란 선생은 견디기 힘들었다. 너무 뻔한 속임수라서 계속 속아주자니 시간이 아깝고, 그렇다고 문제를 일으킨다면 전체 점수에서 진에게 뒤쳐질지도 몰랐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의 수업시간은 거의 딴생각을 하면서 보내고 있었다.

(출처: unsplash.com)

다행히 오늘은 새로 마법 교사가 왔다. 이 시대에 마법이라면 뻔한 눈속임이겠지만 첫 시간이라 관심 있는 척 그를 보고 피그 시 웃어주었다.


"자 오늘은 중력 실험이다. 중력이 뭔지 잘 모르겠지만 이렇게 하면 중력을 느낄 수 있을 거야. 여기에 있는 건 수은이야. 그리고 이건 시험관이지 먼저 이렇게 관내를 진공으로 만들고, 진공인 상태에서 수은 조에 거꾸로 세운다. 자 관내의 수은주는 수은 조보다 이 정도 위로 올라갔지? 이건 대기압의 존재와 그 크기를 알려주는 거야."

(출처: 위키피디아)

'엥 제대로 된 과학 강의를 하다니? 게다가 저건 토리첼리의 실험이잖아. 이 시대에 나오는 것이 아닌데?'


"자 루실라 이 원리를 알겠니?" 리처드는 빙긋 웃으며 사브리나에게 물었다.


"네..... 네."


'이거 나도 모르는 버그를 알아내서 진이 장난치는 건 아니겠지?' '벌써 인격을 형성해서 나를 가르치러 온 걸 리가 없는데.... 게다가 캐릭터도 마리우스라는 이름이었잖아 2인 대결 모드로 시작했는 데 어떻게 된 일이지?'


"저 탈레스 님 그런데 어떻게 이런 걸 다 아시게 되었죠?"


"허허 루실라도 열심히 연구하다 보면 학문적 성취를 얻을 수 있을 거야."


의아해하는 사브리나의 표정을 보고서는 리처드는 겨우 웃음을 참을 수 있었다.


"최근 연구한 다른 것도 있단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야."

(출처: unsplash.com)

차츰 표정이 심각해지는 사브리나를 앞에 두고 리처드는 근대의 발명품들의 원리를 소개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브리나는 더 이상 그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지 않았다. 그 대신 메인프레임을 이용하여 진의 마리우스에게 접속하고 있었다.


일루미네이션 공원 안에서는 이런 방식의 외부 통신 기능은 없지만 진과 사브리나는 메인프레임 핸들러 예비생으로 약간의 이점을 갖고 있었다. 일루미네이션 공원 자체가 메인프레임을 기반으로 구동되는 시스템이므로 메인프레임을 이용하여 간접적으로 접속하는 것이었다.


[일루미네이션 공원에서 마리우스 검색.]


[총 12인의 마리우스가 검색되었습니다.]


[학문 성취도 우수자로 정렬]


[현재 고대 왕궁에 있는 마리우스가 성취도와 성장률에서 가장 높게 나타나 있습니다. 성취도는 일반인의 200% 성장률은 700%입니다.]


'역시 진이군 접속한 지 얼마라고 700%야?'


[성취도 최상위의 마리우스와 메시지 송수신 신청.]


[잠시 기다리십시오......]


[무슨 일이야?] 진의 음성이 들렸다.


[우리 초기 설정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달라졌어. 난 지금 고대 로마시대를 넘는 지식을 갖춘 탈레스란 사람을 만나고 있어.]


[그럴 리가..... 한 번 설정되면 게임의 연속성을 위해서 종료하기 전에는 재설정될 리가 없는데? 게다가 그런 사람이 우리가 게임에 들어온 후에 태어난 인물이라면 모를까. 너와 만나서 대화할 정도로 나이 든 사람이라니 아예 말이 안 되잖아.]


[나도 말이 안 되니까 이렇게 접속한 거야.]


[흠 그럼 일단 종료했다가 다시 할까? 넌 성취도 200% 성장률 600%구나. 나는 어때?]


[네가 성장률에서 앞서고 있어. 이대로 끝내면 내가 지는 거니까. 그건 싫고. 게임 안에서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보는 방법은 없을까?]


[알아보는 방법이야 있지. 하지만 밖에서 하는 것보다 훨씬 시간이 걸리잖아. 일일이 명령어로 메인프레임에 접속해야 되니까.]


그때였다 갑자기 노이즈가 발생하더니 둘 사이에 메시지 송수신에 누군가 끼어들었다.


[안녕. 뭐 그렇게 어렵게 생각해. 그냥 1:1 대결이 1:1:1로 바뀐 거라고 생각해. 아니 혹시 불리하다고 생각되면 2:1도 받아줄게.]


[당신 누구야? 대체 어떻게 메시지까지 끼어든 거지? 당신이 그 탈레스란 사람이야?]


[뭐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사람이지.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같이 게임하자고. 나도 게임 규칙을 지킬 테니까.]


[사브리나 난 접속 종료할래.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밖에 나가서 확인해야겠어. 그리고 당신. 기록은 그대로 남아 있을 테니 조금 후에 내가 당신 있는 곳으로 찾아가지. 기다려.]


[아니 잠깐만 내가 해결할 수 있어.]


사브리나는 시스템 버그를 이용하여 탈레스에 접속한 인물을 검색한 후 싱크율을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싱크율이 55% 정도이니 5% 정도는 짧은 시간에 변화를 주더라도 큰 무리가 없겠다고 생각해서 실행시간을 10초로 두고 탈레스로 접속한 인물의 싱크율을 50%로 재조정했다.


그러자 갑자기 사브리나에게 상대성이론을 친절히 설명해주던 탈레스가 사라졌다.


리처드는 목이 뒤로 강하게 당겨지는 느낌을 받았다. 접속 해제를 위한 버튼으로 손을 뻗으려고 했지만 손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숨이 막히면서 눈앞이 점점 흐릿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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